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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테러 컨설턴트’가 만든 ‘쓴 맥주’

기사승인 2020.09.10  23: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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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희 기자 mingky_official@naver.com

- [단비인터뷰] 제천 ‘뱅크크릭브루잉’ 홍성태 대표

중동 지역에서 도청·감청·폭발물 탐지 등 ‘대테러 컨설팅’을 하던 정보기술(IT) 전문가가 충북 제천에 양조장을 만들고 벨기에식 수제 맥주를 만들고 있다. 고추 농사를 짓던 마을은 ‘2019년 벨기에 국왕 방한 때 청와대 만찬에 오른 맥주’를 생산하는 마을로 자리를 잡았다. 한적했던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은 홍성태(54) 뱅크크릭브루잉 대표를 지난 5월 30일 제천시 봉양읍 솔티마을의 솔티맥주 양조장에서 만나고, 지난달 27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고추농사 짓던 마을이 ‘청와대 만찬에 오른 수제 맥주’ 생산지로

   
충북 제천시 봉양읍의 솔티맥주 양조장 앞에 선 홍성태 뱅크크릭브루잉 대표. ⓒ 민지희

“도전 못 하면 영원히 못 해요. 그냥 한 번 해보는 거예요.”

솔티마을에서 맥주 원료인 홉을 재배해 벨기에식 수제 맥주를 만드는 그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도전’으로 압축했다. 홍 대표는 인하대에서 세라믹(도자기, 반도체 재료 등 연구)을 전공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졸업 후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에 뛰어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국내 사정이 어려워지자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후 15년간 일본, 홍콩, 미국, 싱가폴 등에서 IT 관련 업무를 하다 친구 소개로 ‘대테러 컨설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중동 지역 정부들을 대상으로 도청·감청·폭발물 탐지 및 제거 등의 기술적 컨설팅을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2008년 파키스탄 테러집단의 인도 뭄바이 호텔 테러 사건을 계기로 그는 그 일을 오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고, 자신이 좋아하던 수제 맥주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틈나는 대로 일본과 미국, 벨기에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맥주 기술을 배웠다. 호락호락 가르쳐주지 않는 현지인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고, 설비와 장비를 보고 발효 온도 등을 슬쩍 기록했다가 양조장 사장과 맥주를 마시며 확인하기도 했다.

국내 주류 유통법이 바뀌어 누구나 수제 맥주를 만들어 팔 수 있게 된 2015년에 그는 제천에서 뱅크크릭브루잉을 설립했다. 뱅크크릭의 뱅크(bank:둑, 제방)는 제천의 제(堤)에서 따왔고, 크릭(creek:개천, 시내)은 천(川)과 같은 뜻이다. 솔티맥주는 ‘소나무 언덕’이란 뜻의 솔티마을 이름을 빌렸다.

‘나라 잃은 의병의 씁쓸한 마음’ 맥주 맛으로 표현

홉 농사를 짓기 위해 제천을 택한 것은 유기농 농사를 짓는 지인을 따라갔다가 우연히 이뤄진 결정이었다. 도시 생활만 했던 아내도 긍정적이어서,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지내는 법 등 귀농·귀촌 교육을 3개월 받고 내려왔다. ‘홉 농사를 지어 한국형 맥주를 만들자’는 각오와 함께.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땅을 빌리고, 도움을 받으며 첫발을 내디뎠다. 몇몇 주민이 관심을 보이자 영국에서 묘목을 사와 무료로 나눠주었다. 다음 해부터 그들과 함께 홉 농사를 시작했다.

   
5미터(m) 정도 자란 홉 사진 앞에 선 홍성태 대표. ⓒ 민지희

마을에서 5천~6천 평 규모의 땅에 홉을 재배하면 뱅크크릭브루잉 양조장에서 전량 수매하고, 키가 5미터(m) 정도 되는 홉꽃은 예식장 등에 납품했다. 그의 양조장에서 만드는 대표적 맥주는 ‘솔티8(팔)’이다. 미국에서 10년 이상 수제 맥주 1위를 했던 양조장에 찾아가 제조법을 배우고 40번 이상 시험적으로 만들어본 뒤 생산한 제품이라고 한다. ‘미국식과 벨기에식이 혼합된 독특한 매력을 가진 술’이라고 홍 대표는 소개했다. 8은 알코올 도수를 의미한다.

이 맥주는 특히 ‘국내에서 가장 맛이 쓴 맥주’로 알려졌는데, 의병의 도시인 제천에서 ‘나라 잃은 의병장의 씁쓸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홍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맥주와 지역은 떨어질 수 없다”며 “지역을 강조할 수 있는 술이 있어야 하고, 술에 문화나 역사가 담겨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제 맥주와 음식 무제한 제공’ 지역 축제도

그는 2016년 수제 맥주와 음식을 무제한 제공해 주는 한국 최초의 홉 축제를 열었다. 전국에서 온 200여 명의 가족 단위 방문객이 양조장을 가득 채웠다. 이후 해마다 행사를 연 홍 대표는 이를 좀 더 체계적인 축제로 만들기 위해 올해는 제천시 청풍면으로 장소를 옮겨 개최할 준비를 하고 있다. 홉밭은 이미 청풍면으로 이전했고, 2만5천여 평 부지에서 꽃과 허브, 맥주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홍 대표는 “코로나19 상황에 맞게 방문객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는 비대면식 공간에서 즐길 수 있게 주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태 대표가 제천시 청풍면으로 확장할 사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민지희

홍 대표의 양조장은 여행사이트 등에 ‘중부내륙의 대표적 관광지’로 소개되면서 방문자가 늘었고, 마을 주민들도 자부심을 느낄 정도가 됐다. 창업 첫해는 적자였지만 3년 차에 연 매출 3억 원을 기록하는 등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탄산압을 잘 견딜 수 있게 하려고 두꺼운 병을 독일에서 직접 수입해 올 정도로 제품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그에게도 타격을 주었다. 매출이 30%가량 떨어졌다. 전국의 양조장 매출이 90% 가량 떨어지고 일부 선술집과 수제 맥주 가게는 문을 닫기도 한 것에 비하면 나은 편이지만, 그는 이런 사태가 또 터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충북 등지에서 대면 판매에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 인터넷 판매를 확대하고, 청풍면에 방문객 간 접촉을 줄이며 즐길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마련한다는 설명이다.

‘세계 100대 맥주’ ‘주 4일 근무회사’에 도전

   
뱅크크릭브루잉 양조장에서 ‘세계 100대 맥주’의 꿈을 설명하는 홍성태 대표. ⓒ 민지희

양조장 경영자로서 홍 대표의 꿈은 ‘세계 100대 맥주’로 꼽히는 제품을 만드는 것과 ‘주 4일 근무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우선 지역문화 콘텐츠를 넣어 만든 독특한 수제 맥주로 제천을 더 널리 알리고,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술에 이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사업을 확장해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과 주 4일만 근무하고도 즐겁게 살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주 4일 근무’가 가능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지금은 1주일 내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뛴다는 그는 맥주 외에 위스키와 수제 초콜릿, 치즈 등 새로운 제품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다음달에는 제주도와 전라도에서 생산한 국산 보리와 홉을 90% 가량 원료로 쓴 맥주가 국내 처음으로 시장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뱅크크릭브루잉의 대표 상품인 세 가지 맥주. 왼쪽부터 솔티8, 수도원맥주(배론), 솔티 페일에일. ⓒ 민지희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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