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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언론이 못 본 곳에 눈을 돌렸다

기사승인 2020.09.30  16: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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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희 최유진 이정헌 기자 김지연 PD mufc1001@naver.com

- [신문과 방송] 단비뉴스 '이주노동자의 집' 취재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월간지 <신문과 방송>이 <단비뉴스> 특별취재팀의 ‘이주노동자 집’ 취재기를 2020년 10월호에 실었다. 뉴스통신진흥회 주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이 기사는 3차원 입체 화면과 영상 등을 활용한 인터랙티브(독자반응형) 콘텐츠로도 제작돼 주목받았다. <신문과 방송>의 양해를 얻어 취재기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한국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누굴까?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사회적으로 부각됐다. 다치거나 숨져야 세상의 눈길을 받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없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불붙었다. 우리는 궁금했다. 혹시 더 가려진, 더 위험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없을까? 탐색 끝에 찾은 대상이,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이라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주노동자’였다.

지난해 12월 ‘의미 있는 기획기사를 써보자’고 뭉친 특별취재팀은 이주노동자가 겪는 문제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높은 산재 발생률, 빈번한 임금 체불, 사업주의 폭력 등 다양했다. 한 팀원이 ‘홈리스’를 취재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주노동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삶의 기본 환경인 ‘집’을 들여다보자고 제안했다.

   
▲ 인터랙티브 기사 <이주노동자의 집> 메인 화면. Ⓒ 단비뉴스

이주노동자를 다룬 기존 기사들은 대부분 산업재해나 임금 체불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 다수가 외딴 논밭이나 공장, 바다 위 컨테이너,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데도, 열악한 주거 환경을 다룬 것은 단발성 기사들뿐이었다.

간혹 고발성 기사도 나왔지만, 그들이 ‘왜’ 그곳에살 수밖에 없는지,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이제는 언론이 내국인의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보다 열악한 ‘이주노동자의 집’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가두리 집에는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 Ⓒ 단비뉴스

외딴 논밭과 바다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

막막했다. 바다 위에 사람이 보이는데 갈 수 없었다. 그 역시 육지로 쉽게 나올 수 없다. 그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물고기 먹이를 주는 이주노동자다. 바지선 위에는 컨테이너가 여러 개다. 먹이 창고가 대부분이지만, 간간이 위성 안테나며 에어컨 실외기가 딸린 집도 있다. 현지에서는 가두리 집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한국 사람도 살았다지만, 이제는 이주노동자 몫이다. 고용인이 배를 갖고 와주지 않으면 바다에서 나갈 수 없는 이주노동자는, 파도치면 멀미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런 곳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는 한국인들을 대신해, 멀미와 외로움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어업을 지키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를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막막했을 때,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이끈 곳은 외딴 논밭이었다. 줄줄이 선 비닐하우스들은 농작물이 자라는 공간이면서, 사람이 사는 집이기도 했다. 설 연휴, 상추 농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설치된 샌드위치 패널(다른 재료를 샌드위치 모양으로 접착한 특수합판) 컨테이너에 살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려면 동료의 방을 두드려야 하고, 밤 9시까진 수돗물도 쓰기 어려운 공간에서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한여름을 난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숙소 취재는 사업주의 눈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해야 했다. 자칫하면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천에서 비닐하우스 숙소를 취재할 때는 CCTV를 피해 비탈길로 접근하고, 사업주를 마주칠까봐 계속 경계해야 했다.

한 공장의 컨테이너 숙소를 취재하러 갔을 때는 설 연휴라 공장은 휴무였고 사장도 연휴를 보내러 가고 없었다. 하지만 취재팀을 초대한 이주노동자는 계속 눈치를 살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서는 카메라 가방을 오른쪽으로 메라고 강조했다. 왼쪽에 CCTV가 있어서였다. 제보자의 동료 중 일부는 취재에 응했고 일부는 자리를 피했다. 같이 갔던 이주노조위원장은 “저 중 몇몇은 사장에게 기자가 취재를 왔다고 알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왜 제보자가 계속 주위 눈치를 보고 불안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공장의 이주노동자들은 시끄러운 작업장 바로 옆, 수평이 안 맞아 삐걱거리는 컨테이너에 살고 있었다. 사장은 작업장뿐만 아니라 숙소까지도 감시할 수 있었다. 포천에서 취재를 도와준 목사는 “이주노동자는 노예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한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정말로 최소한의 시설에 언제나 감시를 당하는 감옥과 다를 게 없었다.

여성 이주노동자는 농장 중간관리자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사업주는 여성 이주노동자 숙소에 언제든 불쑥 들어갈 수 있었다. 쉬는 공간에서도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들은 마을이 아닌 논밭에 떨어져 사는 탓에, 위기 상황에 도움을 청할 이웃도 없었다.

집이 바뀌려면 법이 바뀌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가건물에서 지내는데도 터무니없는 주거비를 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3명이 지내는데, 월세가 75만 원인 곳도 있었다. 고장난 에어컨에 난방시설도 없는 방인데, 도시 오피스텔보다 월세가 비쌌다.

열악한 주거 현장을 하나둘씩 목격할수록, 사업주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렇게까지 방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는 것은 포기하고, 간접취재를 선택했다. 이주노동자가 언론과 접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재고용을 불허하는 방법 등으로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 거의 확실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에 급급했다. 결국은 국회가 관련 법률을 제·개정해 사업주와 공무원들의 행동을 강제해야 변화가 생길 수 있었다. 

실제로 2018년 국회에서 관련법이 논의됐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숙사를 마련하지 않은 사업장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다’는 핵심조항이 빠졌다. 언론은 이 내용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고, 우리 사회는 놀랍도록 무관심했다. 그 결과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 개선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주거권은 인간 생활의 기본선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그 권리를 부정당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주요 언론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는 현실이, 취재를 하면 할수록 안타까웠다.  

탐사보도 공모전 최우수상에 인터랙티브 도전도

우리는 취재한 내용을 3부작 시리즈로 구성하고 영상도 만들어 뉴스통신진흥회 주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 응모했다. 그리고 지난 5월 1일 최우수작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우리는 상금 1,000만 원 중 일부와, 재학 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단비뉴스>의 지원을 합쳐 이 기사를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기획 단계부터 이 기사를 인터랙티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외부 디자이너·개발자팀과 협력해 3차원 입체 화면과 360도 사진, 동영상 등으로 기사를 더욱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우리가 취재 단계부터 걱정했던 일이 터졌다. 지난 5월 <단비뉴스>와 <연합뉴스>에 기사가 실린 후에, 취재를 도와준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이 재고용이 안 될 상황에 처했다는 이주노조위원장의 연락이었다. 그는 이주노동자의 재고용이 확실해질 때까지 인터랙티브 뉴스 보도를 미뤄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 이주노동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늦은 밤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잠시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숙소를 보여주는 데도 큰 용기를 낸 걸 알기에, 제보자에게 더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보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재고용이 보장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진실을 알리기를 포기한다면, 결국 열악한 주거 문제를 방치하는 사업주에게만 좋은 일이 될 것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그에게 이 보도가 단지 한 사업장을 고발하는 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많은 이주노동자가 처한 주거 실태를 알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취재 내용을 빠짐없이 보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제보자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주저하며 “사장님이 화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숙소를 촬영한 영상이 다시 한번 상세히 보도돼 사장을 자극할까봐 걱정했다. 우리는 그의 우려를 반영, 인터랙티브 효과를 크게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사진과 영상을 손질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터랙티브 사이트가 8월 2일 공개됐다.

홍수가 다시 끌어올린 이주노동자의 집 

한여름에 인터랙티브 사이트를 열면서 살짝 아쉬움도 느꼈다. 영상이 주로 한겨울에 취재된 것이기도 했고, 시의성 면에서 좀 떨어지게 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한 주가 채 지나지도 않아 상황이 바뀌었다. 텔레비전과 신문에 이주노동자의 집 문제가 연이어 보도됐다. 경기 지역에서 장마와 홍수로 집을 잃은 사람 중 다수가 이주노동자라는 뉴스였다. 취재팀이 인터뷰했던 김이찬 대표와 김달성 목사가 방송에 나왔다. 장마와 홍수로 이주노동자의 집이 재조명될 것이라곤 생각을 못 했었다.

한편으로 서글픔도 느꼈다. 보도 이후에도 이주노동자의 집은 그대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제든 사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열악한 공간에 이주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다. 겨울이면 화재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성폭력 피해도 발생했다.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제도와 인식, 관행이 바뀌어야 하는데, 고용노동부와 사업주들은 외면하고 있다. 부디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도 관심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 <단비뉴스>에 보도된 영상 취재물(위)과 연합뉴스에 실린 이주노동자의 집 기사(아래). Ⓒ <단비뉴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의 집> 보도는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준 이주노동자들 덕에 가능했다. 그들은 혹여나 한국에서 일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하면서도, 위험하고 허술한 집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애써 웃으며 털어놨다. 우리 기사가 큰 힘이 되지 못한 것 같아, 그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다. 취재를 도와준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께도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기꺼이 이주노동자들의 벗이 돼,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힘을 보태온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생생한 현장을 취재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할 수 있었다.

세상을 보는 안목과 취재 역량을 길러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교수들께도 감사드린다. 취재와 제작의 전 과정을 세심하게 지도해준 덕에 기사와 영상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번 작업 과정에서 우리는 대학원 수업에서 배운 취재 보도의 기본과 언론윤리를 최대한 지키려 노력했다. 모든 수업에서 강조된 ‘저널리즘의 사명과 원칙’은 우리가 헤맬 때마다 길잡이가 돼 주었다.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 팀원들끼리 치열하게 논쟁하고 합의를 찾아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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