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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국가책임제’는 무슨 책임을 졌나

기사승인 2021.01.04  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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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호 기자 dooh5@naver.com

- [단비현장] 중증 환자 못 돌보는 ‘치매안심마을’

'치매가 있어도 행복한 우리마을'. 경북 김천시 감문면 남곡리 마을 입구에 서있는 ‘치매보듬마을’ 표지판이다. 보건복지부가 대통령 선거공약인 ‘치매국가책임제’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사업으로, ‘치매에 걸려도 요양시설에 가지 않고 이웃의 도움을 받아 내가 살던 집에서 살 수 있게 한다’는 목적으로 시행중이다.

   
▲ 김천시 남곡리 입구에 서 있는 ‘치매안심마을’ 표지판. 경상북도는 ‘치매보듬마을’이란 이름으로 도내 수십 곳에 치매안심마을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 박두호

치매환자 프로그램 없고 주민 예방활동 

가을걷이가 마무리되고 있던 작년 11월 16일 찾아간 남곡리에는 배추 수확이 한창이었다. 배추를 뽑고 있는 나이 많은 주민들에게 ‘치매안심마을’로 지정된 뒤로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노인들만 있다가 젊은 사람들이 와서 다같이 빵도 만들고, 컵이랑 병따개 같은 것도 만들면서 이야기하고 노는데 좋더라고요. 집에만 있으면 지겨운데 재미있는 일이 생긴 거지. 강사가 와서 교육도 하고 같이 노래하고 체조하면 신나고 무엇보다 몸이 개운해져. 동네 사람들끼리 매주 벽화 그릴 때는 모두 함께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이연순(82) 씨는 “걷기 운동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하니 마을에 활력이 생겼다”며 “이런 활동이 치매예방에 도움이 돼 아직 이 마을에는 치매환자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을 이장에게 확인해 보니 이 마을에는 아흔살이 다 된 할머니가 경증단계 치매에 걸렸는데 동네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했다. 치매 걸린 당사자는 치매안심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도 않고 지원도 받지 못한다.

   
▲ 보건복지부는 2017년 9월 치매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치매안심마을'의 목적을 "치매환자가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계속 생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 명시했다. ⓒ 보건복지부

2년 전 치매안심마을로 지정된 첫해는 매주 강사가 와서 치매예방교육을 하고 레크레이션 활동과 공예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두 번째 해는 강사도 오지 않고 간식비 정도만 지원해 주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정작 보살핌과 간병이 필요한 중증 치매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지원방안은 하나도 없었다. 기자가 찾아가 본 남곡리도 첫해는 활동을 좀 했지만 지난해 초부터는 지원이 줄고 코로나19까지 겹쳐 치매안심마을 활동은 중단된 상태였다. ‘치매안심마을’ 표지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청도군 송북리 치매안심마을에 사는 경증 치매환자 ㄱ 할머니의 주간 약달력(왼쪽)과 독거노인이나 중증장애인을 위한 응급안전알림서비스 시스템인 게이트웨이는 치매안심마을과 상관없는 방문요양보호사가 설치해준 것이다. ⓒ 박두호

중증환자는 요양원 갈 수밖에 없어

작년 12월 5일 찾아가 본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북리 ‘치매안심마을’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마을에도 경증 치매환자가 두 사람 있었는데 치매안심마을 프로그램 지원을 받는 것은 없었다. 80대인 ㄱ 할머니는 가끔 기억이 깜박깜박하는 것 말고는 아직 다른 증상은 없다. 거동이 불편해 요양보호사가 하루 3시간씩 방문해 청소와 식사를 챙겨주는데 이것도 치매안심마을과는 상관없다. 

요양보호사는 2008년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일환으로 요양이 필요한 노인에게 가정방문 등을 통해 생활을 지원하고 보살펴 주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ㄱ 할머니는 “지금은 요양보호사가 잘 돌봐 주고 있지만 상태가 더 나빠지면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가 중증으로 진전돼 환자 혼자 자신을 감당할 수 없어 종일 간병이 필요해지면 요양보호사가 감당할 수 없게 돼 치매환자를 전문으로 관리하는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는 환자나 그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질병으로 국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며 도입한 치매국가책임제에 따라 시행중인 ‘치매안심마을’이 중증 치매환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정부는 2017년 9월 치매국가책임제를 도입한 뒤 전국 256개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하고 339개 마을을 치매안심마을로 지정했다. 전국 치매안심마을의 운영 방식은 비슷하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다. 보건소별로 설치돼 있는 치매안심센터에서 강사를 매주 마을에 보내 마을회관 등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음악·미술 활동이나 체조같은 치매예방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사는 치매 증상과 치매 환자를 어떻게 돕는지 등 치매 인식 교육도 한다. 하지만 치매 환자, 특히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중증 치매환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이 건강한 일반주민에게 치매예방교육만 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남 거창군 치매안심마을의 연간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치매인식교육과 치매예방교실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치매 인식 교육은 치매의 이해, 노인 인권과 학대 예방법, 실종예방교육 등이 진행됐고, 치매 예방 교실은 종이접기나 미술치료, 부채∙손거울 만들기 같은 공예활동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건강한 일반주민 대상 프로그램이고, 24시간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중증 치매환자를 위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치매환자가 요양원에 가지 않고 살던 동네에 계속 지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전혀 아니다. 

   
▲ 경남 거창군 치매안심마을의 2018년 연간 활동계획표 ⓒ 박두호

치매안심마을 예산도 환자용은 없어

치매안심마을 지원 예산도 치매환자를 위한 것은 없다. 2020년도 보건복지부 예산 중 치매관리체계 구축에 배정된 돈은 2,068억원이다. 이 중 전국 보건소에 설치된 치매안심센터에 배정된 예산은 약 1,900억원으로 90% 이상을 차지하며 상당 부분이 치매안심마을 지원에 쓰인다. 전체 예산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치매안심마을 한 곳에 2000만~4000만원이 지원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단비뉴스>가 입수한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북리의 2019년 치매안심마을 예산 내역을 보면 전체 3000만원 예산 중 치매예방활동과 관련된 것은 치매예방체조보급비 100만원이 전부다. 명목상으로만 보면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지원예산으로 추정되는 것이 ‘치매서포터즈교육비’ 100만원과 ‘인지저하자 개선 프로그램’ 운영비용 120만원이 책정돼 있는데, 실제 치매환자를 위해 무슨 활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나머지 예산은 이름만 치매예방이나 다른 용도로 책정돼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주민참여활동’이란 명목으로 책정된 예산이 680만원인데, 치매안심마을 운영협의회 개최 외부위원 수당(80만원)과 치매안심리더활동비(1인당 20만원씩 2명 10개월분 400만원) 및 자원봉사자 활동비(1인당 1만원씩 20명 20회분 200만원) 등 모두 인건비로 배당돼 있다.

‘인지건강을 위한 환경개선사업’ 명목으로 책정된 예산이 1400만원으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데, 내역을 보면 핸드레일 설치, 신발장 설치, 칫솔걸이 설치, 출입문 안전장치, 꽃밭 조성, 마을벽화 그리기, 치매안심마을 입간판 설치 등 전부 치매예방이나 환자 돌봄과 직접 관련은 없는 것들이다.

   
▲ 경북 청도군의 2019년도 치매안심마을 사업 예산 내역 ⓒ 박두호

또 ‘지역주민 치매 이해’ 명목으로 할당돼 있는 게 600만원인데, 이것도 소싸움축제 반시축제 문화행사 참여 등 지역축제 문화행사비용(200만원)과 ‘우리마을 한가족’ 프로그램(200만원)과 치매극복 걷기대회(200만원) 등으로 역시 치매예방과 치매환자 관리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말로는 치매안심마을을 지정해 ‘치매가 있어도 환자나 가족이 행복한 마을’을 만든다면서 실제 예산은 치매와 상관없는 일에 대부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형 요양시설이 대안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는 인지력 높은 사람들을 모아 치매 예방교육을 하는 것이 치매안심마을이면 모든 마을의 경로당을 치매안심마을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런 것을 두고 ‘치매안심마을’이라 이름 붙였다면 이것이야 말로 보여주기식 정책의 전형입니다. 정말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치매환자들이 마을회관에 모일 수 있을까요? 치매안심마을은 중증 치매에 걸리거나 돌봐 줄 사람이 없는 환자를 위한 곳이어야 합니다.” 

사단법인 복지마을 장봉석 대표는 “지금 시행중인 치매안심마을은 치매환자나 가족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치매안심마을을 운영하려면 일본의 오무타시나 네덜란드 호그벡처럼 마을형 요양시설을 모델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그벡 마을은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세계 최초 마을형 요양시설이다. 2009년에 세워진 이 마을은 16,000㎡(4,840평) 넓이 터에 세워진 중증 치매환자 요양시설로 주거 시설과 함께 카페, 마트, 미용실, 공연 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이 마을에는 170명 정도 중증 치매환자가 살고 있다. 

   
▲ 네덜란드 마을형 요양시설 호그벡에 있는 마트 ⓒ vivium

아주대 김민규 교수의 “치매 친화적 환경으로서 치매안심마을에 대한 정책적 고찰”에 따르면 호그벡 마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두 가지다. 치매마을이 단순히 치매환자가 삶을 연명하는 공간이 아닌 자신의 삶을 즐기는 공간이어야 하며, 치매환자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어서 환자를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에 있는 한 카페에서 치매환자들이 음악을 연주하거나 동료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카페 직원이 있지만 누가 환자이고 직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환자친화적인 공간이다. ⓒ vivium

호그벡 마을은 환자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카페, 미용실, 마트 같은 시설에 치매환자들이 활동하면서 다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곳곳에 설치했다. 또 170명 전담직원과 버스 운전 등을 하는 자원봉사자 140여명이 마트나 카페 미용실 등 마을 곳곳에 배치돼 보이지 않게 치매환자들을 돌본다.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들도 하얀 가운을 입지 않고 평상복으로 근무하면서 환자가 필요로 할 때 바로 치료나 간병을 하기 때문에 치매환자나 가족들이 이곳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여기지 않도록 해 준다. 

이곳은 치매환자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치매환자들이 모여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된다. 중증 치매환자는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거나 요리를 하는 등 가능한 데까지 스스로 일상생활을 한다. 소그룹 공동생활을 꾸려 주어 최대한 치매환자들이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참여를 유도한다. 이러한 사회활동은 소속감과 사회적 관계를 갖게 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프랑스도 이 마을을 벤치마킹해 작년에 파리 외곽에 알츠하이머 마을을 완공하는 등 호그벡 마을은 세계 각국 정부가 새로운 치매 관리 모델로 주목하고 있다. 

국공립 치매전담 요양시설 확충해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양난주 교수는 “치매안심센터는 치매진단과 약간의 예방 프로그램 제공밖에 하지 못해 치매국가책임제를 한다고 할 수는 없다”며 “치매보장을 위한 장기요양보험을 개혁하는 것이 더 우선적인 국정과제”라고 말했다. 장기요양보험 개혁을 통해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치매환자 전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을 늘려 나가는 것이 급선무란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5%에 불과한 국공립 치매요양시설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새 정부 출범 후 국공립요양병원은 한 곳도 더 건립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폭력이나 환각 등 이상행동 증상이 심한 중증 치매환자를 집중치료하는 곳으로 79곳의 공립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치매안심병원을 지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된 곳은 4곳이 전부다. 

“정부는 공립요양병원을 치매안심병원을 지정하겠다고 했는데 인력과 시설 기준이 너무 높아 지금까지 지정된 게 4곳에 지나지 않아요.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면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돼야 하는데 정부는 모든 시설을 갖춘 95점 이상을 요구하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과, 신경과 의사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민간요양병원은 정신과나 신경과 의사가 없어도 운영이 가능합니다. 시설이나 인력을 확충하면서 동시에 일정 요건을 갖추면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하는 것을 병행해 나가야 합니다.”

전주시노인복지병원 이남진 원장은 “민간병원들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중증 치매환자를 위한 치매안심병동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며 “국공립요양병원이 나서서 치매안심병동을 적극 확충해 나가는 것이 치매국가책임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812만명인데, 이 중 치매환자가 83만명으로 전체 노인의 10.3%를 차지한다. 보건복지부는 10년 전인 2010년에 8.7%였던 치매 환자 비율은 2020년에 10.3%로 늘어났고 2050년에 16%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가족 중에 치매환자가 발생하면 개인에게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큰 부담을 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제 치매정책동향 2019’에 따르면 2019년에 치매관리비용으로 16조 3천억원이 들어갔다. 치매관리비용은 치매환자의 치료와 돌봄에 들어가는 직접의료비, 직접비의료비, 장기요양비용, 간접비가 포함된다. 작년에 치매환자 1인당 연 평균 2천만원의 비용이 들어 갔는데, 치매 초기 환자는 연간 1,490만원 가량이 들어간 반면 중증 환자는 약 3,200만원으로 치매 초기 환자보다 2배 이상 비용이 든다. 

이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치매환자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려면, 유명무실한 치매안심마을에 돈을 들이지 말고 국공립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을 대폭 확충해 나가는 정책 전환이 시급해 보인다.   


편집: 민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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