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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 해외 번역상 두 개나 받은 건 기적”

기사승인 2020.10.16  1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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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호 기자 protects55@naver.com

- [단비인터뷰] 전미번역상·루시엔스트릭상 2관왕 김이듬 시인

“상을 하나라도 받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개나 받은 건 기적이고, 꾸준히 시를 써가라는 질책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책방 운영도 힘들고, 책 처방을 오랜 기간 해오며 자존감과 용기를 잃어버린 시점이었는데, 단비 같이 상상도 하지 못한 기쁜 소식이 두 개나 들려와서 굉장히 기쁘고, 얼떨떨한 기분이에요.” 

16일 새벽 ‘전미번역상(ALTA National Translation Awards)’과 ‘루시엔스트릭상(ALTA Lucien Stryk Asian Translation Prize)’ 수상작 동시 선정 소식을 들은 김이듬(51) 시인은 이날 오전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번역상은 그의 시집 <히스테리아>를 영어로 옮긴 제이크 레빈, 서소은, 최혜지 번역가가 받지만, 원작의 문학성이 인정된 것이어서 사실상 공동수상의 의미를 갖는다. <단비뉴스>는 이에 앞서 여러 해외 번역상 후보에 오른 김 시인을 지난 12일 그가 운영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책방이듬’에서 만났다.

   
▲ 자신이 운영하는 '책방이듬'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김이듬 시인. ⓒ 양수호

“자존감과 용기 잃어버린 시점, 단비 같은 소식” 

그는 수상소감에 이어 “번역가들도 큰 상을 받아 기뻐하고 있다”며 “<히스테리아>가 미국에서 인기가 많다고도 해줬다”고 전했다. 또 “내 시가 난해하고 번역하기 어려웠을텐데, 번역가들의 노력으로 상을 일궈내 감사하고, 기쁘다”고 덧붙였다.

전미번역상은 미국문학번역가협회(ALTA)에서 주관하는 것이고, 루시엔스트릭상은 미국의 시인이자 번역가로 활동한 루시엔 스트릭을 기려 아시아지역 작품에 주는 상이다. 이번 수상은 김 시인의 시가 영어권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세계 문학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 ‘그리핀 시 문학상’을 받은 시인 김혜순 등의 뒤를 잇는 셈이다.

<히스테리아>는 영국의 시 번역센터(The Poetry Translation Centre)에서 주관하는 사라 맥과이어상 최종 후보에 올라 내년 1월 발표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김 시인은 지난 2017년 시집 <명랑하라 팜파탈>로 '쓰리퍼센트(Three Percent)'가 주관하는 ‘최우수 번역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쓰리퍼센트는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 번역 프로그램과 번역문학 전문 출판사 오픈레터북스가 공동 운영하는 번역문학 소개 웹사이트다.

<히스테리아>는 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는 “한층 아름다워진 충격파로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에너지를 보여준다”며 “감정의 긴장, 고조, 완결에 이르는 리듬이나 색조의 아름다운 변화가 원숙한 필치로 펼쳐진다”고 시집을 소개했다. 문단에서는 그의 시를 ‘섹시한 은유와 도발적 상상력’ ‘몽유의 마녀’ ‘말과 피를 동시에 철철 흘리는 온몸의 마임’ 등으로 평가하고 있다.

“영어로 번역된 시는 새롭고 짜릿한 느낌” 

“한강 소설가의 <채식주의자> 같은 경우, 해외에서 굉장한 호응을 얻었죠, 한국 작가들이 어느 나라 작가들보다 좋은 작품을 쓰고 있다고 믿어요. 문단의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대단한 역량이 있어요. 우리말의 미묘한 어감이나 뉘앙스가 외국어로 번역하기 난감한 부분도 있죠. 하지만 한글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언어에는 모서리가 존재해요. 제 작품의 경우, 번역하면서 ’낯설게 하기‘가 재발생한 경우예요. 번역된 제 시는 새로운 느낌이에요. 짜릿한 느낌이었죠. 오늘날 번역자들은 단어 하나를 쓰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느낌을 살려 번역해요. 단순히 우리말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에요. 또 다른 창작의 영역이죠.”

<히스테리아> 번역에 참여한 제이크 레빈은 시인, 번역가이자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일하는 미국인이다. 서울대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한국 문학을 접한 레빈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내 시인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김 시인은 “레빈 교수가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내 시를 읽고 자신의 SNS에 ‘crazy(미치도록 좋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런 관심이 매개가 돼 <히스테리아>가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시집 중 <명랑하라 팜파탈>은 미국 노트르담대 영문학과 교수이자 시 전문 출판사 <액션북스>를 공동 운영하는 요한 고란슨이 김 시인을 눈여겨보면서 번역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 김이듬 시인과 번역자 제이크 레빈. ⓒ 김이듬 페이스북

2001년 계간 <포에지>에서 등단한 후 20년 차에 접어든 그는 창작 활동 외에 책방을 운영하고, 한양여대에서 시 창작도 가르친다.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으로 번역된 시집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 <명랑하라 팜파탈>과 <히스테리아>, '문학동네'에서 펴낸 <블러드 시스터즈> 등 3권이다. 김 시인은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제7회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시상’, ‘제1회 22세기 시인 작품상’, ‘김춘수 시문학상’을 받았지만 국내 주요 문학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운영이 힘들다’고 말한 책방이듬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아지트(은신처)답게 시집과 소설책 등 문학서들이 가득했다.

   
▲ 영어로 번역 출판된 김이듬 시인의 시집 <명랑하라 팜파탈> <블러드 시스터즈> <히스테리아>. ⓒ 양수호

국내 낭독회에선 ‘그게 무슨 시냐’는 소리 듣기도  

“저는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해외에서 뜻밖의 반응을 얻은 편이에요. 일례로 경북 경주에서 열린 모 문학축제를 들 수 있어요. <히스테리아> 수록작 ‘시골 창녀’를 낭독했는데, 한 남성 시인이 ‘그게 무슨 시냐’며 소리를 질렀어요. 제 시를 싫어하는 사람의 반응을 눈앞에서 보니 좌절감이 들었어요. 그간 제 시를 두고 ‘에로틱하다’ '지저분하다' 등 말이 많았죠. 그건 그런 식으로 보니깐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 시에는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이 언제나 등장하고, 저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수수께끼처럼 사회문제를 전달하는 편이에요. 알기 쉽게 전달하면 시가 재미없죠.” 

국내에서 이해받지 못했던 그는 해외에서 상반된 반응을 얻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미술관에서 진행한 낭독행사에서 퍼포먼스를 하며 수록작들을 읽었는데,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박수갈채가 쏟아졌다고 한다. ‘호흡이 멎는 줄 알았다’는 말도 나왔다고.

   
▲ 2019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작가들. 왼쪽부터 평론가 양경언, 소설가 한강과 요나쓰 하센 케미리, 시인 아테나 페로크자드와 김이듬. ⓒ 김이듬 페이스북

해외 입양 여성 ‘물류센터’ 낭독 듣고 눈물 

김 시인은 해외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2012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 작가로 선정돼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 학기 간 생활했고, 독일, 프랑스, 미국, 아르헨티나, 스웨덴, 덴마크, 호주, 일본, 중국 등에서 낭독회와 세미나 투어를 했다.

“제 첫 시집에 ‘물류센터’라는 시가 있어요. 영어로 진행한 미국의 한 낭독행사였는데 한국에서 입양된 여성이 낭독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왔어요. 한국에서 어린 시절 입양돼왔는데 ‘물류센터’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말했어요. ‘물류센터’는 고아원에서 어느 순간 배달되다시피 떠나는 입양아에게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에요. 프랑스 파리 롤랑바르트 도서관에서도 입양아 출신 사서가 제 낭독을 듣고 찾아왔었고, 스웨덴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는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도태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시집 <표류하는 흑발>에 수록된 ‘행복한 음악’이라는 시에서 조국을 떠나 한국이 어딘지도 모르는 입양아들의 적대감에 관해 쓴 적도 있다. 낭독 투어를 다니며 만난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의 소외된 작가들에게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 책방이듬에서 다양한 문학서들을 배경으로 선 김이듬 시인. ⓒ 양수호

대학 시절 ‘자본주의에 물든 부르주아 시’ 질책 듣기도 

김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고, 경상대에서 국어국문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대 다니던 시절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 선배’에게 이끌려 한 문학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학생운동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박노해, 김지하와 같은 시인의 시들을 자주 읽었는데, 선배들이 내 시를 보고 ‘자본주의에 물든 부르주아의 시’라며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기도 했어요. 돌아보면 문학적 성취는 없었지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죠.” 

김 시인은 오랜 기간 경상대에 출강했으며, 진주에서 KBS라디오 ‘김이듬의 월요시선’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서울에서 강의 제안을 받고 상경했다. 대학에 오래 출강한 그는 여러 시인을 등단시키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대면 강의를 하지 못해 아쉽다는 그는 “선생의 마인드라기보다는 선배의 마음으로 만난다”며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고 잘 끌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책방이듬. ⓒ 책방이듬

2017년 개업한 책방이듬에서는 황석영, 나희덕, 은희경, 이문재 등 유명 시인과 소설가들의 낭독 행사가 자주 열렸다. 그는 또 시민들의 사연에 맞게 책을 추천해주는 ‘책 처방사’로도 유명하다.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등에 책 처방사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래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국민들을 위해 책 처방을 부탁했다.

“시집은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을 추천해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많아요. 이런 시기에 인간의 사랑과 자유를 격렬하고도 절망적으로 갈구하는 시집을 읽는 것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환기하기 좋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황석영의 <해질 무렵>을 추천해요. <해질 무렵>은 반지하 방에서 사는 청년들의 암담한 현실을 다루는 깊이 있는 장편소설이죠. 지금도 아르바이트, 산업재해, 무직 상태로 불안하고 척박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기에 추천해요. 사람들에게 나는 괜찮고 당신은 힘내라는 말이 아니라 나도 힘들고 당신도 힘드니깐 버티자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독특하고 아름다운 시를 쓴 작가로 기억되고파”

   
▲ 이웃이자 친구였던 작가,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쓴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김이듬 시인. ⓒ 이흥렬

앞으로 세계 문학계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김 시인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었다. 그가 한참을 망설이다 답했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건 모든 작가의 꿈이겠죠. 거룩하고 위대한 작가보다는 나의 이웃이었고, 친구였던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비범한 작품을 쓰기 전에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아무 목적이나 이유 없이 저를 도와주려는 분들, 좋은 이들을 만났으니깐 행운이 많이 따른 시인이 아닐까요? 다만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쓰는 작가로 기억되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편집 : 방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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