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택시기사’

▲ 오동욱 PD

2차선 도로에서 택시기사들은 치열하다. 좌회전을 위해 1차선으로 끼어들려 하지만 쉽지 않다.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의 텃세가 심하다. 택시기사 경력 3일째. 손에 땀이 축축하다. 기어이 머리를 들이밀면 언젠가는 끼워줄까? 희망을 엿보다가 한숨으로 날려버린다. 끼어들지 못하면 나는 돌아가야 한다. 어디까지 돌아가야 할지 감도 안 잡히지만, 선택지가 없다. 뒷자리에서 자기소개서를 중얼거리던 입이 멈춘다. 손님이 불편한 시선으로 나를, 핸드폰 시계를, 미터기를 번갈아 바라본다. ‘좀 끼워주라 새끼야.’ 희망을 담아 욕설을 내뱉는다. 차 안 공기는 서늘하면서도 텁텁하다. 텃세와 불편함 사이에 끼인 채, 등에 땀이 축축하다.

▲ 불편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 pxhere

도로는 왜 불편한가? 편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창출한 공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역설적이다. 편해지려고 택시를 탄 손님도 마찬가지다. 같은 생각일까? 그가 불편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의 시선을 느낀다. 그리곤 양보하지 않는, 1차선의 차들을 바라본다. 텃세에 저항하려고 차 머리를 집어넣으려고 하자 검은색 그랜저가 ‘어딜 감히’라는 식으로 제 몸뚱이를 앞당겨 공간을 채운다. 할 수 없이 브레이크를 밟는다. 덜컹. 몸이 앞으로 쏠린다. ‘힘’이 몸을 떠민다. 관성이라는 이름보다 놀라는 힘, ‘경력’(驚力)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경력이 작아서 텃세를 견제하지 못한다. 손님이 나를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런 눈으로 봐도 어쩔 수 없어요, 그건 내 몫이 아닌걸요.’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래, 미안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텃세를 부리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머리를 들이미는 것뿐이다. 손님이여, 충실히 머리를 들이미는 사람에게 불편한 눈을 뜨지 마시라. 나는 살고자 했을 뿐이다. 모자란 것은 놀라는 힘, 경력이다. 불편함 섞인 시선을 받고 손에 땀을 쥐고 1차선으로 끼어들려 한다. 여전히 끼워주진 않지만, 여전히 불편한 시선을 받지만, 나는 치열하게 끼어들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불편함을 남긴 채 고개를 내리고 자기소개서를 중얼거린다. 

불편함의 감정이 택시 안을 휘감은 지 이십여 분, 십 분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어쨌든 목적지에 도착했다. 긴 한숨을 돌리자, 손 위로 카드 한 장이 올라온다. ‘띠링.’ 카드 소리가 덜컥하고 열리는 문소리와 겹친다. 얼른 떠나버리려는 듯 그의 모습이 바쁘다. 열린 문 사이로 내 한숨이 열린 차 문밖을 나선다. 그러나 ‘쾅’. 택시 문이 닫힌다. 감옥 문이 닫히는 소리다. 그 안에 가둬 두려 하는 것은 불편함의 공기일까, 택시기사일까, 어쩌면 도착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일까? 목적지에 도달하자 손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텃세의 도로에 ‘불편함’, ‘나’, ‘그의 과거’가 덩그러니 남았다.

불편함이 늘어선 4차선 도로의 마지막 차선이 보인다. 여기에는 버스, 장애인전동차, 자전거, 전동보드. 그리고 나. 끼어들지 못해 밀려난 바퀴들이 있다. 밀려날 곳이 더 없는 마지막 차선. 폐지 줍는 할머니의 리어카 한 대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3차선으로 절대 들어갈 수 없는 4차선만의 바퀴. 나는 차마 욕도 경적도 울부짖지 못했다. 누구도 놀라게 할 수 없는, 경력을 높일 수 없는 바퀴에게 치이는 소리는 가혹했으니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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