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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올 때까지’ 젊은 그들의 풀무질

기사승인 2020.11.23  19: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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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인 기자 2015veritas@naver.com

- [단비현장] 둘 남은 대학가 인문사회서점 생존기

‘잘 가요 종복삼촌’ 이후 풀무질 서점 1년 반 

“26년 두 달 하고 10일만에 서울 명륜동 풀무질 일꾼의 삶을 마쳤습니다.” (<단비뉴스> 2019년 10월 7일 ‘잘 가요 종복삼촌’ 기사 참조)

청춘을 바쳐 서울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을 꾸려왔던 은종복(55) 씨가 작년 6월 12일 서점을 그만두고 떠난 지 1년 반이 다 돼 가는 11월 20일, 책 읽기 좋은 가을 날 저녁에 찾아간 서점 풀무질에서는 작은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50㎡ 남짓한 지하 서점 안에 이름도 나이도 다른 사람 서너 명이 모여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이날 지정도서는 ‘성과 재생산포럼’이 기획해 펴낸 <배틀 그라운드>. 우리 형법 제27장에 규정돼 있는 ‘낙태의 죄’ 이면에 숨겨져 있는 성과 재생산권의 주요 맥락들을 법, 정책, 종교, 문화, 보건의료, 인권 등 전방위적 관점에서 논의한 책이다. 국가와 사회가 관리하고 간섭해 온 우리 몸이 ‘배틀 그라운드’(전쟁터)라고, 그에 맞서야 하는 우리가 있는 이곳이 전장(戰場)이라고 선언하는 이 책은 여성운동가, 연구자, 변호사, 의사로 구성된 성과 재생산 포럼이 그동안 활동해온 성과들을 담고 있다. 

책을 읽고 나온 참가자들은 지금 우리 사회 주요 이슈인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낙태죄를 정치화하기’ ‘인권과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본 임신중지’ ‘낙태의 범죄화와 가족계획 정책의 그림자’ ‘수용시설에 감금된 성과 재생산 권리’ 등 다양한 쟁점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 시간에는 적어도 풀무질은 서점이 아니라 커다란 서재로 꾸며져 있는 토론장 같았다.  

   
▲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 입구. 2019년 6월 서점 대표가 바뀌면서 새롭게 단장했다. © 유재인

록밴드 리더가 서점 지킴이로 나서

서점 풀무질의 독서토론회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복삼촌’이 떠나면서 풀무질을 인수한 전범선(29) 대표는 환경, 동물권, 페미니즘 등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저변확대를 위해 매주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를 열고 있다. 전 대표는 미국 다트머스 대학과 영국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가수 겸 작곡가로 록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보컬과 리더를 맡고 있다. 그런 그가 ‘종복삼촌’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려던 풀무질을 인수해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과 함께 단 두개 남은 인문사회과학서점으로서 명맥을 잇고 있다. 

전 대표는 이날처럼 매월 셋째 금요일 저녁 7시에 ‘페미니즘 읽기모임’을 열고, 첫째 금요일 저녁에는 ‘동물권 읽기모임’,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에는 ‘자정의 병 –광기의 인문학적 읽기모임’을 온-오프라인으로 열고 있다. 

   
▲ 서점 풀무질의 전범선 대표가 지난 8월 15일 책 <정면돌파>의 북 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 장유정

금요일엔 동물권과 페미니즘 토론

대학 시절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고 채식을 시작한 전 대표는 환경과 동물권에 관한 관심을 확산하려고 ‘동물권 읽기모임’을 만들었다. 첫 모임에서는 멜라니 조이의 <왜 우리는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읽고 토론을 벌였다. 모임이 끝날 때는 다음 달에 읽을 책을 정하는데, 12월의 책은 루스 해리슨, 레이첼 카슨의 <동물기계>이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독서토론회에는 적게는 5~6명에서 많을 때는 3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책방 안 토론장을 채운다. 

11월 들어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에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풀무질 작은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첫째 주에 <오드리 로드 베를린 시절>, 둘째 주에 <파밍 보이즈>, 셋째 주에 <야근 대신 뜨개질>이 상영됐고, 마지막 주에는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이 상영된다. 

주목받는 책이 나오면 저자를 초청해서 출판기념 행사와 북 토크를 한다. 독서 토론회나 작은 영화제의 참가 티켓은 풀무질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판매한다. 독서 토론회와 영화제는 회당 만원, 연사를 초청해 여는 강연과 북 토크는 무료강연에서부터 최고 30만원까지 다양한 티켓을 발매한다. 참가자들은 모임이 끝난 뒤 서점에서 관련 인문 사회과학 서적이나 소품 등을 사가기도 한다.

   
▲ 지난 10월 24일 이라영 작가의 책 ‘폭력의 진부함’ 의 북토크가 서점 풀무질에서 열렸다. ⓒ 장유정

인문사회과학 유지 위한 복합문화공간 

책방 풀무질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꾀하는 것은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관심 저하와 책을 읽지 않는 사회 분위기 확산으로 위기에 빠진 인문사회과학과 관련 서적 읽기를 유지∙확산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로 이행하던 1980년대 국민들의 민주의식 함양과 확산에 크게 기여한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은 2000년대를 전후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90년대까지 버티던 ‘전야’(서울대), ‘장백서원’(고려대), ‘오늘의 책’(연세대), ‘녹두’(동국대), ‘서강인’(서강대), ‘이어도’(한양대) 등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은 경영난으로 줄줄이 폐업하고 지금 서울 대학가에는 성균관대 앞 ‘풀무질’과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두 개만 남았다. 

풀무질 전범선 대표는 “서점에서 책만 팔아서는 수익이 많이 남지 않아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다”며 “서점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와 있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공기도 안 좋고, 앉을 공간도 없고, 행사를 하기도 힘들었어요. 여기서 모임도 하고 강연도 하고 사회운동도 일으켜 나가려면 사람들이 모여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공간을 바꾸려 했고, 그러면서도 원래 있던 것들도 많이 없애고 싶진 않아서 겉은 그대로고, 안에만 저희가 바꿨어요. 적절한 계승과 발전. 그런 생각을 했죠.”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도 많이 바꿨다. 전 대표가 풀무질을 인수한 뒤 지하로 내려가는 서점 입구는 짙은 초록색으로 멋스럽게 덧칠을 하고 그 위에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그래피티를 그려 넣었다. 서점 내부도 녹색 벽면에 갈색 책장을 배치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고 책장을 비추는 조명들이 분위기를 더하도록 했다. 서점 가운데는 책들을 전시하지 않고 독자나 고객들이 앉아 책을 보거나 쉴 수 있는 소파와 책걸상을 갖다 놓았다. 

커피를 주문할 수도 있다. 그냥 책을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와서 쉬고 생각하면서 관심있는 책을 읽어 보고 살 수 있게 유도하는 공간으로 꾸며 놓은 것이다. 여기에 정기적으로 독서 토론회를 열어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일반의 관심을 확산해 관련 서적 읽기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독서인구의 저변을 넓혀 인문사회학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지다.  

   
▲ 풀무질로 들어가는 입구. 여러 사상가들의 그래피티가 수놓아져 있다. ⓒ 유재인

출판사 만들어 인문사회과학 책 출판

전 대표는 풀무질에 들여놓고 전시하는 책을 직접 고른다. 출판사가 가져다주는 대로 매대에 올리기보다는 독자들의 관심과 취향, 시대적 흐름을 감안해 읽힐 만한 책을 직접 선정한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2019년 풀무질을 인수하면서 ‘두루미’ 라는 자체 출판사를 만들어 직접 책을 출판하기도 한다. 

출판사 이름을  ‘두루미’ 로 지은 것은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두루미처럼 여러 사상과 생각을 펼쳐내는 출판사가 되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출판사 두루미는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우리는 특권계급의 밥이 아니다> <비건 세상 만들기> 등의 책을 펴냈다. 전 대표는 “잊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상서들을 모아 발췌하고 축약한, 밀레니얼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사상서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 풀무질 전범선 대표가 설립한 출판사 두루미가 펴낸 책들. © 유재인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생존 비결

서울대 앞 서점 ‘그날이 오면’도 인문사회과학이 활짝 부활하는 그날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아 ‘동네책방과 대학생, 더 나은 사회를 이야기하다’란 행사를 열었다.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는 한 달에 한 번 ‘그날이 오면’과 서울대 학술 동아리들이 연대해 학교 인근 지역사회 독서 모임을 열어 강연과 토론의 장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페미니즘, 막스주의, 환경 문제 등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들을 깊이 있게 다루어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심야책방’ 행사의 하나로 <쓰고 싸우고 살아 남다>의 장영은 저자를 초빙해 ‘올바른 글쓰기의 방법: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글쓰기 철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관악구청이 시행하는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도 서점운영에 도움이 된다. 구민들이 동네서점에서 책을 대출받아 읽고 반납하면 그 책을 구청에서 전부 사들여 관악구 도서관에 비치하도록 해 동네 서점들이 사실상 구청 도서관에 책을 판매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도록 하고 있다. ‘그날이 오면’은 지난 9월에만 ‘바로대출제’를 통해 270여 권을 대출하고 판매했다. 

   
▲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앞에 관악구청이 시행중인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를 안내하는 플래카드가 서있다. © 유재인

인문사회서점 유지 조력자 ‘후원회’

‘그날이 오면’은 시민들로 이루어진 후원회가 있어 명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날이 오면’ 김봉운 대표는 “지난 2006년 ‘그날이 오면’의 역사와 의미를 아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도 경험과 자산을 나누게 하자며 후원회를 만들었다”며 “지금 100여 명의 후원회원들이 참여해 서점의 안정적 운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풀무질 전범선 대표도 작년 여름 서점을 인수한 뒤 누적된 부채를 갚기 위해 1천만원을 목표로 ‘텀블벅 펀딩’을 추진했는데, 80여명 후원자가 참여해 부채를 갚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전 대표는 “서점 인수 당시 추진하던 일회성 후원회를 발전시켜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의 후원회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급감하는 독서인구, 근본대책 시급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1998년 사회과학 분야 도서 한 종당 평균 발행부수는 1만 4460부였으나, 2019년에는 1024부로 감소했다. 21년 만에 발행부수가 7%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작년 한 해 사회과학 도서의 전년 대비 평균 발행부수가 7.5% 감소한 것에 비해 학습참고서는 2.7% 증가해 9196권을 기록했다. 

“최근 젊은 사람들 경향을 보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보다는 개인적인 부분. 즉 좀 더 나은 직장, 나은 학점, 스펙, 고시 이런 것에 매몰돼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인문사회과학 책들은 개인의 더 나은 인생을 만드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책이다 보니 그런 책들이 과거만큼 안 팔리는 거죠.”

서울의 한 대학 사회학과 재학생 이아무개(26) 씨는 “대학에 들어 와서 한 해 두 권 정도  책을 읽었다”며 “사회학과 4학년이지만 고전 사회학 도서는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고 말했다. 읽은 책들도 스스로 읽어야 되겠다고 생각해 읽은 것은 없고 모두 과제를 위한 독서였다고 덧붙였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동춘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지도 않고, 사지도 않는다”며 “인터넷 서점 판매 상황을 봐도 20대는 거의 책을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SNS 인터넷 등의 영향이 큰 데다 삶이 팍팍하고 노동시장이 불안하여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거의 읽지 않는 것 같다”며 “책을 사보려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 꼭 읽어야 하는 부분은 스캔을 해서 카페에 올려 주는데 얼마나 읽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풀무질’은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해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 것을말한다. 쇠를 달구거나 녹여야 연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람의 생각도 풀무질을 제대로 해야 사회와 세상에 필요한 인재로 만들 수 있다. 책방 ‘풀무질’이 책읽기와 토론이란 풀무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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