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체온과 기온’

▲ 민지희 기자

코로나19 확산 이후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는 듯한 불안감을 느낀다. 어디를 가도 체온을 쟀다. 이상 없으면 코로나 무증상자라는 확인증을 손목에 둘러준다. 체온 36도에서 1도라도 올라가면 ‘코로나 감염자’로 격리당할 수 있다. 체중계 숫자가 전날 야식을 먹었다고 나를 혼내주는 것처럼 매일 마주하는 체온계 숫자는 혹시 어제 만난 친구가 바이러스를 옮기지는 않았을까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불안감에서 살짝 벗어나는 숫자, 36.8. ‘괜찮다’고 안도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지구도 우리처럼 불안감을 느낀다. 한없이 자신을 내주는 어머니 같은 지구는 인간이 저지른 무분별한 난개발과 공해 배출로 날마다 체온을 재야 하는 위중한 신세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린 한 보고서는 기후위기에 따른 세계적 재앙을 막으려면 지구의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발간한 'WMO 지구기후보고서’(2015∼2019)에서 전 지구 지표면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7도, 앞선 5년보다 0.3%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구는 괜찮지 않다.

‘기후위기’의 중병에 걸린 지구는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는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은 ‘2000~2019년 세계 재해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년 동안 세계에서 발생한 자연재해 7,348건 중 기후위기에 따른 게 6,671건이라 밝혔다. 이는 앞선 20년보다 1.8배 증가한 수치다. 지구가 병들자 우리에게 이 사실을 직접 알리지 못하는 동식물이 가장 먼저 보금자리를 잃었다.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이 발표한 ‘2020년 살아있는 지구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6년 4,392종의 포유류·조류·양서류·파충류·어류를 관찰한 결과 평균 개체수가 68% 줄어들었다. 우리가 체온계 앞에서 안도하는 순간 생태계는 이미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 기후 위기에 따른 지구 재앙을 막기 위해 지켜야 할 기온 상승 폭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구는 괜찮지 않다. © pixabay

우리는 지구가 아직 ‘괜찮다’고 믿는다. 부모가 되기 전까지 자식이 부모 마음을 모르는 것처럼 언제까지나 지구의 자정능력이 인간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1970년대 초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가이아 이론’이라는 논문에서 ‘녹색식물과 박테리아 등이 존재하는 한 지구 대기는 항상 지금 농도로 조절되고 온도 또한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30여 년 지난 2008년 출간한 <가이아의 복수>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저지른 환경오염으로 지구는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며 자기 이론을 완전히 수정하고 반성한다. 100세가 넘은 그는 지금도 지구가 살려면 지속가능한 발전 대신 ‘지속가능한 퇴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이후 생활 속 환경오염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환경부가 전국 공공시설에서 수거한 폐기물량 조사에 따르면 플라스틱 쓰레기는 734t에서 848t으로 15.6% 늘었다. 비대면 생활방식이 자리잡으면서, 배달∙포장 중심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폐플라스틱은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코로나19로 발생한 플라스틱의 약 75%가 매립지를 가득 채운 뒤 바다에 떠다니며 오염을 일으킬 것으로 추정했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발표한 ‘플라스틱 대한민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바다에서 발견되는 쓰레기의 82%는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이었다. 정부는 2018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2030년까지 50% 감축하고 재활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플라스틱 관리 및 규제 강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전국 지자체 96%가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허용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마지막 강물이 더럽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비로소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미국 원주민 크리족은 자연과 우주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며 인류에게 종말을 경고했다. 대지의 어머니인 지구를 잃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 친환경 연대가 필요하다. 지구는 우리 몸과 흡사하다. 지구 표면온도가 2도 올라가는 것은 우리 체온이 42도를 넘는 것과 같다. 생명을 잃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을 타인에게 미루는 동안 기후위기는 더 심각해질 뿐이다. 지구는 오늘도 체온계 앞에서 말없이 흐느끼며 고작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우리를 걱정한다. 지구의 온도를 우리가 걱정할 때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신현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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