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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자주 오른 이유를 알겠네

기사승인 2021.01.18  12: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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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범 기자 aiolos1001@naver.com

-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서울 응봉산

서울의 거리와 건물은 각양각색의 모양을 뽐내지만 시민들은 대개 무표정하다. 지하철과 버스는 바삐 움직이는데 승객들은 문명의 이기에 몸을 맡긴 채 휴대폰에 빠져 손가락만 움직일 따름이다. 요즘은 모두들 마스크를 쓰지만 지친 시민들 마음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내가 찾아가는 휴식처가 있다. 도심에서 멀지 않고 남산이나 인왕산처럼 높지 않아 오르는 데도 부담이 없는 응봉산이 바로 그곳이다.

자연이 만든 81m 높이 전망대

   
▲ 응봉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에서 바라본 한강과 강남 일대. 한강변에 조성된 푸른 숲이 회색 도시의 단조로움에 파격을 준다. © 김계범

서울지하철 경의중앙선 응봉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남서쪽 응봉초등학교 쪽으로 걸어 가면 야트막한 산자락이 나타난다. 서울 성동구 응봉동 응봉산이다. 한강변의 평지에서 돌출한 해발 81m 높이 산인데 바위와 수목이 조경사가 꾸민 정원처럼 적당한 위치마다 나타난다. 응봉역은 하루 3,500명쯤 이용하는 한산한 정거장이고 승객 가운데 상당수가 응봉산이나 서울숲을 찾는 사람들이다. 

   
▲ 응봉산 팔각정으로 향하는 주택가에 그려진 벽화. ⓒ 김계범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응봉산 정상을 향해 걷다 보니 가수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가 떠오른다. 주택가 사이로 난 길을 7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나무 계단이 나온다. 응봉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등산로라기보다 산책로에 가깝다. 중간중간 작은 공원과 운동시설도 있어 인근 주민뿐 아니라 젊은 연인들 모습도 눈에 띈다. 등산로 중간 두세 곳에 있는 작은 전망대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면 한강과 강남 도심이 눈앞에 펼쳐진다.

   
▲ 응봉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왼쪽)와 데크가 깔려 있는 등산로(오른쪽). 야트막한 산이지만 숲속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 김계범

멀리 도심이 고요 속에 잠긴 풍경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혼자 사진을 찍으러 오거나, 부부∙친구 등으로 보이는 이들이다. 쉬지 않고 걸으면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길이지만 나무와 수풀 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언뜻언뜻 드러나는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발 아래로 한강과 중랑천이 흐르고, 그 너머로 실제로는 시끌벅적할 도심이 고요 속에 잠겨 있다.

   
▲ 등산로 중간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 사진 가운데 멀리 보이는 곳이 관악산이다. © 김계범

데크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산 정상의 팔각정에 도착한다. 사방으로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아래서 보면 ‘야트막한 산에 뭘 볼 게 있겠나’ 싶지만 막상 올라와 전망대에 서면 “와!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서울시내를 조망하는 곳으로는 남산타워가 대표적인 장소로 꼽힌다. 하지만 남산타워는 오르기 어렵고 돈이 드는 데다, 먼 곳까지 조망할 수 있지만 가까운 곳은 세세히 볼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응봉산은 한강이 지척에 있고 강남도 한눈에 들어오는 장점이 있다. 응봉산은 용마산에서 롯데월드타워를 지나 계속 고개를 돌리면 청계산 우면산 관악산 남산까지 두루 볼 수 있는 명당에 자리했다.

   
   

▲ 응봉산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서울 남서쪽 전경. 시야가 워낙 넓어 카메라 한 화면으로는 담을 수가 없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성수대교까지 전경(위)과 성수대교에서 관악산까지 모습.(아래). ©김계범

   
▲ 응봉산 팔각정 앞에 있는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명소’ 표지판. © 김계범

‘한꺼번에 몇 개 산을 보는 거지?’

팔각정 2층으로 올라가 왼쪽을 보면 용마산과 아차산 등 서울 동쪽 외곽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롯데월드타워 123층이 아득하게 보이고 그 옆으로 동부간선도로와 영동대교 한국종합무역센터 서울숲이 나타난다. 성수대교 옆으로 한강으로 흘러드는 중랑천이 보이고, 청계산 올림픽대로 우면산 동호대교 관악산 강변북로 한남대교 등이 이어진다. 팔각정 후면으로 돌아가면 서쪽 방향으로 남산과 남산타워가 한눈에 들어온다.

   
▲ 응봉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남산과 남산타워. © 김계범

‘응봉산’이란 이름의 유래 

   
▲ 응봉산은 매년 봄이면 개나리가 활짝 펴 노랗게 물든다. © 성동구청 공식 페이스북

응봉산(鷹峰山)은 산 모양이 매처럼 생겨서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는 이야기와 조선시대 왕들이 이곳에서 매를 풀어 사냥하던 곳이라 응봉산으로 불리게 됐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응봉산 일대는 조선시대 왕들이 매사냥을 즐기던 사냥터였다고 한다. 응봉산에서 북서쪽으로 1.8km 정도 떨어진 한양대 앞 중랑천에 있는 ‘살곶이다리’ 근처 뚝섬 일대는 ‘살곶이벌’이라 불리던 곳으로, 태조 이성계의 매 사냥터였다. 그는 즉위 4년이 되던 1395년, 응봉산 기슭에 매를 사육하는 응방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매사냥을 즐겼다.

   
▲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소공원에 설치된 참매 조형물. ⓒ 김계범

응봉산 일대는 이성계에 이어 세종도 매사냥을 즐기는 등 성종 때까지 100여 년간 151회나 매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임금이 매를 날려 보내던 곳은 응봉산이었지만 실제 매가 날아가 사냥한 곳은 뚝섬 일대였다고 한다. 뚝섬에서는 매사냥과 함께 매년 봄 경칩과 가을 상강 때 두 차례 임금이 군대를 사열하고, 군대를 전쟁터에 내보낼 때는 소꼬리나 꿩꽁지로 장식한 큰 깃발인 독기를 내걸고 독제를 지냈다. 독기를 꽂은 섬이란 뜻에서 ‘독도’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뚝섬이 됐다고 한다.

   
▲ 응봉산에서 중랑천 건너 북동쪽으로 보이는 서울숲. 임금들은 응봉산에서 매를 날려 뚝섬 일대 살곶이벌에서 사냥을 즐겼다. © 김계범

임금이 도성에서 나와 살곶이벌로 매사냥을 나가면 중랑천을 건너야 하는데 임금을 뒤따르던 신하들은 흐르는 내를 건너는 일이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세종 때는 노상왕(정종)과 상왕(태종)이 이곳에 전각을 짓고 자주 나와 더욱 신하들이 힘들어 했다. 세종은 재위 2년 째인 1420년에 영의정 유정현과 공조판서 박자청에게 다리를 놓도록 명했는데, 강이 넓고 홍수가 나서 다리 기초만 해놓고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 상왕인 태종이 죽고 도성내부 개천공사에 집중하느라 살곶이다리 공사는 중단됐다가 50여 년이 지난 성종6년, 곧 1475년에 공사를 재개해 1483년에 완공됐다.

   
▲ 성동구 성수동 중랑천을 가로 지르는 살곶이다리. 왕들이 이 다리 건너에 있던 살곶이벌에 매사냥을 하러 갈 때 건너 다니던 다리다. © 성동구청

살곶이다리는 태종릉인 헌릉과 성종릉인 선릉으로 갈 때도 자주 행차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한양대 산업재료공학관 앞 자전거도로에서 중랑천을 건너 송정제방공원으로 연결되는 78m 길이 다리로 남았는데 한양에서 가장 긴 돌다리다.        

한양 10경에 든 나루 

응봉산 아래 중랑천변에는 입석포(立石浦)라는 작은 나루가 있었다. 응봉산 아래 사람이 서있는 듯한 모습의 바위들이 늘어서 있어 ‘선돌개’라 불리던 이곳은 경치가 빼어나고 낚시터로도 유명해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다고 한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오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이 시조를 지은 월산대군(성종의 형)과 강희맹 서거정 등 문신들이 한성의 아름다운 풍경 열 곳을 골라 ‘한도십영(漢都十詠)’이라 이름 짓고 그에 관한 시들을 남겼는데, 이중 하나가 입석포의 낚시를 읊은 ‘입석조어’(立石釣魚)이다.

   
▲ 응봉산 주변의 주요 사적들의 위치도. © 네이버 지도, 김계범

응봉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내려가 독서당로를 따라 서남쪽으로 1.5km쯤 가면 옥수동 극동아파트 정문이 나오는데, 이곳에 조선시대 하급관리들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던 ‘동호독서당’이 있었다. 조선 왕조는 인재양성을 위해 젊은 관리들에게 휴가를 주고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사가독서’제도를 도입했는데 중종 12년에 동호독서당을 지었다.

조광조 주세붕 이황 정철 이이 유성룡 이항복 이덕형 등이 동호독서당 출신이며, 약 300년간 304명 인재를 배출했다고 한다. 독서당을 지어 관리들을 공부하게 하고 가끔 임금이 들러 그들을 격려하고 응봉산으로 가서 매사냥을 즐기지 않았을까? 이런 역사와 유적들을 상상하고 살펴보면서 한강과 강남 조망을 하면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야경을 보려면 저녁 무렵에 오르라

응봉산 팔각정에서는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 이루는 물의 아름다움과 강남은 물론 강동과 강서의 풍경까지 내다보인다. 밤에는 성수대교와 한남대교 등 한강 다리와 강변북로를 오가는 차들의 불빛이 화려한 야경을 연출한다. 롯데월드타워, 63빌딩 같은 마천루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야경과는 색다른 느낌이다.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을 느끼며 잠시나마 갑갑한 마음에서 해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응봉산은 야경이 더 아름다운 곳이어서 해지기 한 시간 전쯤 정상에 올라가서 일몰에 이어 야경까지 보는 게 좋다. 노을마저 지고 어둠이 내리면 한강 건너 강남이 불야성을 이룬다. 

   
   
   
▲ 응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동남쪽(맨 위)과 서남쪽(가운데), 남산(맨 아래)의 야경. © 김계범

응봉산이 주는 보너스

응봉산 팔각정 뒤편에 있는 나무 시계는 고장이 난 건지 멈춰 서있다. 산속에 밤이 깊어지면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적막감이 감돈다. 산 아래 도심의 시간은 분주하게 돌아가지만 산상의 시공간은 멈춘 듯 고요하기만 하다. 일상이 지겹고 힘들 때, 삶이 무료해지고 흐트러질 때, 응봉산을 찾아가 먼 곳을 조망해보라. 우리 인생도 어디서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 조망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편집 : 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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