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예의’ 있는 질문은 뭘까?

질문은 기자의 일

기자는 기사를 쓰는 사람이고, 기사는 질문 없이 쓰일 수 없다. 간단한 사실 확인을 위해서도 ‘이게 맞는지’ 의심하고 질문하는 게 취재의 기본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발언 당사자 앞에는 여러 방송사의 마이크가 놓여있다. 기자들은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인터뷰 기사는 기자의 질문과 인터뷰이의 답변으로만 구성되기도 한다. 

질문하지 않는 기자는 조롱의 대상이다. 지난 2010년 11월 12일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침묵이 흘렀다. 질문하겠다는 한국 기자가 없자 중국 <CCTV> 루이청강 기자가 대신 질문하겠다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 준 질문권이었다”고 하자 중국 기자는 “한국 기자에게 제가 대신 질문해도 되는지 물어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결국 질문권은 그 중국 기자에게 돌아갔다. 해당 영상 캡쳐본이 인터넷을 통해 퍼졌고 기자들은 ‘역시 기레기’라는 비웃음을 샀다.

▲ 지난 2010년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줬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결국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넘어갔다. ⓒ EBS

질문을 해야 할 ‘때’와 ‘장소’

지난해 7월 10일 <미디어오늘>이 “박원순 시장 현장브리핑 중 ‘외모 훼손’ ‘자살 방법’ 질문한 언론”이라는 기사를 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신 발견 과정 등을 설명하는 서울지방경찰청의 브리핑 과정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어겼다는 내용이었다. <미디어오늘>이 문제 삼은 질문은 6개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 사인을 좀 더 조사하셔야 되겠지만 목을 맨 건가요, 떨어진 건가요?
B : 성곽 높이는 어떻게 되나요?
C : 발견 당시 상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D : 외모가 심하게 손상됐나요? 아니 그걸 분명히 이야기해주세요. 외모로 확인할 수 있습니까?
E : 자살 흔적이 있었나요?
F : 타살 가능성은 없나요?

자살 보도와 자살 사건 취재는 다르다. <미디어오늘>이 문제 제기한 질문 가운데 E, F는 타살 가능성에 관한 물음이었다. 당시 박원순 시장의 시신이 발견됐고 자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있었지만, 자살이라고 결론 난 상황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제1의 도시를 이끄는 수장이 어떤 징후도 없이 갑작스레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상황에서 타살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 E, F와 같은 질문은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A, B, C, D 또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자극적으로 짜깁기해 보도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거나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관해 의문점이 많아 각종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기자의 질문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질문은 오히려 기자의 본분에 충실한 태도였다.

박 시장 사망 관련 브리핑 상황이 유튜브와 방송사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되며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한 질문이 곧장 보도로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구체적인 자살 방법이나 장소 등을 묻고 대답하는 상황이 그대로 중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이 중계되고 있었으니 질문을 자제해야 맞다’는 주장은 사건을 빠르게 파악해 정확한 경위를 전달해야 하는 기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 질문을 한 기자는 방송사 카메라나 유튜브를 통해 브리핑 상황이 중계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문제 될 만한 질문이 중계되었다’는 사실을 문제 삼으려면 방점은 질문 자체가 아니라 중계에 찍히는 게 맞다. 브리핑을 진행하던 최익수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이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 이후는 질문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 해당 브리핑은 박 시장 시신이 발견된 북악산에서 진행됐으며 구체적인 발견 장소와 시간 등을 알리는 목적으로 마련됐다. ‘실시간 방송’보다는 ‘정확한 정보 전달’에 초점이 맞춰진 자리였던 만큼 ‘질문한 사람’을 탓하기는 어렵다. 

박원순 전 시장이 숨지고 며칠이 지나 기자의 질문이 또 문제가 됐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박 전 시장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에게 한 기자가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이 대표는 기자에게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합니까?”라며 노려봤다. 이 대표는 다른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자리를 뜨며 욕설을 하기도 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고 박원순 서울시장 장례식 조문을 마친 후 한 기자의 질문에 대답 대신 욕설을 해 논란이 일었다. 이후 강훈식 당 수석대변인이 사과했다. ⓒ SBS

이해찬 전 대표가 말한 예의는 질문할 때와 장소를 가리라는 뜻이다. 당시 현장에서 기자는 개인적으로 박 시장을 조문하러 간 게 아니라 박 시장 사망을 둘러싼 의혹에 관한 당 차원의 의견을 취재하러 갔다. 예의가 마땅히 지켜야 할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기자는 기자로서 할 일을 했다. 성범죄 피해자를 취재하는 것처럼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정당한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며 뉴스 소비자가 알고 싶어 하는 사안이라면 취재원이 불편해하더라도 묻는 게 기자의 일이다. 

어떤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싶어 하는 취재원은 기자를 피해 도망가기도 한다. 지난 2018년 <PD수첩>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취재하려고 그가 운동하러 자주 나타난다는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임 전 차장이 나타나자 제작진은 다가가 신분을 밝혔다. 그는 냅다 도망가기 시작했다. 제작진은 그를 뒤쫓아 뛰어가며 질문을 던졌다.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님 문건이 나왔는데요, 지금 입장이 어떠세요? 문건, 도대체 누가 지시한 겁니까?”

2분 정도 경주가 펼쳐졌다. 임 전 차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뛰다가 택시를 잡아 타고 현장을 떠났다. 이 상황을 돌아보면 자연인으로서 제작진의 행동은 무례했다. 약속도 하지 않고 무작정 취재원을 찾아갔으며 대답을 거부하는 사람을 따라가며 질문했다. 달리던 중 임 전 차장과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 전 차장을 쫓아가며 질문을 던진 홍세정 PD에게 “예의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지 않은 이유는 시청자들이 그가 언론인으로서 할 일을 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PD수첩> 사례처럼 인터뷰를 거부해 공식 입장을 듣기 어려운 취재원을 기다리다 기습 취재하는 방식을 ‘앰부시 취재’라고 한다. 물론 진실 추구라는 명목으로 기습하거나 잠복하는 취재 방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취재라도 때와 장소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취재원에게도 사생활이 있으며, 기자가 취재를 무기 삼아 부당한 방식으로 취재원을 괴롭히거나 자극적인 방송 화면을 위해 앰부시 취재나 잠복 취재를 남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기습 취재’는 언론윤리 위반”이라고 한다면 언론의 입을 부당하게 막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어느 상황에서 어떤 취재 방식이 옳은가에 관해 획일적인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언론인은 취재윤리 위반과 진실 추구, 권력 감시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줄타기해야 한다.

‘예의를 차리라’는 눈치 주기

기자에게 “예의를 차리라”는 눈치 주기가 기자의 입을 막은 사례는 더 있다. 지난 2019년 3월 윤지오 씨가 고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며 나타났다. 윤 씨는 고인과 친분을 강조하며 방송에 출연하고 후원금을 모았다. 『13번째 증언』이라는 제목의 책도 냈으며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대로 된 신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시글을 올렸고 31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윤지오 씨는 성역이었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를 본 3명의 목격자 중 유일하게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증언을 했으며, ‘지난 10년간 숨어지냈다’거나 ‘고인 사망에 대한 경찰 조사 후 미행이 붙는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는 등의 발언으로 부당한 권력에 위협받으면서도 공익을 위해 용기 낸 증언자 이미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3번째 증언』 출판을 도왔던 김수민 작가가 윤지오 씨와 나눈 SNS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윤 씨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윤지오 씨는 캐나다로 출국했고 기소중지 처분됐다. 출국한 윤지오 씨에게 고 장자연 씨 사건 관련 후원금 사기 의혹으로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언론은 뒤늦게 윤지오 씨가 한 증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 김수민 작가는 윤지오 씨가 ‘장자연 리스트’를 본 적 없는데 본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며 거꾸로 자신을 비난한 윤 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사진은 기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김수민 작가의 변호인 박훈 변호사. ⓒ KBS

김 작가 폭로 전에도 윤지오 씨의 증언엔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윤 씨는 10년간 검찰에 출석해 13번에 걸친 조사를 받았다고 해서 책 제목도 『13번째 증언』으로 정했다. 하지만 검찰 측은 윤지오 씨가 13번이나 조사를 받은 이유는 진술의 양이 많아서라거나 중요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진술이 계속 번복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의 폭로로 윤 씨 증언의 신뢰성이 의심받기 전에, 성역을 침범하는 자는 비난받았다. 지난 2019년 4월 윤지오 씨가 국회에서 『13번째 증언』 북콘서트를 진행할 때 <뉴스1> 기자가 “(머니투데이) 홍 회장이 성 접대 사건에 연루됐다고 썼는데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 있다”며 윤지오 씨에게 꽃다발을 보낸 사람이 머니투데이 홍선근 회장이 맞는지 질문을 했다. 그 과정에서 윤 씨와 기자 사이에 설전이 있었다. 

해당 장면을 보도한 SBS 유튜브 영상(<"제가 우스우세요?" 윤지오 분노케 한 기자의 질문>) 댓글에는 “기레기들이 진짜 권력자들(언론사주)한텐 한 마디도 못하면서 약자들한테만 더럽게 집요해요. 아오 빡쳐”라거나, “저러니 저것들이 기레기 소릴 듣는 거...지들만 모르시나? 아님 영혼이 없는 건가?”라며 기자를 비난하는 반응이 다수였다. 윤지오 씨의 증언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던 기자의 ‘무례한’ 태도에 대한 분노였다. 윤 씨를 무조건 옹호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언론은 질문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고, 결국 고 장자연 씨 사건의 진실과 상관없이 여론이 윤 씨의 말에 휩쓸리게 됐다.

‘예의’ 보다 중요한 것

취재원이 불편해하는 내용 속에 뉴스가 있다. 당연히 기자는 취재원과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거나 공익과 관계없이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를 쓰기 위한 질문은 잘못이다. 그런 잘못을 안 하려고 만든 기준이 품위유지, 사생활 보호, 취재원 보호 등을 규정한 언론인 윤리강령이다. 하지만 기자의 질문 자체를 ‘예의’의 문제로 다뤄서는 안 된다. 

기자가 질문하는 행위를 ‘예의’ 차원에서 취급하면 그 질문은 기자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된다. 잘못된 질문을 하는 것은 기자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그런 기자는 비난해도 된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기자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에 관한 사회적 고민은 사라지고 개인을 향한 비난만 남으면 ‘내 편에 유리한 보도’를 원하는 일부 독자의 속은 시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을 나오게 한 문제는 질문의 대상도 되지 못한 채 방치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기자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취재원의 사생활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기자에게 ‘예의를 지키라’는 요구가 자신에게 불편한 질문을 막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질문을 막는 것은 곧 취재를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 : 윤재영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