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자리 ① ‘공공의료’

[청년기자들의 시선] 시즌2를 시작한다. 시즌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즌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자리’이다.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다. 자리는 정체성이자 책임이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묻는다. (편집자)

내 자리는 우익수였다

학부 신입생 시절 취미로 야구를 했다. 내 자리는 우익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야구를 잘하지 못했고, 우익수 방향으로는 공이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회인 야구에서 우익수는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맡는다. 타자가 대부분 오른손잡이고, 밀어치는 기술이 부족해 우익수 앞으로는 공이 거의 가지 않는다. 축구를 하던 친구는 나를 놀렸다. 땡볕에 글러브 끼고 서 있는 게 무슨 운동이냐고. 모든 야구 포지션이 중요하다고 대꾸하면서도 속으로 친구의 말에 동의했다. 솔직히 내가 서 있던 우익수 자리는 우리 팀 승패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나는 있으나 없으나 한 존재였다.

▲ 사회인 야구에서 우익수는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맡는다. 타자가 대부분 오른손잡이고, 밀어치는 기술이 부족해서 우익수 앞으로 공이 거의 가지 않기 때문이다. ⓒ Unsplash

할 일이 없는 우익수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우익수 없이 경기를 했다. 사람이 부족해 8명으로 경기를 했다. 우익수 자리를 비우고, 나는 우익수 다음으로 할 일이 없는 좌익수 자리에 섰다. 마지막 이닝이던 6회말, 사고가 터졌다. 점수는 7:5, 남은 아웃카운트는 하나. 투수가 던진 다섯 번째 공이 타자의 방망이 위쪽에 빗맞았다. 중견수가 오른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더, 더, 더.” 쩌렁쩌렁 외치는 포수의 목소리에 아랑곳없이 공은 우익 선상에 떨어졌다. 1루에 있던 주자마저 들어와 3타점이 됐다. 내가 우익수로 서 있었다 해도 잡아냈을 얕은 안타에 경기는 역전됐다.

우익수 없이 야구 하는 한국 사회

코로나19와 경기를 펼치는 한국 사회는 우익수 없는 야구다. 게임에 지기 전까지 나는 우익수 자리가 중요한지 몰랐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오기 전까지 공공의료가 중요한지 고민하지 않았다. 민간병원이 중심인 한국에서 공공의료는 역할이 적은 자리였다. 사회인 야구의 우익수처럼 없어도 되는 자리로 여겨졌다. 공공의료 투자는 불필요한 지출이라는 인식마저 생겼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폐원을 강요받았다. 

지방의료원법 제22조는 3년 당기 순손실 발생하면 보건복지부가 운영진단을 하고, 지자체장에게 의료원장에 대한 인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적자를 이유로 2010년에는 대구적십자병원이, 2013년에는 진주의료원이 폐원했다. 2018년 기준 공공의료기관 수 비중은 5.7%, 병상 수는 10.2%에 불과하다. OECD 평균 공공의료기관 수 비중이 52.4%, 병상 수가 71.4%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 2013년 5월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적자를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다.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노력 끝에, 지난 7월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서부경남 공공의료원 신설을 약속했다. ⓒ KBS

우익수 없는 야구경기의 결과

우익수 앞으로 언제 공이 올지 알 수 있을까? 재난 상황도 마찬가지다. 공공의료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위해 자리를 지켜야 한다. 지난 봄 우리는 대구에서 부족한 공공의료가 가져온 결과를 지켜봤다. 15명의 환자가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3월 초 확진자 2,569명 중 65%가 입원을 못 해 집에서 대기했다. 당시 대구에 보건복지부가 국고를 투입한 국가지정 음압병상은 10개뿐이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이 비슷하다. 서울은 사랑제일교회 발 확진자가 급증한 8월 15일 이후 5일 만에 병상 가동률 80%를 넘겼다. 지난 9월 대전에서는 공공병상이 부족해 확진자의 30%가 다른 지역에 입원해야 했다.

선수가 부족한 가운데 펼치는 경기는 눈물겹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에 대패했다. 한때 확진자 수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았고, 치명률은 여전히 11.1%로 가장 높다. 10월 5일 기준 전세계 치명률 2.96%보다 훨씬 높다. 2008년 3,490달러였던 국민 1인당 보건 예산이 2016년 2,739달러로 줄어든 결과다. 프랑스와 스페인 역시 같은 이유로 힘겨운 싸움을 했다. 프랑스에서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4만3500개 병상이 사라졌다. 스페인 의료 현장에서는 사용할 보호장비가 부족했다. 그에 따라 의료진이 집단으로 감염됐고 환자들이 병원을 탈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현재 스페인은 확진자 수가 전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많고, 프랑스는 열한 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 스페인 의료진은 의료용 마스크가 부족해 스노클링용 마스크를 활용하기도 했다. ⓒ CNN

우익수와 공공의료의 자리

우리는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알았다. 다시 코로나19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우익수 없는 경기가 진행중이다. 우익수 자리가 비었으면 선수를 채워야 한다. 공공의료도 같다. 많은 전문가가 공공의료 확충의 ‘골든타임’을 언급하지만 실천은 딴 얘기다. 공공의료 인력을 늘리고 의료 지역격차를 줄이겠다는 정부 계획은 의료계 반발로 논란 끝에 백지화했다. 

공공의료를 경제 논리로 바라보는 시선도 여전하다. 9월 1일 발표된 2021년 정부 예산안에 공공병원을 새로 짓기 위한 예산은 편성되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지방의료원 설립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야 한다. 공공의료 확충이 지지부진한 사이 재난은 또다시 찾아올 수 있다.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바이러스는 일상이 되었다. 많은 전문가가 기후위기와 생태계 변화에 따른 신종 감염병 유행 가능성을 경고한다. 공공의료의 자리를 비워서는 바이러스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

▲ 많은 전문가가 기후 위기와 생태계 변화에 따른 신종 감염병 유행 가능성을 경고한다. 공공의료는 방역의 최전선 자리를 지켜야 한다. ⓒ Pixabay

후배가 들어오고 나는 우익수 자리에서 탈출했다. 우익수 자리에서 공은 구경도 못 한 후배들이 투덜거린다. 웃으며 대꾸한다. 우익수를 비워둔 야구가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말해준다. 후배들도 금방 깨달을 것이다. 야구는 협업과 전략이 필요한 집단 경기이며, 소홀해 보이는 우익수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를. 우익수 없이 야구경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편집 : 김병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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