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특강]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전문기자
주제 ① 고전으로 보는 노동 이야기

“노동은 그 자체가 삶의 일부입니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노동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탐사전문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노동에 관해 끊임없이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일터 민주주의’를 역설했다.

1992년 <경향신문>에 입사한 강 기자는 2011년 회사 노조위원장을 맡으며 노동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됐다. 노동법을 공부한 강 기자는 2012년 10월, 국내 언론사 기자 중 최초로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가진 노동 전문기자가 됐다.

▲ 강진구 기자가 지난 6월 11일 세명대 ‘저널리즘특강’에서 ‘고전으로 보는 노동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이나경

노동에 관해 남다른 시각과 깊이를 갖게 된 강 기자는 <경향신문> 토요판에 2018년 8월부터 2019년 5월까지 20편의 시리즈로 구성된 [강진구의 고전으로 보는 노동 이야기] 코너를 진행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고전 이야기에서 현대의 노동이 가진 문제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해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제1편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시작으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을 거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까지 우리 현실 속 노동문제를 고전과 엮어냈다. 어려운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접해본 동화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에서는 반복되는 노동자의 산재 사망을 읽어냈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통해서는 비정규직 제로 사회를 엿보았다.

사고가 났을 때나 주목받는 노동자의 삶

첫 번째 노동 이야기는 하이데거로 시작됐다. 강 기자는 노동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설명했다. ‘도구적 존재’로서 노동을 보는 것과 노동 그 자체가 소중한 인간 삶의 과정이라 보는 시각이다. 후자의 시각에서 노동은 거부하고 부정하는 대상이 아니라, 더 나은 노동을 어떻게 만들어가냐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강 기자는 노동 존중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노동에 관한 시각이 변화해야 하며 그 출발은 노동자를 도구로 보는 시선이 바뀌는 것이라 말했다.

“노동은 삶의 일부이므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실현하고 의미 있는 삶의 과정으로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강 기자는 노동에 관한 두 가지 관점을 이야기하며 망치를 예로 들었다. 망치로 못을 박을 때 우리 시선은 못에 가 있다. 도구가 아닌, 도구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시선이 가 있는 것이다. 망치가 망가져 도구로서 제 기능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도구인 망치에 관심을 둔다.

강 기자는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노동자는 제대로 일을 수행하고 있을 때는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파업을 하거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비로소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다. 얼마 전 자살한 경비 노동자의 죽음,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씨, 구의역 안전문 사고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 군 등. 노동자가 숨졌을 때 비로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 망치로 못을 박을 때 우리의 시선은 못에 가 있다. 망치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시선은 망치(도구)로 향한다. ⓒ Pixabay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보다 ‘일터’가 좋은 말

노동에 관한 시선을 바꾸기 위해 그는 언어가 만들어내는 세상에 주목했다. 대표적으로 ‘일자리’가 노동을 도구적 존재로 갇히게 하는 언어적 표현이라 말했다. ‘일자리’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먹고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먹고 살기 위한 도구로서 일을 지칭한다. 일자리란 표현 속에서는 노동하며 자기실현을 할 수 없다.

반면 ‘일터’는 일하는 공간이 삶의 한 부분으로, 강 기자는 ‘일자리’ 대신 ‘일터’라는 표현을 활용하면 인간다운 노동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삶의 현장을 부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전사’라는 단어에서도 과거 노동을 갇히게 한 언어적 표현을 살펴볼 수 있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은 전쟁에서 싸우다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했던 산업혁명 시대의 이야기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과 일반 청중이 강진구 기자의 강연에 몰두하고 있다. ⓒ 이나경

일터 민주주의 실현해야 

강 기자는 이어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통해 근대 이후 노동을 이야기했다. 고대 그리스 시민은 노동은 노예들에게 맡기고, 그들은 폴리스에 모여서 정치적 행위를 했다. 아렌트는 근대가 되면서 인간의 3가지 활동인 노동(생존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한 행동), 작업(인공세계를 구축하는 장인의 활동), 행위(더 나은 삶을 위해 토론하는 활동) 중에서 ‘작업’과 ‘행위’는 사라지고 ‘노동’만 남게 됐다고 말했다.

아렌트는 노동자가 다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시민적 삶과 연관 있는 활동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 기자는 프랑스 사상가 시몬 베유의 이야기에 더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 그 자체를 회피하기보다 노동을 인간다운 노동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에게 말과 생각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터를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처럼 만들어 노동자들이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노동에 관해 끊임없이 표출할 수 있는 ‘일터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주체가 되어 자기 목소리를 펼치는 것이다.

노동의 주체로 목소리를 내고 생각하는 인간을 강조한 그는 우리나라 양대 노총의 문제도 지적했다. 노조가 자신들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밥그릇 싸움이 아닌 전반적인 공기업의 정규직화, 다른 사업장과 연대파업 등 노동자계급을 높이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강 기자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중 가장 큰 문제로 노동을 도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여전히 노동 시간을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는 이야기다. 그는 소득주도성장론 역시 노동을 도구적 관점으로 보는 성장론의 변형된 형태라고 말했다.

▲ 강진구 기자가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나경

기본소득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

“유토피아 공화국의 최대 목표는 생산력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강 기자는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말하고자 했던 건 ‘하루 6시간 노동과 완전고용’이다. 즉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은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노동에 참여해 완전고용을 이룸으로써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모어는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제한해도 생필품과 편의품 등의 필수재 확보가 충분하다고 보았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노동시간을 줄인 만큼 남은 시간에 노는 것이 아닌 정신훈련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관련해 “기본소득이 늘어나게 되면 시장에 제공해야 하는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은 시장에서 소비하는 경기를 부양하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생각하는 기본소득 개념은, 토머스 모어가 말한 기본소득의 원개념처럼, 소비를 늘리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그만큼 가치 있는 활동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하루 6시간 노동을 주장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출판된 지 500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 Pixabay

‘성냥팔이 소녀’와 한국의 ‘산재 노동자’ 비극

강 기자는 안데르센이 쓴 <성냥팔이 소녀>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19세기 초 여공들이 성냥을 만드는 일에 많이 종사했다고 설명했다. 성냥공장 여공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밀폐된 공간에서 작은 막대기 끝을 유독성 물질인 하얀 색깔의 인(p) 액체 화합물에 담갔다가 빼서  성냥을 만들었다. 13~16시간 밀폐된 공간에서 인 화합물에 노출되면 인이 뼈에 흡착돼 고름이 나오기 시작한다. 병세가 심해지면 여공들은 아래턱이 주저앉은 ‘인턱 증상’으로 얼굴이 흉측하게 변한다.

그는 여공들의 ‘인턱 증상’에 관해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는 전조 증세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성냥공장 근로감독관들은 이를 확인해 얼굴이 하얗게 변한 노동자들을 골라내 해고했다. 해고한 여공들에게는 성냥을 한 움큼 쥐여 내보냈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성냥을 팔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안데르센의 소설 속 성냥팔이 소녀도 해고된 뒤 공장에서 받은 성냥을 길거리에서 팔다가 추위로 얼어죽었다. 

“최근 2015년 부천이나 인천 등지에서 휴대전화회사 협력업체 청년 노동자 5명이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어요. 에탄올이 아닌 메탄올을 세척액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죠. 메탄올 단가가 에탄올보다 훨씬 싸요. 절반도 안 했죠.” 

강 기자는 “200여 년 전에 일어난 성냥팔이 소녀의 비극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며 빈번하게 산업재해를 당하는 한국 노동자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 2016년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품공장에서 일하다, 2급 시각장애를 당한 전정훈 씨. 메틸알코올(메탄올)은 무색의 인화성 액체로 인체에 노출되면 시신경을 손상해 심한 경우 실명을 초래한다. ⓒ KBS

‘보이지 않는 손’의 역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한 것은 각자의 자유가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체 공익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대전제가 빠져있는 거예요.”

강 기자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한 시장의 특징에 관해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면 잘 굴러간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스미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외부의 아무런 규제 없이 가만히 내버려두면 노동자와 사용자의 투쟁에서 노동자는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게 스미스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비축해놓은 돈이 많기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면 버틸 여력이 있지만,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 사용자는 소수이면서 비밀스럽게 회합을 하지만 노동자들은 자신들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소란을 일으켜야 하는데 노동자들의 소동은 대부분 파국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우리의 노동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강 기자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조건이 빠진 채, 외부에서 시장을 규제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강조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1학기 [저널리즘 특강]은 김언경, 김양순, 곽윤섭, 정연주, 강진구, 고경태, 민경중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이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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