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나는 숨쉴 수 없다’ ② 냄새

냄새가 지배하는 맨홀

사다리 타고 20m 내려간 지하에 초기우수시설 또는 비점오염원저감시설이 있었다. 작업할 저감시설은 와류형에 해당한다. 원통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는 물이 소용돌이 친다. 기름 등 부유성 물질은 물 위로 떠있고, 중금속 등 오염물질은 가라 앉아있다. 시설 주변에 ‘슬러지’(이물질)가 깊게는 2m 가까이 쌓여 있다. 요 며칠 집중호우로 빗물이 산의 흙과 도시의 쓰레기를 하수도로 끌고 내려온 것이다. 썩은 배설물 냄새가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코끝을 자극한다. 며칠 계속 내린 비 때문에 도로 위 모든 찌꺼기와 오염물질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다. 오염물질을 걸러내려고 설치한 저감시설은 쏟아진 흙과 쓰레기를 감당할 수 없어 헐떡인다. 

맨홀에 슬러지가 쌓이면 하수도로 물이 흘러가지 못한다. 우리 작업은 비점오염원저감시설 주변을 청소하고 슬러지 가득 찬 하수관을 뚫는 일이다. 맨홀에서 내가 저감시설을 청소하는 동안, 김씨 아저씨가 하수관을 청소하기로 했다. 그림자 하나 지지 않는 맨홀의 어둠이 이곳 20m 깊이를 실감하게 한다. 지상에서 물을 뿌려서는 슬러지를 씻어내지 못한다. 사람이 이곳까지 고압 호스∙진공 호스를 끌고 내려와 구석구석을 빨아들여야 한다. 슬러지는 끝없이 살아난다. 진공호스로 빨아들인 자리에 금방 새로운 슬러지가 밀려와 쌓인다. 삼십분만 더 버티면 빛을 볼 수 있으려나? 작업 한 시간째, 마스크는 내 날숨에 절어서 시큼한 냄새가 난다. 

▲ 상∙하수도는 자정능력이 없다. 청소차 호스의 물이 닿지 않는 곳이면 사람이 직접 맨홀에 내려가 뻘과 슬러지에 물을 뿌려야 한다. 지하 20m 맨홀은 여름철 음식물쓰레기 통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가 지배한다. ⓒ SBS

하수도를 지배하는 건 냄새다. 음식물쓰레기통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여름철 썩은 계란을 입속에 넣은 듯 역겨운 냄새. 그 냄새가 이곳 하수도를 지배한다. 썩은 하수도 냄새로 작업시간 내내 머리는 뻐근하고, 수없이 구역질이 올라온다. 작업 1주일째. 하루 작업이 끝나면 꼭 맨홀 뚜껑을 열고 밤새 환기를 한다. 슬러지에 물 뿌릴 때도 하수도 냄새는 되살아난다. 작업반장은 냄새에 황화수소가 섞여 있다고 했다. 황화수소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언젠가 황산이 ‘묻지마 테러’에 쓰였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신촌 연세로 지하 20m에서 슬러지에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준설차의 진공 호스로 슬러지를 빨아들이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머리 위 맨홀뚜껑의 가장자리 작은 구멍으로 엷은 빛이 새어 들어온다. 하지만 빛은 너무도 희미해 작업하는 내 그림자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한다. 홀로 하수관 하나를 기어 들어간 김씨 아저씨의 작업하는 소리는 아까부터 들리지 않는다. 불안한 느낌에 그를 찾아 축축한 맨홀 바닥을 무릎으로 기어간다. 

주변으로 연결된 하수관의 직경은 800mm, 허리를 숙여도 천장이 등에 닿아 무릎을 아예 땅에 대고 기어야 한다. 슬러지 사이로 뻘 섞인 검은 물이 흐른다.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바닥에 대고 무릎으로 기며 이동한다. 바닥을 짚은 손이 슬러지에 이따금 미끄러진다. 허리와 고개를 숙이고 작업한 지 두 시간째, 내내 숙이고 있던 뒤통수에 통증이 번뜩인다. 잠시 이동을 멈추고 몸을 굽혀 팔꿈치를 바닥에 댄다. 축축한 고무장갑 손으로 팔꿈치에 붙은 모래를 털어낸다. 두터운 고무장갑 속 손가락은 감각이 없다.

보다 더 큰 축제 음악소리

지상에선 축제가 한창이다. 여름마다 신촌 연세로에서는 물총 축제가 열린다. 축제가 흘린 물이 머리 위 쇠창살을 따라 아래로 흘러 들어온다. 물만이 아니다. 축제의 전자음악 소리도 지하 벽을 타고 내려온다. 소리는 지하에 울려 퍼져 지상보다 더 크게 들린다. 물총 축제에 간 내 또래 남자애들은 광고 속 연예인들이 입는 옷을 입고, 왁스로 머리를 넘겼다. 나는 축제에 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사서 그때까지 입은 티셔츠에서는 반지하 하숙집의 화장실 냄새가 난다. 여름 장마철 화장실의 은은한 곰팡이 냄새도 난다. 돼지농가 수조나 수산시장 물탱크를 청소한 날엔 하숙집 대학생들을 피했다.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빨래비누를 잔뜩 묻혀 시멘트 바닥에 작업복을 빡빡 비볐다.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 몸의 냄새는 여전해 사람들을 피했다. 

김씨도 말했다. 빛 한줌 없는 여기 맨홀이 차라리 땅 위보다 편하다고. 하수구 냄새, 돼지 배설물 냄새, 생선 냄새에 절여진 일용직 노동자 두 사람에게 햇빛과 축제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탈북해서 중국에서 쭉 살다가 2년 전 겨울에 한국에 들어와 먼저 살던 누이와 아들을 만났다. 꿈을 찾아온 남조선에서 하루 벌어먹고 살기란 어려웠다. 배설물 냄새 참아 가며 하수도관을 청소했다. 다시 맨홀 벽으로 난 하수도관 하나를 따라 무릎으로 긴다. 등에 스치는 하수도관의 천장이 기어가는 내 등허리에 닿는다. 지상의 무게가 묵직하다. 그는 하수도 끄트머리 어딘가 있을 것이다. 계속 기어간다. 천장에 고인 물이 한두 방울씩 아래로 떨어져 얼굴을 적신다. 다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장 더럽고 역겨운 것들이 ‘배출’되는 곳

하수구 맨홀에는 사람이 버린 가장 더럽고 역겨운 것들이 모인다. 몸을 씻고, 양칫물 뱉고, 똥오줌 눈 것을 씻은 물이 흘러 들어온다. 욕망이 ‘배출’한 찌꺼기들을 받아들이는 하수도가 정작 제 스스로 정화하고 배출할 능력은 없다. 누군가 사람이 직접 내려와 물 아래 가라앉은 슬러지를 걷어내야 한다. 맨홀 바닥에는 엉겨 붙은 머리카락과 다 녹지 않은 휴지조각, 이따금 쓰고 버린 콘돔 따위가 흐르는 물에 채 쓸려가지 않고 엉겨 붙어있다. 한데 모인 슬러지를 손으로 모아 밀어낸다. 슬러지 아래 뭉쳐 있던 썩은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치켜 올라온다. 구역질을 간신히 참는다. 숙였던 뒤통수가 다시금 아파온다.

맨홀 작업은 흔치 않다. 하수관이 막힐 때 한 번씩 청소한다. 어제까지 공사장에서,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오늘은 마스크 쓰고 맨홀 안에 들어간다. 인력사무소에서 십분 동안 진행된 안전교육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다. 어제 한 일이 다르고, 어차피 내일 할 일도 맨홀 작업은 아닐 것이다. 같은 작업을 해본 사람도 몇 안 된다. ‘맨홀 작업’을 선뜻 하겠다고 나선 사람도 없다. 맨홀 속 청소 작업은 대개 기술 없는 사람들이 했다. 이주노동자들 몫이란 소리도 들렸다. 이번에는 탈북민 김씨와 내가 뽑혔다. 우리 둘이 맨홀에 들어가고 지상에는 용역업체 두 사람이 남았다. 용역업체 사람은 산소 측정기로 맨홀 입구에서 ‘띡’하고 맨홀 산소의 농도를 쟀다. 맨홀 안 공기가 불안했다. 측정기를 좀 갖고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위험하지 않으니 염려 말라’고 말했다. 용역 업체 사람에겐 굴삭기 자격증이 있다. 

숨을 쉴 수 없다

▲ 사방이 막힌 맨홀의 밀폐공간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 해 평균 18명이 작업하다 목숨을 잃는다. 지하 맨홀은 그곳을 생계삼아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 최전선이다. ⓒ KBS

무릎으로 기어 앞으로 나아가며 손을 쭉 뻗는데, 손에 뭔가 잡힌다. 김씨 머리였다. 그는 물이 잠긴 맨홀 바닥에 엎드려 있다. 그의 팔 밑을 붙잡고 몸을 뒤집는다. 바닥에 쌓인 걸쭉한 액체가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는 눈은 부릅뜨고 있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긁어내려는 듯 헤집은 슬러지 사이로 계란 썩는 냄새가 한층 두껍게 풍겨온다. 숨이 막힌다. 얼굴 덮은 마스크를 벗어 젖힌다. 마스크가 바닥에 딸린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계란 썩은 냄새가 강렬하다. 엎어질 뻔 휘청거리다 겨우 맨홀 벽면을 짚고 섰다. 희미한 햇빛에 손에 쥐고 있던 청소용 솔과 누워있는 김씨가 아득하다. 계란 썩은 냄새가 맹렬하게 목구멍으로, 가슴으로 파고든다. 숨이 쉬어 지지 않는다. 소리쳐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구조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소리칠 수 없다. 나는 지금 홀로 냄새 가득한 지하 20m 맨홀에 있다.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갈등과 대립 너머(Beyond)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나는 숨쉴 수 없다’이다. 경찰에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가 죽음 직전에 몇 번인가 울부짖었다는 이 말은, 코로나가 드러낸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외침이자 세상의 불평등과 편견, 차별을 넘어서려는 몸부림을 상징한다.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식을 혁신할 뉴노멀은 무엇인가? ‘성폭력, 냄새’ 두 키워드로 제대로 숨 쉴 세상을 생각한다. (편집자).

편집 : 박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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