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이미지에 가려진 '속마음'

▲ 박두호 기자

누구보다 사회성 좋고 매사에 적극적인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늘 긍정적인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 다정다감하고 어디를 가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인기가 많았다. 강남에 살면서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명문대를 다녔다. 힘들다고 하거나 부정적인 이야기 한번 안 하던 친구의 죽음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말 절친한 사람들도 그 친구의 아픔을 눈치채지 못했다. 자살에는 신호가 있다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동안 올라온 친구의 SNS와 카톡 알림말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SNS에는 여행 사진, 맛집 투어, 친구들과 즐겁게 술 마시는 모습뿐이다. 카톡 알림말 역시 긍정적인 문구만 보인다. 아무리 찾아봐도 행복해 보인다.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속마음을 터놓지는 못한 것일까.

SNS 속 세상은 화려하다. 모두가 즐겁고 웃는 사진으로 가득하다. 주말이면 여행 간 사진이 올라온다. 평소에도 고급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디서 상을 받거나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일상에서 힘든 모습을 업로드해도 이 역시 극복해내는 과정을 담는다. 우리는 서로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해도 ‘좋아요’를 누르며 서로 안부를 전한다. 이렇게 우리는 소통한다고 위안을 삼는다. 외국인이 한국의 SNS를 본다면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고 착각할 것이다. 실상은 자살률 1위 나라다. SNS를 주로 사용하는 10대에서 30대의 사망률 1위는 자살이다. 그렇지만 SNS 속 세상은 너무나 평온하다. 어디에서도 자살 징후를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은 마음이 썩어가고 있어도 SNS에서는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만 강조한다. 일상에서 좋았던 하이라이트 부분을 부각해 평소 일상인 듯 사람들에게 과시한다. 꼭 좋은 순간이 아니어도 우리는 사진에 필터를 넣고 이야기와 감정을 추가해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왜곡된 이미지는 속마음을 가린다. 나의 우울함과 무기력함, 분노와 좌절을 공유할 곳은 찾기 어렵다. 이 감정이 우리 일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기도 있지만, 하이라이트로 가득한 SNS 공간에 속 얘기를 공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해도 사람들과 속마음을 이야기할 공간이 없다. SNS로 소통한다고 하지만 실은 단절돼 있다. 그러니 주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도 눈치채지 못한다.

▲ 한강 다리에 적힌 문구. ⓒ SBS

고민 없이 속 얘기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지를 걷어내고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SNS의 뜻처럼 우리는 네트워크로 사람들과 연결된 세상에서 살 수 있다. 속마음을 공유하는 공간이 있었다면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의 마음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어쩌면 친구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 주변인의 죽음도, 좋아하던 연예인의 죽음도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몰라준 것에 후회와 미련,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나는 아직도 친구가 왜 힘들어했는지, 어떤 고통을 얼마나 겪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야기를 터놓는다고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서로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연결된 사회에서는 아픔을 나누고 그 아픔을 함께 이겨낼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현실에서 마음속으로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믿는다. 하루아침에 매일 보던 사람이 사라지는 그런 슬픔을 또 겪고 싶지는 않다. 아침에 일어나 꾸며진 이미지에 ‘좋아요’를 누르기보다 속마음에 ‘좋아요’를 누르고 싶다.


편집 : 방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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