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은초 기자

한일관계는 지난 8년여간 바람 잘 날 없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집권 내내 극우세력을 대변하며 한국에 위협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일본을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며 개헌에 힘을 쏟았다. 지난해에는 한일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엮어 보복에 나섰다. 그런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새 총리에 올랐다. 스가 총리는 전임자에 비해 우익 색채가 덜하다고 알려진 만큼 그가 이끄는 일본은 극우 노선을 벗어나 한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려면 현재 한일갈등의 기폭제가 된 수출규제를 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대가 바뀌었다는 것은 대화의 문을 열 전기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스가 총리는 이전 내각이 수출 규제를 검토할 때 반대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이후 아베 정권의 ‘입’으로서 강경 발언을 이어갔지만, 이는 단지 중론에 따라 태도를 바꿨을 뿐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일인자가 되어 직접 결정을 내릴 때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가 총리는 당분간 이전 정권을 계승하는 모양새를 보이겠지만, 임기 연장의 의향을 보인 만큼 시간이 갈수록 자기 정치를 펼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임기 연장에 성공한다면 파벌에 강하게 엮이지 않은 그로서는 극우세력과 선 긋기도 가능할 것이다. 그를 총리로 세운 데에 크게 일조한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도 한국에 친화적인 인물이다. 이들이 국정 운영의 전면에 나서 수출규제 해제 등 한일관계 개선에 힘쓸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수출규제 해제는 일본에도 필요한 조처다.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 품목 수출을 제한한 뒤 1년 동안 한국은 국산화와 공급 다변화를 통해 어느 정도 대응에 성공했다. 특히 고순도 불화수소는 대일의존도를 10분의 1로 떨어뜨렸다. 반면 수출규제 이후 국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이어져 일본 경제도 타격을 입었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 소비재 기업 영업이익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일본 내 한국인 관광객도 절반가량 줄었다. 한국인 관광으로 지역 경제를 유지하던 대마도에는 관광객이 90% 줄어 일본 정부가 추경을 편성해 지원에 나섰을 정도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 수출규제가 일본에 더 큰 타격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아베 전 총리 역시 사태를 파악했겠지만, 정치적 입지 때문에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았을 테다. 수출규제를 반대했던 스가 총리가 한 번 더 혜안을 발휘할 때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지속해 얻을 수 있는 국익은 없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신임 총리와 전화로 회담했다. ⓒ 연합뉴스

경색된 한일관계는 양국에 손해만 남겼다. 코로나19로 경제가 휘청이는 이때 양국은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아베 전 총리가 역사 문제를 경제로 끌고 와서 얻은 건 경제 손실과 지지율 하락뿐이다. 아베는 총리직 퇴임 사유를 건강상 문제라고 밝혔지만, 임기 말 낮은 지지율을 회복할 여지가 없어 최장수 총리의 영광만 챙기고 물러났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스가 총리가 아베 노선을 따르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제 극우는 일본을 살릴 수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한국의 공조가 필요하다. 일본 지도자가 바뀐 만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한일 양국은 수출규제 해제부터 시작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 스가 신임 총리의 현실감각을 기대한다.


편집 : 김정민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