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젊은 화가의 코로나 겨울나기

성신여대 서양화과와 예술사학과 4학년인 이윤서(24) 작가는 요즘 카페 순회 전시를 하고 있다. 이 작가는 지난해 9~11월 학교 근처 카페 ‘맨케이브’에서 석 달 동안 작품전시를 한 뒤 올해 초부터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봉성리에 있는 카페 ‘나울’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한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개울가에 서있는 2층 건물의 카페 본관 2층과 별관에 자신이 그린 작품 7점을 전시해 두었다. 사방이 유리창으로 트인 본관 2층으로 올라가면 건물을 둘러싼 소나무 정원을 병풍 삼아 그림 두 점이 눈에 들어온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방문객이 많지는 않지만, 음식을 제공하는 카페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인 지금도 사람들이 간간이 와서 차를 마시며 그림을 감상한다.

▲ 경기도 김포시 카페 ‘나울’에 전시된 이윤서 작가의 ‘침잠하는 순간2’(왼쪽)와 ‘침잠하는 불1’(오른쪽). ⓒ 이윤서
▲ 이윤서 작가가 작품을 전시중인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카페 ‘나울'..오른쪽 큰 건물이 본관이고 왼쪽에 있는 작은 건물이 별관이다. ⓒ 박서정

“저희 같은 신진작가들은 직접 대관하거나 학교에서 전시하는 것 말고 작품을 알릴 기회가 거의 없어요. 기성 화단은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화이트 큐브’(대형 화랑이나 갤러리 같은 사각형 전시 공간)에 들어가 전시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갤러리 카페나 복합문화공간 등 우리 작품을 전시해 알릴 수 있는 공간들을 많이 만들어 가고 있어요. 대중에게 작품을 보여줄 기회와 전시 경험을 갖는 게 중요하거든요.”

작년 11월 13일 첫 전시를 하던 성신여대 앞 카페 ‘맨케이브’에서 만난 이 작가는 “관람객과 젊은 작가들 작품이 좀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규모가 큰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홀 내부에 걸어 둘 그림을 공모해 신인 화가를 지원해 왔지만, 작은 카페들은 공모전을 열기 힘들고 작품에 보상해줄 방법도 마땅치 않아 그림을 전시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 이윤서 작가가 작년 11월 성신여대 앞 카페 ‘맨케이브’에서 연 첫 전시회에서 자신이 맨 처음 그린 ‘침잠하는 순간1’ 앞에 서있다. ⓒ 양인서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학교나 대관 등을 통한 전시공간 확보가 어려워진 젊은 화가들과 줄어드는 고객을 유지해야 하는 카페들이 서로 도움 되는 상생 방안으로 카페 작품전시란 방식이 등장했다. 카페는 큰 비용부담 없이 내부에 그림을 걸어 분위기를 살려 고객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고, 젊은 작가들은 오프라인 공간 폐쇄로 사라진 전시공간을 확보해 전시 이력을 늘리고 작품 홍보와 위탁판매 등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작가는 작년 가을 학교 앞 카페 ‘맨케이브’에서 한 첫 갤러리 카페 전시에서는 전시 이력을 쌓는 데 중점을 두었는데, 지금 전시를 하는 김포 카페 ‘나울’에서는 위탁판매도 진행할 계획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힘든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었어요. 코로나 방역 조처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국공립 미술관들이 문을 닫자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소규모 전시 공연 공간으로 눈을 돌리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형 갤러리나 갤러리 카페들이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점이 있습니다.”

▲ 이윤서 작가가 김포시에 있는 카페 ‘나울’ 별관에 전시해 놓은 작은 작품 세 점(왼쪽)과 본관 2층 홀에 전시해둔 큰 작품(오른쪽). © 박서정

하지만 관람객이 전체적으로 줄고, 방역 조처 강화로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소규모 전시회도 무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작가는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가 교류 행사인 ‘예술교육 라운드테이블’에서 영감을 받아 작년 가을에 100명 규모의 비슷한 행사를 기획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무산됐다.

코로나19가 만연하기 전부터 오프라인에서의 높은 진입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온라인 전시회로 눈을 돌렸던 이 작가는 코로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활로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오는 25일부터 창작자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로부터 투자를 받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전시자금을 모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대안예술공간 이포'에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또 3월1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되는 <유니온아트페어x비브스튜디오스> AR 전시에도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앞서 지난 2019년 여름 텀블벅 프로젝트에 참여해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About Red’ AR/VR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도 사이트로 접속하면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오프라인의 대표적 전시공간인 ‘화이트 큐브’는 신진화가들은 전시를 할 엄두도 못 낼 뿐 아니라 학교나 대관 전시회도 기간이 한정돼 있어 아쉬움이 많았지만, 온라인 전시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없어 신진작가들에게 새로운 전시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이윤서 작가가 온라인 가상공간에 전시중인 ‘About Red’ 개인전. http://vehindesign.com/3Dexhibition/AboutRed/로 들어가면 음악과 함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 이윤서

이 작가가 학교 앞 카페에 이어 김포시에 있는 카페 ‘나울’과 온라인 가상공간에 전시 중인 작품들은 그가 3년째 진행하고 있는 ‘About Red’ 시리즈 일부다. 지금 카페 ‘나울’에 전시한 작품은 어두운 빨간빛을 써서 미래를 향한 “무형의 불안”을 표현했지만,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하는 ‘About Red’ AR/VR 개인전은 밝은 빨간빛을 사용해 “뜨겁게 타올라 위로 솟아오르기도 하지만 나를 버겁게 짓누르기도 하는”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물감에 물풀, 실리콘, 아크릴, 한지 등 재료를 섞어 다양한 질감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화가 겸 큐레이터가 되겠다며 시작한 이후 대학 입시까지 겪은 숱한 어려움을 떠올리면서 ‘내가 기회를 만들어나가려 하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무엇에 도전하든, 떨어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이 작가는 자기 작품에 반영된 불확실한 미래에 관한 ‘무형의 불안’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자”는 자세로 길고 긴 코로나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 사진에서 왼쪽 그림은 이윤서 작가가 물감에 슬라임을 섞어 특이한 질감을 표현한 작품이고, 오른쪽은 농도를 달리해 표현한 작품이다. ⓒ 박서정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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