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관리연구실장

“인간과 야생동식물이 함께 사는 생태계에 관해 새로운 인식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국립생태원 김영준(49) 동물관리연구실장의 말이다. 김 실장은 국내에서 ‘야생동물수의학’을 가장 먼저 개척한 사람이자 동물 감염병 전문가로 꼽힌다. 대한수의학회 재난형 동물감염병 특별위원회 위원인 그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이 퍼지면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이다. 코로나19의 원인 중 하나로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지목되는 가운데, 동물 감염병 전문가의 진단과 대안을 듣기 위해 김 실장을 찾아갔다. 지난 5월 26일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에서 그를 만나고, 지난달 18일 전화와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했다.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 새로운 인식 필요

▲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의 열대관에서 지구생태환경을 설명하는 김영준 실장. ⓒ 오동욱

김 실장은 팬데믹(pandemic), 즉 세계적 감염병 확산을 ‘다이너마이트(폭약)’에 비유했다. 수많은 기회 요소가 맞아떨어질 때(도화선), 폭발적인 팬데믹이 발생한다(다이너마이트 폭발)는 얘기다. 이동수단의 발달, 세계화, 무차별적인 자연개발, 기후위기, 인구밀집도 증가 등 여러 요소가 층층이 겹쳐 팬데믹이라는 폭약의 도화선이 된다. 그는 “갈수록 도화선이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건강한 생태계는 생태적 균형, 즉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특정 종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의 확산이 상위 포식자의 활동으로 조절되는 것도 균형의 한 모습이다. 예를 들어 탄저병에 걸려 죽은 얼룩말을 독수리류가 뜯어먹는다. 보통 탄저병은 포유류에게 치명적이지만 독수리에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만약 독수리가 없다면 토양에 광범위하게 탄저균이 번져 또 다른 죽음을 야기하게 된다. 일부는 죽고, 죽이면서도 생태계 안에서 여러 종이 건강하게 살아갈 최적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생물 다양성이 보장된 생태계, 균형 잡힌 생태계는 촘촘하고 자잘한 그물망과 같아서 바이러스가 통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은 자연조건이라는 한계를 깬다. 그 과정에서 다른 종들이 살아갈 생태 균형을 교란한다. 변화한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생물종은 빠르게 사라진다. 김 실장은 “(현재) 생태계의 멸종위기종이 발생하는 속도가 공룡이 멸종한 속도의 100배 이상 빠르다”고 말했다. 그는 “멸종이 빠르게 진행되면 전체 개체 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반대급부로 특정 생물종의 양이 빠르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렇게 특정한 종들이 늘어나게 되면, 그 종에 기생하는 기생충과 바이러스는 그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생물 다양성 줄면 병원체 걸러줄 ‘그물망’ 손상 

“가령 특정한 지역에 고라니가 10마리가 있다고 하자고요. 이 중 2마리가 병원체에 감염됐어요. 외부 환경이 고라니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천적도 없다면 고라니의 숫자는 빠르게 증가하겠죠. 10마리가 50마리로 늘었다고 합시다. 이 중 몇 마리가 병원체에 감염됐을까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병원체는 50마리 모두를 감염시킨다. 특정한 지역 안에서 그만큼 개체 간 거리가 가까워졌고, 기생충이나 병원체로서는 다른 숙주에게 옮겨갈 환경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 국립생태원에서 키우는 고라니. 기후위기로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서 적응하지 못한 생물들은 멸종하지만, 따뜻한 기후조건에서 사는 고라니 등의 개체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면 고라니 등을 숙주로 하는 기생충과 바이러스도 빠르게 늘어난다. ⓒ 오동욱

김 실장은 “생물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은 촘촘하고 자잘한 그물망이 끊기고 그물코가 커져서 병원체가 빠져나갈 구멍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생물 다양성은 병원체의 범람을 중간에 막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반면 생물종이 연이어 사라지면 특정 종을 숙주로 삼는 병원체가 범람할 수 있는 기회 요소가 늘어난다.  

아프리카 오지의 산림까지 파헤친 대가는 

김 실장은 생물종이 줄어드는 중요 원인으로 자연을 이용하는 인간 능력의 비약적 발전을 꼽았다. 도로와 차량 등 운반 수단이 없었다면 개발업자들이 아프리카 오지까지 가서 산림을 벌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오지를 개발해 자원을 사용한 대가는 생물의 빠른 멸종이다. 김 실장은 “오지 개발은 직접적인 (감염원) 범람의 확률을 높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개발경로를 따라 들어간 밀렵꾼이 야생동물을 사냥해 유통시킬 때, 동물의 몸에 있던 질병도 인간 거주지로 나온다는 것이다. 

생물종이 빠르게 사라지는 또 다른 원인은 기후위기다. 그는 지구 역사상 이렇게 빠른 기간 내에 빙하가 (녹아)없어진 경우는 없다고 지적했다. 빙하가 녹으면 빙하를 서식공간으로 삼았던 동물이 사라진다. 예를 들어 빙하의 아랫부분에는 크릴(새우를 닮은 갑각류)이 산다. 어린 크릴이 밖으로 나갈 만큼 성장하는 동안 여기 머무른다. 빙하가 사라지면 어린 크릴이 사라지고, 크릴을 먹이로 하던 어미 펭귄은 새끼 펭귄을 먹이기 위해 멀리까지 나가야 한다. 어미 펭귄들의 외부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 새끼 펭귄들은 굶어 죽는다. 김 실장은 “이런 문제는 이론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미 북극에서도 어린 개체들의 떼죽음 사례가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

▲ 남극펭귄들이 사는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의 극지관. 남극 킹조지섬 세종기지 주변을 본떠 인공얼음 등을 조성했다. ⓒ 오동욱

김 실장은 비행기 등 교통 발달과 세계화가 감염병이 팬데믹으로 이어지는 기회 요소가 됐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감염병이 유럽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은 교통수단의 비약적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500년 전에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병은 지역에만 전파됐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불과 두 달 만에 (중국에서) 남미까지 전파됐죠.”

인구의 밀집도 팬데믹 확산에 중요한 요소다. 김 실장은 “생물 역사상 이렇게 밀집한 고등생물종은 인간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물밀집도가 늘어나면, 그 생물은 질병에 그만큼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질병 예방과 전염 방지에 필요한 자연적 수준의 사회적 거리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예전처럼 한 2킬로미터(km) 정도 되는 도화선이라면, 자연사멸이나 지역적 소멸 등으로 다이너마이트까지 불이 붙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 문제는 도화선이 너무 짧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2 코로나’ 막을 대안은 인간과 자연의 ‘원 헬스’ 

그렇다면 또 다른 팬데믹을 막을 대안은 무엇일까. 김 실장은 제2의 코로나 사태를 방지하려면 ‘원 헬스(One Health)’라는 개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 헬스란 미국 수의학자 캘빈 슈바베가 1984년 저서 <인간의 건강과 수의학>에서 제시한 ‘하나의 의학’을 발전시킨 개념이다. 인간의 건강과 가축의 건강, 그리고 환경의 건강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 아래 모두에게 최적의 건강을 제공하기 위한 정치·경제·사회 등 다차원적 협력 전략을 말한다. 

▲ 제2의 코로나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영준 실장. ⓒ 오동욱

원 헬스의 핵심 목표는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질병이 범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관점을 바꿔야 하며, 실질적으로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도 팬데믹 상황은 높은 확률로 이어질 것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 개발에 관한 관점 변화, 정치·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위기를 가져올 요인들의 규모와 속도는 점점 크고 빨라지는데, 이것을 상쇄하기 위한 인간 노력의 크기는 터무니없이 작고, 또 느리다”라며 어두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어 기후변화의 결과이자 가속 요인이기도 한 산불 문제만 봐도 러시아 시베리아, 호주 전역, 남미 아마존 등에서 엄청난 규모로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기후위기나 팬데믹은 한 지역이나 국가가 나선다고 통제되는 문제가 아니다”며 전 지구적 차원의 노력을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발전 욕구가 강한 인도와 중국이 과연 온실가스 감축에 본격적으로 나설지, (우리나라에서) 환경운동가가 아닌 일반인들까지 모두 변할 수 있을지, “솔직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답한 듯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남은 것은) 실천의 문제”라며 “능력이 충분한 우리도 안 하고 있는데, 방글라데시 같은 국가가 하겠느냐”며 갈라진 목소리로 국가적 각성을 촉구했다.


편집 : 윤재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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