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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노동자에게 ‘보이는 손’을 내밀자

기사승인 2020.12.16  16: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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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인 기자 2015veritas@naver.com

- [청년기자의 시선2] ‘야, 한국사회!’ ➂ 보이는 손

새롭게 등장한 노동 유형 

자전거를 타고 혜화로터리에서 한성대입구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네거리 신호등 앞에서 ‘끼익’ 브레이크 소리와 ‘쿵’ 하는 쇳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빨간 신호로 바뀌기 전에 지나가려던 오토바이가 급정거로 핸들이 꺾이며 넘어졌다. 지나던 시민들이 달려가 오토바이에 깔려있던 빨간 조끼 배송기사를 부축해 일으켰다. 배송기사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괜찮다며 오토바이를 바로 세웠다. 모두 그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배송기사는 곤란한 표정으로 휴대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더니 다친 다리로 오토바이를 타고 금세 사라졌다.

‘집에 도착하면 2시인데, 5시에 다시 출근해야 해요. 저 너무 힘들어요.’ 서울 동대문지사에서 근무하던 택배기사 김모 씨가 사망 사흘 전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다. 김 씨는 죽은 여느 택배노동자들처럼 과로가 일으킨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했다. 올해 13명의 택배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었다. 코로나19로 택배물량이 급격히 많아지면서 이들의 노동강도가 커진 것이다. 13명이나 죽고 나서야 택배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그동안 우리가 살고 있던 세상은 위험한 질주를 하는 배달노동자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택배기사를 자영업자라 여겨 그들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위험한 노동에 내몰리는 노동자라는 걸 우리 사회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3차산업혁명인 ‘정보혁명’을 지나,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4차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기술의 변화는 사회구조와 생활방식을 바꾼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운송수단은 인간의 공간적 한계를 없앴고, 공장 컨베이어벨트는 생산을 증가시켰으며 인터넷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다. 역사적으로 기술발전이 인간에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전쟁도 함께 늘어났고, 혐오를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증가했다. 사람보다 노동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어 인간소외가 일어났다. 4차산업혁명 시대도 마찬가지다. 기술변화에 적절한 제도와 법이 없는 상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법의 사각지대 놓인 노동자들

이미 변화는 시작됐고, 노동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도 새 노동 유형의 하나다. 이들은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와 연결된다. 일하다 다치면 산재 처리를 해주는 회사도, 장시간 노동에 주휴수당을 받을 수도 없다. 배달라이더는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자다. 회사의 직원이 아닌,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를 연결하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그동안 ‘요기요’나 ‘배달의 민족’ 등에서 일하는 라이더는 회사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회사와 배달료를 협상하거나 무리한 배달을 거부할 수 없다. 회사가 지정하는 콜을 1분이라도 늦게 보면 패널티가 가해지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더 빠르게 배달을 요구받으며 위험하게 도로에 내몰린다. 최근 플랫폼 노동 분야에서 일부 회사와 노동자들이 자율협약을 체결해 노동환경을 개선한다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9만 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단한 현실 속에 있다. 

   
▲ 작은 변화지만 노동현장에서 희망도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배달앱 ‘요기요’와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고 배달을 대행한 라이더가 ‘요기요’ 소속 노동자라는 판단을 내렸다. 정부가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처음 인정한 것이다. ⓒ KBS

비정규직 노동자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2019년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36.4%로 전년도보다 3.4%p 상승했다. 이들은 하청의 하청 형태로, 제대로 계약서도 쓰지 않고 위험한 노동현장에 내몰린다. 일하다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스물네 살 김용균이 운송설비를 점검하던 중 사망했다. 그는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직원이었다. 태안화력발전소와 같은 원청 기업들은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떠맡긴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다. 원청회사인 대기업은 일하다 사고가 나도 하청업체 소관이라며 책임지지 않는다.

2019년 12월, 김용균의 죽음이 있고 1년 뒤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열악한 비정규직의 노동환경을 개선해 더 이상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법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법에는 김용균이 없다. 개정된 법안의 하도급 금지 및 승인 필요성이 명시된 업종에서 화력발전소를 비롯한 다수 업종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개 발전사인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에서 발생한 인명 사고는 346건이고, 97%는 하청 업무에서 일어났다. 위험의 외주화를 가장 강력히 금지해야 할 업종임에도 규제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김용균이 일하다 사망한 그곳에는, 또 다른 비정규직 김용균이 건전지 교체되듯 자리를 대신해 지금도 일하고 있다. 

   
▲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2014년 32.2%에서 2019년 36.4%로 계속 상승했다. 이들은 계약서도 없이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위험한 작업에 내몰린다. ⓒ 통계청 2019 경제활동인구 조사

노동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한다

사회 변화에 따라 제도와 법을 정비하려면 기존의 평등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 노동현장의 평등 문제를 살펴보자. 노동 평등을 논의하려면 변화된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의 정의부터 논의해야 한다. 비정규직은 노동자인가? 택배노동자는 노동자인가?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인가? 기존 노동자의 평등만을 외치는 것은 새롭게 등장해 엄연히 존재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불평등을 눈감아 버리는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 변화 속에서 노동자를 누구 하나 낙오시키지 않고, 법 앞에 평등하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기반을 지금 만들어 내야 한다. 변화한 노동 현실에 따라 기존 노동법 항목들을 하나하나 따져 보고, 개정되어야 할 부분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 존재하는 노동법만으로 새로운 노동자들을 포괄할 수 없다면, 그들에게 맞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방법도 논의되어야 한다. 노동 정의가 모호한 상태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노동조건은 더욱 열악해지고, 위험의 외주화는 더 빨라진다. 

경제학 이론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수요-공급의 법칙은 합리적이지만 평등한 법칙은 아니다.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이 올라가고,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내려가는 이 법칙은 노동시장에서 불평등을 심화한다. 코로나로 세계적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지금, 노동시장에서 공급은 언제나 수요보다 많다. 노동력이 필요한 이들은 더 싼 가격에 노동력을 찾는다. 

당장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가장 낮은 가격에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은 아르바이트생이 대표적이다. 자영업 사장님들은 소비 침체로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자,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기존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했다. 근로자가 주 5일 15시간 이상 근무하면 주휴수당을 주어야 하기에, 남은 아르바이트생 역시 한 시간 또는 두 시간 등으로 짧게 나누어 고용하는 현상도 늘어났다. 

‘보이는 손’을 세워라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 영역에서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한 애덤 스미스는 틀렸다. 오늘의 변화와 현실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변화한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 노동자를 보호할 수는 없다. 정부는 노동의 영역에서 새로운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보이는 손’을 당장 내밀 때다. 사회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고, 힘든 이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고통받으며 일하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먼저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를 고용보험의 테두리에 들여와야 한다. 생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위험한 근로현장에 내몰리는 사람들에게 아프면 쉴 수 있고,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며, 살아서 가족에게 퇴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감염보다 경기 침체가 더 무서운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인 지원책도 필요하다. ‘코로나 블루’가 누군가에겐 단지 집 밖에 못 나가는 우울이지만,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 자영업자들에겐 피눈물이다. 그들을 위한 지원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진심 어린 공감에서 나와야 한다. 몇 백만원을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이들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도움이 아니다. 임대료를 인하하고 대출이자를 줄여주는 등, 생계를 유지하는 데 실효성 있는 재정적 도움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 지난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을 받은 소상공인 2명 중 1명은 지원금을 임대료 지급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코로나 피해계층에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논의중이지만, 비현실적인 응급처방에 사회적 약자와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고통은 깊어가고 있다. ⓒ KBS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근절하기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 한 업종에서 되풀이해서 산업재해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노동자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사업장 환경 탓으로 보아야 한다. 사고 뒤 후속 처리가 아니라, 애초 산업재해가 일어나지 않게 할 방안이 강구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산업재해에 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적용받지 않는 업종을 최소화하고, 노동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안전교육을 진행하며 작업환경을 감시할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노동자를 위해 꼭 필요한 정부의 ‘보이는 손’이다. 일하다 죽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노동자들의 죽음을 방치하는 기업을 엄벌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정부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이 세운 촛불 정부다. 비정규직도, 자영업자도, 플랫폼 노동자도, 민주주의의 ‘민’이다. 2017년 겨울에 그들이 흔든 촛불의 의미는 퇴근 후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따듯한 밥을 먹고, 일터에서 부당하게 죽지 않고, 일한 만큼 노력을 인정받는 사회였다. 국민이 탄생시킨 이 정부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도록 감시하고,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야, 한국 사회!‘ 2020년이 저물어간다. 촛불로 탄생한 개혁 정부 임기가 1년 남짓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어떤 얼굴로 서 있는가? 진척이 없는 개혁과제의 달성, 코로나19가 낳은 공동체 붕괴와 경제위기 극복, 뉴노멀로 상징되는 미래사회 준비 등 현안이 산적한 한국사회의 당면과제를 짚는다. (편집자)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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