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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편이야?

기사승인 2020.12.04  20: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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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PD dend0710@gmail.com

- [청년기자의 시선2] ‘야, 한국 사회!’ ➀ 편 가르는 사회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야, 한국 사회!‘ 2020년이 저물어간다. 촛불로 탄생한 개혁 정부 임기가 1년 남짓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어떤 얼굴로 서있는가? 진척이 없는 개혁과제의 달성, 코로나19가 낳은 공동체 붕괴와 경제위기 극복, 뉴노멀로 상징되는 미래사회 준비 등 현안이 산적한 한국사회의 당면과제를 짚는다. (편집자)

각자도생하는 한국사회

2019년 1월 방송인 유병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엄마 아빠는 PC충’이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PC충’은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에 벌레(蟲)를 붙여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편견과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서 차별을 줄이자는 ‘PC함’을 희화화하고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PC하는 사람들과 등을 지고 비난하는 것이다. 정치이슈를 제기하는 사람과 정치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의 편 가르기 싸움이다. 그 아래 다시 “그 성별이 그 성별했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PC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여성으로 빗대어 비난하는 것이다. 정치로 편을 가르고 벌이는 싸움을 남녀 갈등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비난하며 다시 성별로 편을 갈라 싸운다.

일상에서 네 편과 내 편을 가르고 싸움질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편 가르기 맨 앞에 정치가 있다. 정치는 대안과 입법으로 산적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삶의 현장이어야 한다. 우리 정치는 어디 있는가? 정치는 올바름보다 내 편, 내 이익만을 주장하는 편 가르기 정쟁의 장이 되었고, 눈만 뜨면 상대 진영 공격을 일삼는 정치인을 따라 국민도 적과 아군으로 나뉘었다. “너는 문재앙 편이냐?” “그러는 너는 국민의짐 편이냐?” 아군이 아닌 사람은 적이 되는 사회다. 아군과 적이 아닌 형태의 관계는 오히려 긴장하게 된다. 상대의 정체성을 모르니까 언제 편 가르기로 나올지 의구심이 생긴다.

사람의 취향만으로도 네 편과 내 편을 가른다. 2018년 팬미팅에서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이 최근에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인터넷 커뮤니티에 ‘82년생 김지영을 보다니 탈덕합니다’라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방금까지 응원하고 팬이라고 자처하던 사람들이 소설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돌아선 것이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사이트만으로도 이미 네 편과 내 편이 결정 난다.

2017년 12월 소셜미디어에 ‘#SBS_막내작가_강요하차’, ‘#SBS_막내작가_부당해고’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올라왔다.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 인터넷 라이브 방송중 게스트인 만화가 이말년이 막내작가에게 “작가님 ‘여성시대’도 하시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 후 남성 청취자들이 작가 개인 SNS를 찾아냈다. 작가가 유명 페미니스트를 팔로우하고, 페미니즘 관련 사진을 올린 걸 본 청취자들은 제작진에게 남성이 주로 듣는 라디오에 여성주의를 이야기하는 작가를 하차시키라는 요구를 했다. 결국 작가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했다.

심지어 커뮤니티가 아니라 네이버와 다음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로도 편을 나눈다. 내 편인 사람들과는 연대하지만 다른 편인 사람은 적대하는 진영논리 사회. 진영논리는 차별과 혐오를 낳아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편 가르기로 생긴 골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진다. 2020년 한국 사회는 진영을 나누고 자기 편만 옳다 주장하며 살아가는 각자도생 사회다.

   
▲ 편 가르기는 취향으로도 네 편과 내 편이 나뉜다. 2018년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남성들은 팬을 그만두겠다고 돌아섰다. Ⓒ SM엔터테인먼트, 민음사

2016년 광화문 촛불의 기억

2016년 겨울 수많은 시민이 백만 개가 넘는 불빛이 되어 거리를 밝혔고, 하나의 커다란 불빛이 됐다. 2016년 11월 12일 3차 범국민행동 때 광화문에 주최측 추산 106만명이 모였다. 날씨가 점점 추워졌지만 같은 해 12월 3일 6차 범국민행동 때는 주최측 추산 232만명이 모였다. 당시 촛불은 국민의 마음이었다. 촛불은 불평등과 차별을 통해 특권층만이 이익을 누리는 현체제에 대한 저항이었다. 당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사람들은 다양한 집회 아이템을 사기도 했고, ‘혼자 온 사람들’, ‘고양이 노동조합’ 등 재미있는 메시지를 적은 깃발을 들었다.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저항이 일상이 된 것이다. 저항의 불꽃은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탄핵해 정권을 무너뜨렸다.

구정권이 무너지고 시민의 기대 속에 새 정권이 들어섰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였다. 모두 세상이 더 이상 ‘불평등’ ‘불공정’ ‘불의’가 아닌 ‘평등’ ‘공정’ ‘정의’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나라를 기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였던 큰 불빛은 나뉘어 작은 불빛들이 됐다. 작은 불빛들은 자신들 주장을 이야기하듯 다양한 색깔로 빛을 냈다. 다양한 색깔의 불빛은 ‘반부패 개혁’과 ‘공정사회 실현’을 달성하라는 구체적인 실행 요구였다. 검찰 개혁을 비롯해 노동자, 여성, 노인, 청년, 부동산 문제 등등 오랫동안 쌓여온 과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문재인 정부에 쏟아졌다.

   
▲ 2016년의 촛불은 ‘반부패 개혁’과 ‘공정사회 실현’을 달성하라는 구체적인 실행 요구였다. ‘이게 나라냐’는 구호는 문제점이 쌓이기만 하는 무능한 정부를 향해 쏘는 화살이었다. Ⓒ Flickr

소통 없이 미래는 없다

촛불이 요구한 개혁과제는 지금 실종 상태다. 2017년 2월 16일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러 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경선후보에게 차별금지법에 관한 견해를 묻는 인권활동가에게 ‘나중에’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2020년 12월이 된 지금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은 안 됐고 대화를 위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 현장에, 시민사회에 대화와 소통이 없다. 정치는 정치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진영을 나누어 싸울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자기 주장만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목소리만 전국 곳곳을 채운다. 목소리는 들어보고, 양보하고, 장점을 받아들이기보다,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목소리다. 내 이익과 주장만 옳으니 상대방 목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지른다.

대화와 소통을 막는 건 만연한 편 가르기다. 2020년 11월 19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포괄임금제금지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게임업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힌 사람이 ‘우리도 아직 포괄임금제임, 그런데 쟤는 싫어”라는 댓글을 달았다. 정책은 찬성하지만 사람이 싫다는 불만의 글을 적었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류 의원을 싫어하는 이유를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예로 류 의원은 과거에 게임업계에 종사했다. 게임업계의 노동문제를 해결하고자 노조를 설립하고 활동했지만,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받았다. 권고사직을 받으며 회사로부터 퇴직위로금도 받았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권고사직으로 위로금을 받고 나간 사람이 ‘게임업계 해고노동자’라는 타이틀로 국회에 들어간 류 의원을 탐탁치 않아 했다.

내 편이 아닌 사람과는 대화조차 할 생각이 없다. 국어사전은 ‘대화’를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로 정의한다. 서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대화다. 진영으로 갈라서 자기 목소리만 내는 우리 사회에는 대화가 없다. 대화 없이 자기 뜻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대화 없이 소통 없고, 소통 없이 세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사이 세상은 더 망가지고, 아픈 사람들의 상처는 깊어 간다.

편 가르기가 낳은 차별과 혐오

편 가르기 싸움은 사안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어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대표적인 게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야의 싸움이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장관, 두 편으로 갈린 편 가르기 싸움은 검찰개혁이라는 목표를 흐리게 만들고, 정쟁에 빠지게 했다. 검찰개혁을 위한 방안은 논의하지 않고, 누가 우리 편인지 줄을 서서 상대방을 비난한다. 비난만 하면 다행이다. 아예 우리 편의 문제를 모른 척 눈감기도 하고, 응원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시작된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싸움은 여야 두 편으로 갈린 편 가르기 싸움이 됐다. 검찰개혁을 위한 논의는 사라지고 우리 편이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 <연합뉴스>

노사관계에서도 편 가르기는 심각하다. 자본가는 생산성 극대화만 주장하며 노동비용 상승을 이유로 노동조건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자본가를 향한 증오를 쌓으며 파업하고 굴뚝에 올라 목숨을 건 시위를 한다. 그 사이 노동자는 하루 6명씩 죽어 나가며 한 가정이 무너진다. 가정 파괴는 공동체의 붕괴이자 사회비용의 증가를 상징한다. 편 가르기로 대립하면서 서로 옳다고 주장하면 세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함께해야 미래가 있다.

진영논리의 문제는 사람과 지역과 직종에서 서로를 구분 짓고 차별하며 혐오를 낳는다는 점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동서로, 성별로, 연령으로 가르고 상대방을 차별하고 혐오한다. 자기 합리화와 편견은 심화하고, 갈등과 혐오는 깊어진다. 중재자 없이 적만 존재하는 편 가르기 싸움은 가족∙친구∙조직을 넘어, 사회∙국가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0년 지금 우리 사회의 맨 얼굴이다.

손을 잡으면 이긴다

“아일랜드에서 자라서 대화가 없으면 어떤지 알죠.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어요. 게이 권리는 주장하면서 다른 권리는 무시하다니요. 노동자 권리는 주장하면서 여성은 신경도 안 쓴다든가. 비논리적이잖아요.”

“복지관에 가면 현수막이 있어요. 백 년도 넘었죠. 상징이 그려져 있는데 두 개의 손이 맞잡고 있죠. 노동운동이란 그런 거예요. 서로를 지지하고 당신이 누구든 어디서 왔든 어깨를 맞잡고 손을 맞잡아야 해요.”

영화 <런던 프라이드>에서 LGSM을 만든 마크 애쉬튼과 탄광 마을의 데이비드 드노반이 나눈 대화다. 이 영화는 연결과 소통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영국의 탄광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성소수자 단체 ‘광부들을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들(LGSM: 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 이야기를 각색했다.

1979년 마가렛 대처는 ‘노조 길들이기’라는 공약을 내세우며 영국 총리에 당선됐다. 당시 영국 석탄산업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운영이 가능한 경쟁력 떨어지는 산업이었다. 대처는 광부노조를 ‘국민들 세금을 축내고 나라를 망치고 있는 존재’라며 탄광 폐쇄와 광부 감원을 선언했다. 광부노조는 전국적 파업을 벌였다. 광부노조가 파업하자 그동안 경찰과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성소수자들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성소수자들은 언론과 경찰의 공격이, 얼마나 무자비한지, 어떤 아픔인지를 알았다. 이들은 LGSM이란 단체를 만들어 광부들 파업을 지지했다.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탄광들은 LGSM의 연대를 받지 않으려 했다. 당시 동성애자가 AIDS를 옮긴다는 편견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변태’라고 부르며 차별해왔다. 우연히 웨일즈의 둘라이스 밸리라는 마을에서 LGSM의 후원을 받게 됐다. 탄광 마을은 LGSM으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았지만 성소수자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LGSM도 많은 후원을 했는데도 환영을 받지 못하니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탄광마을과 LGSM의 어색한 교류가 시작됐다.

여전히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와중에 LGSM의 멤버 조나단이 환영회에서 춤을 추면서 마을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을 사람들이 조나단의 춤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이들의 연대가 ‘진짜’가 되었다. 춤과 웃음을 통해 탄광마을 사람들은 LGSM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간 이후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서로 연대하며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파업은 1985년 3월까지 이어졌다. 대처의 강경 진압이 이어졌고 노조가 와해되자 광부들은 탄광으로 돌아갔다.

   
▲ 차별과 탄압을 받아온 광부들과 성소수자들은 자신들 권리만이 아닌 타인들 권리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었기에 연대할 수 있었다. 1985년 런던 게이 프라이드 행진에서 광부들이 LGSM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 BBC Films

광부노조와 성소수자의 연대는 파업 이후에도 이어진다. 1985년 6월 29일 런던 게이 프라이드 행진이 시작됐다. 프라이드 행진은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높이고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행사였다. LGSM과 연대한 광부들이 행진의 선봉에 섰다. 다음 해 영국 노동당 강령에 동성애자의 권리를 포함하자는 안건이 통과됐다. 핵심 노조 한 곳에서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전국광부노조였다. 연대 이전까지 서로 이해할 필요조차 없던 성소수자와 광부들이 연결된 건, 상대방의 어려움을 보며 공감한 덕분이다. 연대는 성소수자 권리 획득이란 역사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손을 잡으면 이긴다’고 말한다. 변영주 영화감독은 <런던 프라이드>에서 광부와 성소수자가 연대한 것을 보며 “네 마음속에서 혐오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그 사람의 불행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하며 상대를 공격하면 내 문제를 해결해줄 답도 찾지 못한다는 의미다.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헐뜯지 말고 손을 잡아 연대해야 한다. 연대란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 사전적 의미는 입장의 동일성을 강조한다. 입장을 같이 해 손을 잡아야 동지가 된다. 동지가 있으면 새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사회운동 현장에서 연대발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진영논리를 탈피한 뒤의 나와 너, 우리의 모습을. 서로 목소리를 높여 주장만 내뱉는 게 아니라 마주 보며 대화하며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그러면 내 아픔이, 내가 혐오하는 대상의 불행이 사라진다.

   
▲ 나무와 나무가 따로 있는 건 숲이 아니다. 나무와 나무가 손을 잡고 함께할 때 공동체인 숲이 되고, 함께 숲을 지킬 수 있다. Ⓒ 더불어숲

신영복 교수는 말했다. ‘더불어 숲: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나무(木) 하나는 비바람에 약하다. 나무끼리 손을 잡아 숲(林)이 되면 나무도 살고, 숲도 산다. 더이상 편 가르기를 그만두자. 나를 버리고 너에게, 우리에게 손을 내밀자. 너와 내가 손을 잡고 공동체로 연대하면, 함께 우리를 지킬 수 있다. 함께 재난을 극복하고 함께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사는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편 가르기에 매진한 2020년 한국 사회, 지금 다시 행복 찾기를 시작하자.


편집 : 이성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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