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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상자 들고 매일 '단축마라톤' 뛴다

기사승인 2021.01.25  20: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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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기자 ksy14583@naver.com

- [단비현장] 택배 노동자 24시 <하>

코로나 확산과 연말을 맞아 택배물량이 크게 늘어난 작년 12월 29일 오전 일곱 시, 충북 제천시 한 택배회사 집하장. 어둠이 가시지 않은 작업장은 분류작업을 하는 택배기사들의 손놀림으로 분주했다. 삼십명 가까운 기사들이 컨베이어 벨트 양쪽으로 늘어서서 벨트를 타고 흘러오는 택배상자의 주소를 확인해 자기가 담당할 물건을 골라내느라 숨돌릴 틈이 없었다. 

분류작업에 4~5시간 ‘공짜 노동’

   
▲ 충북 제천시 한 택배회사 집하장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컨베이어벨트에서 물건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신영

제천시 신월동과 주변 지역 배송을 담당하고 있는 하용비(27) 씨의 손놀림도 빨라졌다. 이날 오전 6시 반 집하장에 도착한 하 씨는 오전 7시 작업이 시작되자 컨베이어 벨트 위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는 100m 남짓 되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택배상자를 들어올려 바코드 리더로 입력하고 파란색 네임펜으로 송장 위에 큼직하게 지번이나 아파트 동∙호수를 적어 넣었다. 나중에 배달할 때 일일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주소를 확인하지 않고 바로 골라내 배달하기 위해서다. 바코드 입력과 동∙호수 기입을 마친 상자는 뒤로 빼놓고, 다시 컨베이어벨트에서 택배상자를 골라 같은 작업을 되풀이했다. 

빠르게 상자를 골라내는데도 가끔 못 보고 지나가는 물건이 있으면 한참 지나간 저쪽 편에서 “용비”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챙겨 주기도 한다. 그는 택배상자를 골라내는 중간에 수시로 뒤에 쌓아 둔 상자들을 3m쯤 떨어진 곳에 세워 둔 트럭으로 옮겨 싣는다. 택배상자 중에는 가벼운 것도 있지만 금속제품이나 과일 등 무거운 내용물이 들어있는 상자를 들어 올릴 때는 자신도 모르게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낸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담당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도 쉽지 않지만 트럭에 싣는 일도 만만치 않다. 나중에 배달할 상자들을 적재함 가장 안쪽에 싣고, 무거운 상자들을 아래쪽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배송 순서와 물건의 무게에 따라 한 번 더 분류작업을 해야 한다. 또 유리나 전자제품 등 ‘파손주의’나 ‘취급주의’ 스티커가 붙어 있는 상자들도 별도로 분리해 실어야 한다. 상자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무게와 부피 크기 등을 다 살피고 쌓아야 적재함에 배송물건들을 한번에 다 실을 수 있다. 하 씨는 테트리스를 하듯 안쪽에 있던 상자를 뺐다 바깥쪽에 끼기도 하고, 가로 폭이 긴 상자를 세로 방향으로 세워 빈 틈에 쏙 들어가게 맞추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하 씨가 하루 평균 220~250개에 이르는 상자를 다 싣고 트럭 문을 닫자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본업인 배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의 등에는 땀이 배어 나왔고 입에서는 ‘휴’ 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는 “무거운 상자들을 트럭에 옮겨 싣고, 배송 순서와 무게 등을 따져 여기 쌓았다 맞지 않으면 다시 옮기고 하면서 다 싣고 나면 진이 빠진다”고 말했다. 

하 씨는 그 시간까지 이날 근무시간의 절반에 가까운 일을 했지만 그 일은 사실상 ‘공짜 노동’이다. 택배기사들 업무는 택배 물건을 ‘배송’하는 것으로, 임금도 ‘배송 1건당 수수료 750원’으로 돼있는데도, 배송과 무관한 분류작업을 택배기사에게 시키고 있다. 지난 21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택배사가 분류를 위한 자동화설비를 갖추거나 전담인력을 고용하라’는 합의를 내놓았지만 실제 택배노동자들이 언제 분류작업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식사 거르고 하루 220~250개 배달

   
▲ 택배 노동자 하용비 씨가 작년 12월 29일 제천시 청전동 한 아파트 단지에 주차한 배송트럭 안에서 아파트 층별로 배달할 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 김신영

하 씨는 분류와 적재 작업이 끝나자 바로 배송에 나섰다. 차 시동을 걸고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그는 “오늘 분류작업이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게 끝나 담배 필 시간이 없어서…”라며 미안해했다. 집하장에서 20분 정도 달려 제천시 신월동 상가지역에 도착한 그는 배달할 상자들을 수레에 싣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위층부터 배달을 마치고 내려올 때는 수레를 접어 안고 계단을 두 개씩 건너뛰면서 내려왔다. 오른손으로는 손수레를 끌어안고 왼손은 무릎을 쥐고 있었다. 

“하루 220개에서 250개를 배송하려면 한 시간에 최소 35개는 처리해야 합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탈 여유가 없어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일이 많아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요. 점심시간만 지나면 ‘왜 빨리 갖다 주지 않느냐’는 전화가 걸려와 바쁘게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상가 두 곳을 들러 배송을 마친 하 씨는 아파트 단지로 이동했다. 그가 배송하는 아파트 단지는 청전동 현대아파트 2개 동과 고암동 금용아파트 3개 동 등 모두 5개 동 575세대를 혼자 맡고 있다. 그는 “‘언제 오느냐’는 문의 전화와 ‘왜 빨리 안 오느냐’는 항의 전화가 오기 전에 빨리 해야 한다”며 바삐 움직였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 첫 번째 동 앞에 도착하자 그는 트럭 문을 열고 배송할 상자들을 다 꺼낸 뒤 다시 위층부터 순서대로 분류작업을 했다. 

   
▲ 하용비 씨가 제천시 청전동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배송한 택배상자들을 정리해 놓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은 택배상자들을 정리해 놓은 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배송고객에게 문자로 전송하고 배송이 완료됐음을 알려 준다. © 김신영

그는 수레에 상자들을 싣고 ‘경비실에 맡겨 달라’고 한 물건들은 경비실 앞에 내려 두고,  ‘문앞에 놓아 달라’고 한 물건들을 싣고 15층으로 올라가 한 층씩 내려오면서 배송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종이 판지를 문틈에 끼워놓고 시간을 벌어 가면서 층마다 택배상자를 두고 내려왔다. 가끔 직접 수령하겠다는 집은 인터폰을 눌러 전해주었다. 아파트 단지 배송을 하다 보면 층을 잘 못 보고 다른 층에 배송해 물건 값 3만7천원을 물어준 적도 있다. 이렇게 두 개 아파트 단지에 100여개를 배송하는 데 두 시간이 좀 더 걸렸다. 

한 시간에 35개쯤 배달…4~5층 뛰어다녀

하 씨는 오후 3시 30분쯤 아파트 배송을 마치자 “이제 한 구역 끝났다”며 신월동 원룸 지역으로 출발했다. 그가 맡고 있는 배송지역 중 가장 힘든 곳이 원룸촌이다. 아파트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데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아 4층이나 5층 이상을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한다. 그는 원룸촌 배달을 시작한 지 30분이 안 돼 숨을 헐떡거렸다. 두 계단을 한꺼번에 오르고, 2~3분 간격으로 트럭에 올라 탔다 내렸다 한다. 한 번에 두세 개씩 택배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데, 무거운 물건은 하나씩 배달하고 다시 내려와 다른 물건들을 들고 올라가느라 같은 건물 계단을 두 번씩 오르내릴 때도 많다. 

   
▲ 하용비 씨가 제천시 한 원룸 건물 입구에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다. 택배상자를 한 손으로 잡고 허벅지와 턱으로 받치고 있다. © 김신영
   
▲ 하용비 씨가 택배상자를 들고 원룸 건물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다. 배송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 번에 여러 상자를 들고 계단을 뛰다시피 올라가는 때가 많다. © 김신영

원룸촌 한 건물당 배달물량은 평균 서너 개 정도여서 한 시간에 35개 이상 배달하려면 평균 50m 이상 떨어져 있는 건물들을 10곳 이상 돌아다녀야 한다. 걸어서 배달을 하면 금세 날이 저물고 밤이 되면 건물 찾기가 힘들어 해지기 전에 마치려고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할 수밖에 없다. 

해지기 전에 배송을 마치려다 보니 밥도 제때 못 챙겨 먹는다. 하 씨는 이날 아침도 거르고 종일 포카리스위트 500㎎ 한 병을 마시면서 일했다. 다른 택배 노동자들도 대개 분류작업이 끝난 뒤 오전 11시를 전후해 컵밥 등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배송을 마칠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일한다. 이날 낮 12시 반부터 오후 6시 반쯤 배송을 마칠 때가지 하 씨의 걸음 수는 1만5천보였다.  

공휴일만 휴무…주 6일 78시간 근무

하 씨의 일은 배송완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고객들의 반품 요청으로 회수한 물건들을 싣고 회사로 들어갔다. 반품이 있는 날은 배송시간도 더 걸린다. 고객이 반품 신청을 한 것은 고객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물건을 받아야 하는데,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는 전화연결이 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른 지역 배송을 마치고 다시 반품을 받으러 가야 한다.

반품받은 물건을 회사에 갖다 주고 집에 오면 8시가 넘는다.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해서 6시 반에 집하장에 나가 오후 7시 반이 넘어 퇴근한다. 중간에 점심을 먹으면 시간을 많이 뺏기고 배송작업이 늦어져 중간 휴식도 없이 하루 13시간을 일한다. 하 씨는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만 쉬고 주 6일 78시간을 일한다. 하 씨는 최근 두 달 사이 몸무게가 12kg이나 줄었다.  

“이러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종일 일에 시달리고 밥도 제때 못 챙겨 먹고 무거운 택배상자 들고 높은 계단을 뛰어 오르내리니 무릎이고 발목이고 성한 곳이 없습니다. 병원을 가려고 해도 병원 문을 여는 낮시간에는 엄두를 못 내니 치료도 못 받고 그냥 지내지요. 과로사하는 택배 노동자들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하 씨가 이렇게 뛰어서 버는 수입은 한 달에 350만원 안팎이다. 2019년 기준 택배 평균단가는 평균 2269원인데, 그중 택배기사들 몫은 750원이다. 이 중에서 택배용 화물차 할부금이 매월 60만원, 연료비가 20~30만원 나가고, 기타 작업용 소모품 구입비 등을 빼고 나면 250만원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하 씨는 아직 미혼이지만 결혼한 사람들에겐 한 달 생활비도 안 되는 빠듯한 수준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택배노동자들이 하는 분류작업을 택배사 책임으로 규정하고 주 최대 60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문제는 남아있다. 택배기사들은 택배단가에서 차지하는 자기들 몫이 적기 때문에 과중한 물량을 배달하려고 하면 근무시간을 크게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편집 : 이성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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