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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중대하지 않나

기사승인 2020.08.13  14: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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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은 기자 nadfri@naver.com

- [단비발언대]

   
▲ 윤상은 기자

'그들이 외진 모텔에 가는 이유.'

이 문장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한적한 국도를 따라 드라이브 할 때 외진 곳에 있는 모텔을 종종 봤다. 시가지와 떨어져 있고 주변에 야산과 논밭만 있는 모텔을 보면 불륜 관계인 사람끼리 찾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숨길 게 많은 이들이 남의 눈길을 피하려 할 것 같아서.

그런데, 지난 4월 29일 외진 곳에 있는 모텔에 머물러야 했던 노동자 둘이 숨졌다. 얼마 전 취재를 위해 한익스프레스 화재사고 유가족을 만나러 갔을 때 세상을 떠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화재는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처남-매형 사이였던 두 사람은 그곳에서 10여일 동안 우레탄폼 작업을 하고 있었다.

   
▲ 지난 6월 6일 오후 6시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 윤상은

경남에 사는 그들은 전국으로 일감을 찾아다니며 일했다. 일을 많이 할수록 돌아오는 게 많았던 그들은 공사장 일이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화재가 발생한 경기 이천시 공사장으로 오기 전에는 전남 화순군에서 이틀, 그 전에는 경기 안성시에서 보름 동안 일했다. 마지막 일터가 된 한익스프레스 공사장은 음식점에 가려면 차를 타고 몇 분을 달려야 할 만큼 외진 곳에 있었다. 두 사람은 주변 모텔 방에서 함께 머무르며 점심은 공사장에서 라면 등으로 간단히 때우고 저녁은 차를 타고 나가 식당에서 먹곤 했다.

화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은 “이런 재해는 분명히 또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조금 안 된 5월 22일 광주에서 26살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재활용업체 파쇄기에 끼어 숨졌다. 2016년에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김군, 2018년에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 노동자를 하늘로 보냈다. 노동자가 일하다가 변을 당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계속돼 왔다.

2017년 9월에는 노회찬 의원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산업 현장을 만들자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엄벌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계류하다가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기업 경영을 하는 데 부담을 너무 많이 주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익스프레스 화재가 나기 전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시공사 건우와 발주사 한익스프레스 등 관계 업체에게 화재 위험성이 있다고 6번이나 경고했다. 공사 현장 안전에 관해 기업의 책임이 무거웠다면, 6번의 경고를 무시할 수 있었을까? 언제 대형사고가 날지 모르는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경영하기 어려운 기업인을 먼저 걱정할 수는 없다.

   
▲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산재사망ㆍ재난참사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여전히 주요 현안에서 밀리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산업현장에서 사망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민주노총은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위기를 전가할 수 있다며 생존권 투쟁의 일환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도 아울러 관철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건물 청소 노동자는 사람들이 오기 전 이른 아침에 청소를 시작한다. 급식 노동자는 사람들이 식사하러 오기 전에 뜨거운 불 앞에서 땀 흘리며 음식을 조리한다. 공사장은 가림막을 쳐놓은 경우가 많아 안에서 누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계약직, 일용직이 많아 목소리를 합치기 힘들다. 그들이 입을 모아도 소리가 크지 않다. 우리 사회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외면해왔다. 그러니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외면하고, 노동자의 안전보다 기업인의 어려움을 먼저 걱정한다. 우리가 위험한 노동 환경을 외면할수록 노동자는 경제 논리에 휘말리고 이익 창출 수단이 되어 존중받지 못한다. 노동이 수단이 되는 한 산업재해는 반복된다.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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