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농’의 공익적 가치

▲ 김태형 기자

농사지어 10남매를 길러낸 할머니는 내게 시골에 내려와 농사짓고 살라 했다. 요즘 청년들은 취업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밥을 굶진 않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아무리 취업이 어렵대도 시골에 내려와 산다는 건 달갑지 않았다.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거의 절반에 이르고 농가소득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농가의 미래가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농’(農)의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미국과 유럽 등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국가에서 발생한 식료품 사재기 현상을 봤기 때문이다. 서로 뜻이 맞아 사이가 좋은 상태를 뜻하는 한자말 ‘화’(和)는 ‘벼 화’(禾), 곧 쌀이 입(口) 앞에 있으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던 음식을 제때 조달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최대 밀 공급국 중 하나인 카자흐스탄부터 러시아, 이집트 등 여러 국가들은 농산품 수출을 금지하거나 곡물 비축량을 늘렸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면서 농산물 생산과 유통 문제로 식량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식량확보 중요성과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 Pixabay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50%도 안 되고 곡물자급률은 더 떨어져 지난해는 23%로 급락했다. 곡물자급률 세계 평균인 101.5%에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당장 ‘식량안보’가 위험한 지경까지 몰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외국인노동자가 입국하지 못하자 농민들이 일손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는 것을 보면 ‘식량안보’가 튼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농’ 문제 근원은 ‘농’에 관한 무관심에 있다. 휴대전화 클릭 몇 번이면 음식이 한 시간 내 도착하는 시대에 식료품조차 구하지 못하는 선진국들 모습은 사람들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미국식 산업형 농업모델과 비교해 생산성과 효율성만 따지는 것도 ‘농’의 공익적 가치를 무시한 단견이다. 농기계, 농약, 화학비료를 기반으로 한 거대한 기업형 농업은 생태적으로 지속적이지 않다. 가격경쟁력 측면으로만 한국의 ‘농’을 바라봐서는 논의 자체가 겉돌게 된다.

‘농’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농업과 농촌이 베푸는 다양한 공익적 가치에 주목하는 데 있다. 먹거리 조달을 넘어 환경과 생태 보전에 기여하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역∙농업이슈]와 [농촌불패]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의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편집 : 신지인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