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공유’

▲ 조한주 기자

165cm 길이 싱글 침대에서 20대를 시작했다. 자리에 누우면 발바닥이 벽에 닿았다. 불편해서 항상 새우잠을 잤다. 여성전용고시원이라, 20대 여성 평균 키에 딱 맞춰 만든 듯했다. 내 방은 한 평도 채 안 되는 좁은 방이었지만, A4 한 장도 안 되는 창문 덕에 프리미엄이 붙어 한 달에 40만원을 내야 잘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살던 꼭대기 층에는 방이 28개가 있었다. 여자 28명이 일반 가정집 화장실을 칸막이로 나눈 곳에서 변기 하나와 샤워기 하나를 나눠 썼다. 아침 저녁마다 샤워실 쟁탈전이 벌어졌기에, 재수생이던 나는 괜히 죄인이 된 느낌이 들어 주로 새벽에 씻었다. 물도 잘 안 나오는 샤워기에 의지해서 새벽 2시에 노래도 못 틀고 샤워를 하고 있노라면 눈물이 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내 화장실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다.

흔히 공유는 좋은 의미와 함께 우리 사회 새로운 대책으로 여겨진다. 나에게는 ‘공유’가 서러움이었다. 옆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조악한 칸막이 너머로 그 인간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불쾌함.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해결할 수 있는 서러움. 그렇게 기다리다 겨우 들어가면 오래 있고 싶었다. 샤워도 한 시간씩 했고, 볼일을 다 봤는데도 괜히 앉아서 버티곤 했다. 내 욕실은 아니지만 잠깐은 나만이 사용하는 공간이니까. 그런 일을 겪다 보니 ‘내 것’을 향한 집착이 생겼다. 이후 집을 보러 다닐 때마다 나는 화장실을 먼저 확인했다.

▲ 2019년 3월 발행된 국토연구원의 <국토이슈리포트>에 따르면,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37만 가구 중 약 19만 가구(51.5%)는 수도권에 살고 있고, 이 중 13만 가구가 고시원이나 고시텔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중 청년가구가 9만8000가구였다. 수도권 준주택 거주자 절반이 청년가구다. ⓒ KBS

무소유에 가까운 공유는 소유에 관한 집착을 불러온다. 뉴스에서 부동산이나 토지에 집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없어 봐서 저런다’는 생각이 든다. 배고플 때마다 먹을 걸 주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개 식탐이 없는 것처럼, 집도 마찬가지 아닌가? 집 없는 서러움을 못 느꼈다면 저렇게까지 주택 소유에 집착할까? 아니, 과거 어느 순간에, 집이든 뭐든 부동산 무소유로부터 비롯한 서러움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에 다들 집착하는 거라 확신한다.

딱 서러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 고시원에 욕실 28개가 있거나 한 층에 욕실 1개를 나눠 써도 괜찮을 만큼 적게 살았다면, 새벽마다 내가 느끼던 서러움은 덜했을 터이다. 수도권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 수만큼 집이 있다면, 아니 수도권에 부동산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적다면, 지금 같은 부동산 대란은 없을 것이다. 서럽지 않을 만큼 많은 집을 공유하면 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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