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② 전태일 3법

전태일이 진정으로 원한 것

김병하 대구대 교수는 2003년에 쓴 <전태일과 어느 시간강사의 죽음>에서 ‘전태일의 죽음은 당대에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자기 삶을 담보 잡힌 이 땅의 노동자들을 향한 하나의 메시아’라고 했다. 전태일은 스스로 산화하여, 저항하는 노동자의 상징이 됐다. 전태일은 노동자의 메시아가 되기를 원했을까? 그는 메시아가 되어 노동자를 구원하겠다고 나선 게 아니었다. 그는 그저 노동자가 건강한 노동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한 만큼 대접받는,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 지난 10월 28일, 서울 종로구 종로4가 전태일다리에서 ‘25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이수호 전태일재단이사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전국 17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는 지난 5월 13일부터 수요일마다 전태일 캠페인을 진행한다. ⓒ 연합뉴스

그가 떠난 지 50년이 됐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꿈꾸던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가 안고 산화한 노동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노동 현장은 여전히 열악하고, 노동자는 지금도 신음하고 있다. 노동자가 처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일이 오면 전태일에만 집중하는 세상을 시인 고은은 이렇게 질타했다.

전태일이 네 10대조나 좆대조냐
야 이 새끼들아
왜 이 나라는 죽는 놈들만
죽은 놈 위패만 금이야 옥이야
받들어 모시고 지랄들이냐

저 동대문시장 아낙들 
영등포시장 아낙들은 누구냐
그런 아낙네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이 속물새끼들아 먹물새끼들아
야 이 새끼들아
나는 반박정희 앞서
반전태일이다
반유신보다 반전태일이다

‘반전태일’은 전태일에 주목하지 말고, 현장 노동자를 살피라는 뜻이다. 전태일이 ‘돌보지 않으면 안 될 나약한 생명체들’이라던 그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피를 토하고 폐병으로 죽어가던, 잠 깨는 주사를 맞으며 일하던 여공들을 보라는 말이다. 시대가 바뀌어 여공들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비정규직, 일용직 등 취약 노동자들이 채웠다. 평화시장 다락방 대신 건설·산업 현장에서, 미싱질 대신 택배 분류 작업을 하며 오늘도 노동자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잃고 고통스럽게 노동하고 있다.

전태일을 진정으로 기리는 법

전태일의 뜻을 제대로 기리려면 ‘반전태일’ 해야 한다. 전태일을 메시아의 위치에 놓고 구원을 바랄 것이 아니라 ‘먹물’로 쓰인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 ‘법 밖’의 노동자에 집중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며 쉴 권리와 정당한 과정을 거쳐 해고당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 사업주의 업무 지시와 관리를 받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 원청이 떠민 위험을 끌어안고 죽어가는 하청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반전태일’ 하려면 전태일 3법이 필요하다. 전태일 3법은 그동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노동법을 제대로 개정해 사각지대를 없애려고 발의됐다. 근로기준법 11조와 노동조합법 2조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핵심으로 한다. 근로기준법 11조 개정은 상시 5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현행 근로기준법을 바꾸겠다는 거다. 헌법재판소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를 합헌으로 봤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준수할 여건과 능력이 없고,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를 감독할 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기업들은 이를 악용해 직원을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다.

권리찾기유니온은 지난 27일 서울고용노동청에 5인 미만으로 위장한 업체 8개를 고발했다. 고발당한 곳은 주류업체, 호텔, 연구소, 학원, 미용실 등이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근로시간 제한이 없고, 연장수당이나 야간수당 등을 줄 의무가 없으며 연차휴가 부여 의무도 없다. 부당해고를 당해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 관련 조항에서도 제외된다. 이들 사업장이 전체 사업장의 60%이고, 350만 노동자가 이에 해당한다.

청년유니온이 2019년 12월 발표한 ‘5명 미만 사업장은 12월 46일까지 일해야 한다: 청년유니온 5명 미만 사업장 사례보고서’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몸이 안 좋아도 보장된 연차 휴가가 없어 쉴 수 없는 노동자의 사례를 보자.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개인 사정으로 쉬거나 지각 한 적 없”지만 아파도 쉴 수 없었다. 교육업 종사자인 그는 “지금까지 감기에 심하게 걸려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아도 하루도 안 쉬고 수업을 했”다고 증언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부당해고를 해도 30일분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해고예고수당만 지급하면 되니 부당해고 사례도 흔하다. 보고서에는 카카오톡 메신저로 다음 날부터 나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고, 소지품조차 챙기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나야 했던 노동자 사례도 있다.

▲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한 대형 아울렛은 사업장을 여러 개로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했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집행위원장은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되니까 사업주들 입장에서도 불법,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이득을 찾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 SBS뉴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위험의 외주화 탓에 지금도 하루 6명씩 죽어가는 노동자를 살리기 위한 법이다. 지난 22일, 김용균 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이사장이 국회동의청원에 올린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10만 명 동의를 얻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됐다. 이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마련을 위한 물꼬는 트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재해 원인을 노동자 개인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안전관리 주체인 기업의 범죄로 보고 사업주와 경영자 등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이다. 

그동안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산업안전보장법(산안법)이 있었지만 산업재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 법으로는 복잡한 고용구조에 따른 책임의 공백을 메울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1위 국가다. 2014년 기준 산재사망자는 10만명에 10.8명이다. 2018년 김용균 씨의 죽음으로 소위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지난 1월부터 시행됐지만 작업을 지시한 원청기업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고, 처벌이 미미해 현장 사고를 막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지금도 노동자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안법 범죄의 재범률은 97%에 이른다. 

▲ 지난 9월, 김용균 씨가 일하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김 씨가 적절한 안전장비도 없이 홀로 작업하다 죽은 것처럼 A 씨도 2톤이나 되는 스크루를 묶는 작업을 혼자 하다가 굴러 떨어진 스크루에 깔려 숨졌다. 둘은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 KBS

노동조합법 2조 개정은 노동의 정의를 새롭게 내려, 변화하는 산업 현장에서 버려진 250만 특수노동자의 노동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택배기사나 학습지노동자, 외근직A/S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도 노조를 만들 수 있게 노동자의 기준을 바꾸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조합 설립은 신고제지만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된다.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받지 못하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우리나라에 노조 활동을 보장하라는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 비준을 권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7년 대리운전노조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동조합 설립변경신고서를 접수했지만 반려됐다. 2019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다시 접수했는데 설립 필증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대리운전노조 간부들이 ‘노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20년 7월이 돼서야 대리운전노조는 설립 신고 접수 428일 만에 신고필증을 받았다. 한국경륜노조 역시 설립 신고 후 법적 인정을 받기까지 206일이 걸렸다. 노동조합은 노동 3권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연대하고 사용자와 협상할 수 있지만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조차 없었다. ‘전태일 3법’ 제정은 이제 막 시동을 걸었다. 전태일이 50년 전에 외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호소가 50년이 지나서야 걸음마를 시작했다.

‘법 밖 노동자’는 또 다른 전태일이다

나는 온라인 쇼핑을 즐겨한다. 옷도, 먹을거리도, 책과 볼펜도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다. 언니도 인터넷 쇼핑을 즐겨 우리 집 앞에는 항상 택배 상자가 쌓여있다. 택배가 도착할 즈음이 되면 문자가 온다. ‘고객님의 택배를 오늘 오후 2시경 배송하겠습니다’라는 문자에 ‘감사합니다’라고 답변을 보내 보지만 답장을 받은 적은 없다. 문자가 올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확인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택배기사가 바쁘기 때문이었다.

지난 8일 CJ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 김원종 씨가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결국 숨졌다. 그가 생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하루 14시간씩 일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태일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인간 최소한의 요구입니다’에서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시간~12시간으로’라고 했다. 1일 14시간 작업시간을 단축하라는 전태일의 외침은 50년 뒤 김원종 씨에게도 적용되지 못했다. 김원종 씨 사망 나흘 뒤, 대구 쿠팡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던 20대 청년이 죽었다. 지난 27일에는 대전에서 한진택배 노동자 김 모 씨가 숨졌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올해 과로로 사망한 택배노동자가 15명이라고 발표했다.

▲ 과로사로 숨진 택배노동자 김원종 씨의 아버지가 아들이 사망 당일 출근하며 “어제보다 더 늦는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아버지에 따르면 김 씨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14시간씩 뛰어다니며 일했다. ⓒ KBS

현장 노동자가 중요하다. 현장 노동자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건물을 지을 수 없고, 택배도 받을 수 없다. 더러운 공중화장실을 써야 하고,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는 열차를 타야 한다. 스크린도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지하철을 탈 수 없고 음식점이나 카페도 이용할 수 없다. 현장 노동자 없이는 일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현장 노동자의 노동은 우리의 일상을 떠받치는 힘이다. 

이들이 법 밖에 방치돼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아파도 쉴 수 없다. 유급병가가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은 12%에 그친다. 지난 4월, 이천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서 노동자 38명이 숨졌고 10명이 다쳤다. 희생자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였다. 원청이 공사 마감을 무리하게 독촉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피해자는 있지만 산안법만으로 원청에게 책임을 묻기는 부족하다. 배달노동자들은 플랫폼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하며 업체의 지휘와 근로감독을 받지만 근로자가 아니다. 김원종 씨도 법 밖에 방치된 노동자였다. 

2020년의 전태일들

지난 9월 29일 경상남도 사천시 선구동 한 아파트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노동자가 자신을 매달았다. 50년 전 전태일이 새빨간 불길로 산화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한 것처럼, 그는 새빨간 페인트를 들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임금을 요구하며 글씨를 써내려 갔다.

“사 기 꾼 시 공 업 시 행 사 는 더 욱 사 기 꾼 노 임 금 주 라 개 자 식”

▲ 사천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도장공이 빨간 글씨를 써 체불 임금을 달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바로 체포돼 재물손괴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 뉴스사천

아파트 외벽 페인트칠 하청업체 노동자이던 그는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도색작업을 했지만 하청업체가 부도났고 임금을 받지 못했다. 밀린 임금은 5천만원이나 됐다. 농성을 벌이고 2시간 정도 지나자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했다. 그는 지상으로 내려왔고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도장공은 대표적 건설 노동자인데도 대부분 일용직이며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지난 2015년 외벽 공사를 하다 떨어져 부상을 당한 도장공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늘도 현장의 노동자, ‘법 밖의 노동자’는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전태일은 유서에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달라고 썼다. 그의 바람은 이름이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기계로 취급되지 않고 인간답게 사는 것, 나약한 이들과 불쌍한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202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며 산화한 지 50년이 지나 우리는 ‘반전태일’을 위해 전태일을 다시 불러낸다. 더 이상 기업의 경영효율을 앞세워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뒤로 미루고 법 밖에 존재하는 노동자를 방치해선 안 된다. 이들을 법 안으로 끌어와 노동의 가치에 걸맞은 대접을 하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제 현실의 노동자를 외면한 채 그 이름만이 소환되지 않게 하자. 전태일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정신이 수많은 공장과 건설 현장과 시장 사람들의 삶 속에, 수많은 택배노동자와 도장공의 삶 속에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청년기자들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다. 1970년 11월 13일 22살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자신을 불살랐다. 그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혹사당하는 어린 견습공들에게 풀빵을 사주며 사람이 대접받는 노동환경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노동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또다른 ‘전태일들’이 죽음 앞에 놓인 오늘,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다. (편집자)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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