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똘레랑스'

▲ 강주영 기자

캐나다를 여행하다 곳곳에서 눈에 띈 것이 토템폴이었다. 인디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주인으로 살던 시절 수호신으로 받들었던 것이다. 한 박물관은 캐나다 역사가 정복과 약탈의 역사였음을 보여주었다. 벽면 전체에 인디언 얼굴 사진들이 네모 액자에 들어있는 전시장도 있었는데, 금방 지나온 전시장에 걸려있던 박제된 사슴 머리들이 생각났다. 벽 앞에 접근금지선이 둘러쳐져 있고 백인 안내원이 관람객에게 주의를 주는 모습은 인디언보호구역에 갇혀 사는 원주민을 연상하게 했다.

르네상스가 꽃핀 뒤 서양인에게 인간은 세상의 중심이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그들은 자연을 도구로 사용했다. 자연은 그들에게 정복할 대상이었고 숲을 밀고 길을 내 산업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정복의 대상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겨갔다. 인종의 우열을 가려 백인들의 식민지 확장을 합리화했고 식민통치는 신의 가호를 베푸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 토템폴(Totem pole)은 원주민들이 부족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아 세웠다. Ⓒ Pixabay

그들의 사고방식은 프랑스의 ‘똘레랑스(tolerance)’에도 배어 있다. ‘관용’이라 해석하는 이 단어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귀족이나 가진 자들이 누리는 부를 가난한 이들과 나누려는 선의 뒤에는 기득권 구조를 인정받으려는 우월의식이 깔려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귀한 신분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신분제의 영속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강자인 현명한 인간이 약자인 미개한 자연을 이용하기 위해 파괴할 수 있다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히말라야 산맥 아래 라다크 지역에도 ‘관용’의 습속이 있다. 그런데 라다크인이 믿는 관용은 다르다. 내가 아픈 만큼 상대도 아플 것이라고 생각해 타인의 분노와 고통을 불러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르-호지는 라다크인과 생활하며 이들이 이웃을 걱정해 ‘더불어 살아야죠’란 말을 반복했다고 썼다. 더불어 산다는 건 상대방 마음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관용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아닌 서로 동등하다는 것을 기초로 한다. ‘리틀 티베트’라 불리는 라다크에 사는 이들이 믿는 것은 불교의 생명사상이다. 생명사상에 존재의 우위는 없다. 라다크인에게 관용은 곧 공생이다. ‘말을 백마리나 가진 사람도 채찍 하나가 없어 남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다’는 라다크 속담은 가진 것이 있든 없든 서로 도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 인도 카슈미르 동부의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있는 라다크는 마을 공동체 중심으로 살아가는 지역이다. Ⓒ Pixabay

자연정복은 결국 인간의 미개함을 보여주는 역사였다. 지금은 도시 이름이 된 시애틀 추장은 자신들이 살던 땅을 팔라는 백인에게 이야기했다.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은 자신들 소유가 아닌데 어찌 사고 팔 수 있으며, 아버지이고 자식인 강과 땅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느냐고.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공생은 같은 선상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비 오는 일터에서 우산없이 일하는 노동자를 인터뷰하며 함께 비를 맞는 기자의 마음이 여기 있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딸내미를 기다리며 자동차 좌석을 데우는 아버지 마음도 여기 있다. 편리함을 포기하고 물티슈 대신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마음도 거기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정확한 원인과 확산 경로를 몰라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라다크인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질병이란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조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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