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소유와 공유’

▲ 양수호 기자

늦은 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장 부산으로 와주면 안 되겠냐는 연락이었다. 다음 날 오전에 아르바이트가 있어 부담스러웠지만, 밤 9시 넘어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 번도 무리한 부탁을 한 적이 없던 친구였다. 어렵게 탄 심야버스는 뻥 뚫린 도로를 달렸다. 고요한 버스는 생각에 잠기기 좋았다. 생각하다 보니 친구에게 궁금한 점이 많아졌다. 

터미널에서 만난 친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방학을 맞아 배달플랫폼 업체에서 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초보답게 작은 실수를 종종 저질렀지만, 그럭저럭 잘해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소문으로만 듣던 ‘진상고객’을 맞닥뜨리게 됐고, 나를 부산으로 부른 것이다. 그가 한 실수는 고객에게 전송된 배달 시간보다 20분 늦은 것이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그 고객은 친구를 복도에 세워두고 한참 혼냈다. 타워팰리스는 배달원 출입이 쉽지 않은데 친구가 헤맨 것이다. 그리고 ‘진상고객’이 마지막에 한 말이 나에게 전화를 건 이유라고 했다. “배달이나 하는 주제에 엘리베이터 타고 편하게 왔네.”

▲ 타워팰리스의 누군가는 잠이 든 시간, 배달원은 혼잣말로 자책했고, 술에 취해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노동이 끝나면 곧장 자기 삶으로 회귀해야 하지만, 플랫폼 노동자는 진상 고객에게 정신과 몸을 지배당했다. ⓒ pixabay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배달 문화다. 주거나 사무 공간뿐 아니라 공원과 바다, 유적지 어디든 신속하게 음식이 배달되는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배달 문화는 오래 전부터 발달해 플랫폼 산업에 이르렀다. 과거 가게마다 고용하던 배달원은 현재 ‘배민커넥트’ ‘쿠팡이츠’ ‘부릉프렌즈’ 등 크라우드 소싱 형태 플랫폼 노동자가 됐다.

코로나19로 배달 수요가 급증했다. 방문 고객 중심 식당에서 배달 위주로 전환한 곳이 많다. 전염병의 장기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플랫폼 노동 시장에 뛰어들었다. 배달 업체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 배달원을 구한다. 한 업체는 광고를 통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가벼운 아르바이트 정도로 광고했다. 이는 지나친 비약이다. 배달원 중 많은 이가 배달 시간을 지키기 위해 무리해서 속도를 내고 차도와 인도를 가로지른다.

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 6월까지, 숙박·음식업에 종사한 청소년 중 산재 사고를 당한 청소년은 3092명이었으며, 배달 중 교통사고로 숨진 청소년이 63명에 이르렀다. 오늘날 플랫폼 산업의 주역들은 처참한 노동 구조에 갇혀 있다. 배달노동자 중에는 플랫폼 노동의 특수성 때문에 ‘전속성’을 인정받지 못해 산업재해보상보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가 많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을 적용받기도 쉽지 않다.

플랫폼 산업은 ‘공유경제’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여겨졌다. 스마트폰 내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음식과 갖가지 물품이 오고, 때로는 교통수단을 공유해 출근과 퇴근길에 차를 나눠 타기도 한다. 공유경제와 플랫폼 산업은 획기적이었고, 현재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공유경제라는 그럴듯한 단어는 플랫폼 산업에 관한 거대한 허상을 만들었다. 플랫폼 산업의 이면에는 사람이 있다. 음식과 상품을 배달하고, 차를 운전해 고객을 실어나르는 이들 모두 사람이다.

미국 사회학자 알렉산드리아 래브넬은 저서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에서 ‘플랫폼 사업체에 종사하는 이들이 종업원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분명 노동을 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키친서핑, 태스크래빗, 우버, 에어비앤비에서 근무하는 플랫폼 노동자 80여 명을 심층 면접해 플랫폼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비판했다. 미국의 플랫폼 시장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한국 모두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타워팰리스의 누군가는 잠이 든 시간, 배달원은 혼잣말로 자책했고, 술에 취해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노동이 끝나면 곧장 자기 삶으로 회귀해야 하지만, 플랫폼 노동자는 진상 고객에게 정신과 몸을 지배당했다. 노동하지 않으면서도 노동하고 있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초라하다고 여겨질 때였다.” 판교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나온 문장이다. 공유경제는 물품을 다른 이들과 공유해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뜻한다. 날이 갈수록 공유경제와 플랫폼 산업 시장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고된 노동을 초라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어떤 이의 삶은 공유 혹은 소유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이나경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