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자연'

▲ 김현주 기자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기울어져 있다. 인간은 주인이고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개발과 편의를 명목으로 자연 파괴 속도를 올렸다. 지구에 산소 공급을 책임지는 아마존 열대우림 면적은 꾸준히 줄고 있다. 한국에서 사육되는 닭이 일생을 지내는 베터리 케이지는 A4용지 한 장 정도 크기다. 전체 닭의 1% 정도만 케이지가 없는 동물복지농장에서 자란다. 사육장 안에서 닭은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잔뜩 넣은 사료를 먹는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착취하는 자연은 동물과 식물을 가리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착취하는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경고음은 이미 울렸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6개월간 이어진 호주 산불은 한반도 면적 85%에 이르는 숲을 불태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여름 54일간 장마가 이어졌다. 역대 최장이다. 호주 산불과 한국 장마의 원인으로 자연 파괴에 따른 기후변화가 지목됐다. 전문가들은 환경파괴를 멈추지 않는다면 제2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날 거라고 말했다. 자연이 망가지면 인간의 삶도 온전할 수 없다. 불공정한 자연과의 관계를 공정하게 바로잡아야 인간도 살아남을 수 있다.

▲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고래 뱃속에서 인간이 사용하다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 약 6 kg이 발견됐다. ⓒ YTN

공정한 관계를 맺으려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착취의 대상이 그 구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저항이지만 자연은 인간의 방식으로 싸우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를 파괴하고 결국 인간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보복한다. 그러니 인간이 먼저 자연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동물과 사람, 환경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정치·경제·사회적 정책을 찾는 ‘원헬스’ 개념이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 정책을 보면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인식 전환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린 뉴딜에 환경은 양념일 뿐이고 ‘일자리’와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HER>의 주인공은 테오도르다. 그는 부인과 이혼한 뒤 AI 목소리와 사랑에 빠지는데,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때는 사랑하는 상대를 대상(her)에서 주체(she)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상대를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랑의 끝에는 허무만이 남는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자연과 불공정한 관계를 지속하면 그 끝은 인간도 자연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가 될지 모른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양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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