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김태형 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은 고용노동부의 전교조에 관한 법외노조 통보 취소로 이어졌다. 이는 대학생 시절 근로장학생으로 중학교에서 1년간 근무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장학생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걷어내면 매 학기와 방학이 끝날 때쯤 돼야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나 다름없었다.

내가 일하던 중학교는 ‘행복학교’였다. 행복학교란 교육공동체가 배움과 협력의 토대 위에 성찰, 소통, 공감을 지향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혁신학교다. 매일 아침 교장선생님은 교문에서 학생을 맞이했고,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도 없었다.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교무실 앞 복도에 놓인 피아노를 치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방과 후에는 선생님들이 모여 더 나은 수업을 고민했다.

폴케스콜레(Folkeskole)라고 불리는 덴마크의 공립학교와 비슷했다. 이 학교는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포함한 형태로 1학년부터 9학년까지 있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는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폴케스콜레‘의 다섯 가지 공통점을 말했다.

‘첫째, 학교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학생 스스로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둘째, 개인의 성적이나 발전보다 협동을 중시한다. 셋째,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와 교장 중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학교 운영의 주인이 된다. 넷째, 학생들이 여유 있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인생을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 법을 배운다. 다섯째,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걱정이나 불안감 없이 안정되어 있다.’

그는 행복 인생의 출발은 학교 교육에서 시작되고 행복한 학교에서 행복한 인생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내가 일한 학교는 한국의 ’폴케스콜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학생 한 명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생님과 주체적으로 배움을 실천하는 학생들한테 학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미래를 보는 듯했다. 선생님들 업무를 보조하는 작은 역할이었지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자부심은 의문으로 변했다. 학교 급식조리원과 교무행정사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한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총파업을 하면서, 학교가 비정규직 종합백화점임을 깨달았다. 기간제 교사, 시간강사, 무기계약직 교무행정사 등 불안정한 노동 형태가 만연한 이곳에서 아이들은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경쟁 말고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2019년 7월 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처우개선 국정과제를 이행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아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자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강조했다. ⓒ KBS

총파업이 예고되자 언론은 ‘급식 돌봄 비상’ ‘불꺼진 학교 급식실’ ‘급식·돌봄 대란 현실로’같은 제목의 기사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느다란 목소리마저 외면했다. 이때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낸 건 놀랍게도 ‘정규직’ 신분의 전교조였다.

전교조는 ‘학교에서의 모든 생활은 그 자체가 배움의 시간이자, 공간’이라며 ‘학교는 차별이 아닌 평등의 가치를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들은 또 ‘미래의 노동자인 아이들에게 건강한 노동을 위한 노동자의 권리와 책임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는 내용의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학교와 교육기관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다.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산지부가 7월 13~24일 조합원 274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부산지역 교육공무직인 학교비정규직의 58.4%가 학교와 교육기관에 근무하면서 갑질 또는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갑질 또는 괴롭힘의 가해자는 교사(43.2%), 행정실장(41.4%), 교장(38.5%) 순으로 나타났다. 학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진 현실은 갑질로 이어지고, 이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를 계기로 학교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연대가 더욱 견고해진다면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배우고, 나아가 좋은 노동환경을 만드는 데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편집 :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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