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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째 길을 걸으며

기사승인 2021.01.30  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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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범 기자 aiolos1001@naver.com

- [상상사전] ‘길’

   
▲ 김계범 기자

‘멘토’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안철수∙박경철 씨와 법륜 스님이 청춘 콘서트를 하고 김난도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쓰는 등 우리 사회에 한창 ‘힐링’ 열풍이 불던 때다. 나 역시 인생의 멘토를 찾아 헤맨 적이 있다. 여러 책을 읽고 강연을 찾아가 들었다. 잠 오지 않는 밤 고민이 있을 때면 라디오에 사연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많은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려 애썼다. 어디서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좋은 스승은 만날 수 있었지만 명확한 답을 내려주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삶의 모범답안을 찾으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답답함을 가득 안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방황하며 너무 많은 시간을 고민으로 흘려 보냈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
어디쯤 가고 있을까
눈을 뜨고 맞은 아침에
더 이상은 새로움이 없네
채워지지 않는 맘은 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넘치는 사람들 그 안에 
홀로 선 스물두 번째 길’ 

가수 윤하가 3집 앨범에서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 ‘스물두 번째 길’이다. 열일곱에 일본에서 ‘오리콘의 혜성’으로 불리며 화려하게 등장한 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스물두 살 청년의 고민을 이 곡에 담았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곡이다. 

   
▲ 많은 젊은 가수들은 노랫말 속에 청춘의 길을 담아 대중과 호흡한다. 청년들은 치열하게 인생을 고민하며 스스로 길을 찾아간다. ⓒ 라이온미디어

이 노래 말고도 유독 젊은 가수들이 부른 노래 중에는 ‘길’을 노래한 곡들이 많다. 스물여섯에 요절한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은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고, 2017년 개봉한 영화 ‘1987’의 OST로 배우 강동원과 김태리가 함께 불러 화제가 됐다. 국민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god의 ‘길’ 역시 2001년에 나왔는데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산울림의 ‘청춘’, 정인과 윤종신의 ‘오르막길’ 등 고뇌하고 방황하는 청춘의 길을 노래하는 곡들은 시대를 초월해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다. 

시인은 자신만의 길을 고독하게 뚜벅뚜벅 걷는 사람이다. 막다른 길에 이르러 갈 곳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시인은 포기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쓴다. 시인은 괴롭고 힘든 순간에도 쓰는 사람이다. 어려운 순간들을 견디며 지나온 시간들은 시인의 손끝에서 끝내 위대한 작품으로 태어난다. 

김수영의 시 ‘너를 잃고’는 그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뒤 아내 김현경이 부산에서 자신의 고교 선배 이종구와 사는 모습을 보고 돌아오라고 하지만 거절당한 뒤 쓴 작품이다. 이종구는 김수영과 김현경을 이어준 사람이다. 전쟁이라는 모두가 겪는 비극 속에서 김현경은 김수영이 죽은 줄 알고 내린 선택이었다. 훗날 김현경은 김수영에게 다시 돌아오지만 김수영에게는 포로수용소 생활 당시보다 석방 이후가 더 심란했을 것이다. 

도종환은 아내를 먼저 하늘로 떠나 보내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와 같은 작품을 썼다. 김현승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눈물’이라는 시로 남겼다. 시인은 삶의 가장 큰 아픈 순간조차도 좌절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펜을 들고 예술로 승화하는 사람이다. 

몇 해 전, 혼자 ‘내일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 ‘내일로’는 청년이 싼 비용으로 일정 기간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열차의 입석과 자유석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여행상품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일찍 열차에 올랐다. KTX가 생긴 이후로는 멀리 갈 때면 KTX를 이용하곤 했는데 무궁화호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KTX로는 서울에서 두 시간 반이면 가는 부산까지 7시간 걸리는 기차를 타고 여유롭게 여행했다. 느림이 주는 매력이다. 

   
▲ 칠흑같이 깜깜한 터널의 끝에는 빛이 기다리고 있다. 나 자신을 믿고 견디면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반드시 지나간다. ⓒ pixabay

며칠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고독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이었다. 기차에서 내리면 내 호흡으로 걸으며 여행했다. 삶도 마찬가지다. 살다가 힘들고 지칠 때면 짝꿍에게 의지하고 함께 고민을 나눌 수도 있지만 내 인생길은 어느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다. 오롯이 내가 걸은 만큼 나아갈 수 있다. 결국은 스스로 답을 내리고 결정해 나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뒤늦게 나는 홀로서기 연습을 하고 있다. 스물두 살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가수 윤하는 몇 해 지나 발표한 ‘Home’이라는 곡에서 이렇게 나를 위로한다. ‘누구나 다 그런 순간을 안고 살아.’ 산을 오르다 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없이 반복된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도 웃음과 눈물이 함께 있어 행복을 느끼는 듯하다. 서른 번째 길도 어느새 한 달을 걸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민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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