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탐사전문기자
주제 ➁ 노사간 기울어진 운동장과 언론의 역할

수습기자 면접장에 들어와 있는 당신, ‘기사의 완성도와 타이밍 중에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시대인 만큼 ‘완성도’를 꼽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자신 있게 ‘타이밍’이라 답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의혹을 추적하는 기사가 처음부터 100% 맞춰진 퍼즐과 같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본인이 수집한 조각으로 전체 그림을 그리고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기사를 시의적절하게 내보내는 것이야말로 사회 변화를 이끄는 힘이라고 했다. 그는 <경향신문> 강진구 노동탐사전문기자다. 

▲ <경향신문> 강진구 노동탐사전문기자는 지난 6월 11일 세명대 저널리즘특강 두 번째 주제 강연에서 “탐사보도에 언론의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 박두호

“기업에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기업으로부터 2억원 손해배상, 급여 가압류 신청을 당한 기자가 있어요. 그게 나예요.”

언론계 최초 ‘노무사 기자’ 월급 가압류

강진구 기자는 1992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미디어팀을 거쳐 국제부에서 일했다. 2012년에는 현직 언론인 최초로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절반 이상이 노동자인데도 일간신문에 노동 관련 섹션이 없다는 것에 의문을 느껴 노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8년째 <경향신문>의 노동탐사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노동탐사전문기자로서 고초도 많이 겪었다. 그는 40여 건의 민·형사 소송을 경험했으며 지금도 KT&G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받은 상태다. 올 2월 그가 쓴 ‘KT&G ’신약독성‘ 숨기고 부당합병 강행의혹’ 기사 때문이다. 그는 KT&G가 바이오벤처기업 머젠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법 이면 약정을 체결했고, 신약에 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무리하게 영진약품과 합병을 추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기업 가치를 부풀리는 등의 부당행위를 했다고 보도했다.

▲ 2020년 2월 26일 <경향신문> 보도. KT&G의 불법 이면 약정과 부당합병 의혹을 제기한 이 기사로 강진구 기자는 KT&G로부터 2억원의 손해배상과 급여 가압류 신청을 받았다. ⓒ <경향신문>

그 결과 KT&G는 <경향신문>을 상대로 정정 보도와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강진구 기자 개인에게 월 급여 가압류를 신청했다. 기업이 이처럼 기자 개인에게 월급 가압류를 신청한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은 월급 일부를 2억원에 이를 때까지 가압류한다고 결정했다. 그는 “결정적 증거 없이 기사를 쓰지는 않았다”며 “후속 보도를 준비중이니까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기자냐, 컨베이어벨트 노동자냐

그는 2014년 박노해 시인이 사진전 개최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최근 언론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시 박노해 시인은 “요즘처럼 언론환경이 어려운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외부 통제와 탄압보다 더 무서운 건 정보의 폭증’이라고 말했다. 강 기자가 <경향신문>에 입사한 1992년만 해도 단독보도나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면 즉각 반응이 나왔다. 오히려 여론 독과점을 우려하던 시대였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여론 독과점은 일부 해소됐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의미 있는 보도가 저급한 정보에 묻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것이다. 

“미디어 수용자들이 스스로 많은 정보를 습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민주적 여론 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기자 업무가 컨베이어벨트 노동처럼 바뀌고 있는 현실을 박노해 시인의 말을 통해 꼬집었다. 박노해 시인은 “차분히 책을 읽고 오랜 시간 깊이 있는 취재로 숨은 진실을 밝히고 무언가를 바꿔낼 때의 보람과 희열, 기자만이 느끼는 그 의로운 소명과 열정을 실감하기 힘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진실에 깊이 다가가는 기자노동이 아니라, 단순하고 반복된 작업으로 천편일률적인 기사만 양산한다는 것이다. 후배 기자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기사로 세상을 바꿔본 경험을 갖기 어려운 것도, 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탐사보도를 했더니 삼성이 반응했다

좋은 보도를 위협하는 언론 환경에서 그가 제시한 대안은 ‘탐사기획’이다. 그는 2013년 노동전문기자가 된 뒤 처음으로 기획한 기사를 소개했다. 2013년 9월에 보도된 ‘20대 기업 ‘노동소득분배율’ 50% 못 미쳐’ 기사다. 기존 재무제표는 기업 쪽에서 수익성을 따지는 보고서다. 강 기자는 관점을 달리해 노동의 관점에서 얼마나 공정한 기업인지 평가를 해보고자 기사를 기획했다. 고용창출과 공정노동 관점에서 기업의 기여도를 계산하는 지표(L-CSR)를 만들고 500대 기업을 전수조사했다. 2013년 9월 기사가 나간 뒤 기업의 반향도 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10쪽이 넘는 반박 보고서를 내놨고, 강 기자가 개발한 지표를 이용해 100대 기업을 분석한 자료가 국정감사에도 쓰였다.

▲ 2013년 9월 9일 <경향신문> 보도. 기업이 아닌 노동의 관점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기획기사로 호평을 받았다. ⓒ <경향신문>

“노동 판결이 기업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했을 때, 대법원은 ‘판결 하나만 가지고 대법원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전체 판결을 한번 분석해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강 기자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서 고등법원의 노동자 승소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힌 이후, 새로운 탐사보도 기사를 기획했다. 2015년 7월에 보도된 ‘노동법 판결에 노동자는 없었다’는 기사였다. 그는 1990년부터 올 2월까지 25년간 대법원 판례를 ‘정리해고’ ‘쟁의행위’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정리해고 사건과 관련해서는 71%, 쟁의행위는 85%의 사건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판결된 것을 확인했다.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노동자에게는 불리하고 기업에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좋은 탐사보도를 위한 다섯 가지 요건

그는 탐사보도를 위해 다섯 가지만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첫 번째는 당장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포털의 언론사 제휴시스템으로 뉴스가 잠식당하는 상황에서, 호흡이 길고 내용이 방대한 기사를 쓰는 탐사보도기자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보도는 오랜 기간 두고 봐야 하며, 결국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 경험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완성도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강 기자는 “타이밍을 놓치면 우리 사회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기사를 쓰는데 충분한 팩트가 있다면 합당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전문가를 활용하되,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자들이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판단은 기자의 몫이라 설명했다. 그는 2011년 대우건설이 아파트 승강기 밑 기초철근을 절단한 뒤 6년 동안 숨겼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러나 건설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구조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 기사를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자료를 검토해보니 부실공사가 맞다는 판단이 들었고 성동구청 주거정비과 직원 2명, 구청의 연락을 받고 온 구조기술사, 아파트 관리사무소장과 현장을 점검한 뒤 ‘대우건설, 아파트 승강기 밑 ‘기초철근’ 절단 뒤 6년간 ‘쉬쉬’ 의혹’(2017. 10. 10) 기사를 썼다. 결국 주민들 반발로 재보수 공사가 이뤄졌다.

▲ 강진구 기자는 좋은 탐사보도기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으로 ‘당장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를 꼽았다. ⓒ 박두호

네 번째 조언으로 그는 소송을 경계하되 두려워하지는 말라고 했다. 팩트가 뒷받침된 기사는 소송에 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역시 진실성을 인정할 때 ‘보도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보도 당시 수집한 사실을 기초로 보도내용이 믿을 만한 것인지를 따진다. 언론의 사명은 수집된 팩트로 합리적 의심을 하는 것이다.

“제 기사의 원동력은 분노입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 합니다. 쓰고 싶은 기사를 못 쓰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객관보도의 신화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했다. 흔히 주관적 감정을 개입하는 보도는 좋은 보도가 아니라고 하지만, 완벽히 객관성을 유지한 보도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민주언론상 보도부문 특별상 수상 소감으로, 본인 기사의 원동력은 분노라고 말했다. 사회의 비상식과 비정의에 분노하며 바로잡고자 하는 열의가 좋은 기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다만 기사를 감정적으로 써서는 안 되며 분노를 잘 녹여서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 노동철학이 필요한 이유

“철학을 형이상학으로만 취급해선 안 됩니다. 철학과 고전은 수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받아들여집니다. 그만큼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기 때문이죠. 큰 안목으로 봐야 통찰이 생깁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는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의식이 낙타-사자-어린아이 순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 책세상

특강이 끝난 뒤 질문이 쏟아졌다. ‘기업에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동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의식 발전과정을 동물에 비유했던 것을 소개했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낙타에서 사자, 어린아이 순으로 발전한다. 낙타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규범에 무조건 순종하며, 사자는 규범을 거부하지만 그 속에서 진실된 가치까지 챙기지는 못한다. 반면 어린아이는 가치와 규범으로부터 자유롭고 스스로 삶의 입법자로서 살아가는 창조자다. 한국의 노사관계에서 기업은 노동자를 낙타로 만들고자 하며, 반면 노동자들은 사자가 될 뿐 어린아이로 나아가지는 못한다고 답했다. 

그는 노동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노동 그 자체가 중요한 삶의 과정이며, 노사간 신뢰와 타협 이전에 ‘휴머니티’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쓴 기사로 대기업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휴머니티’를 외치는 그에게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1학기 [저널리즘 특강]은 김언경, 김양순, 곽윤섭, 정연주, 강진구, 고경태, 민경중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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