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세계적 타투이스트들 한국 있는데 ‘불법시술’ 굴레

타투(Tattoo, 문신)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종전에는 조직폭력배나 특정 매니아들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타투가 신체상의 결점 또는 상처를 감추거나 특별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한 '액세서리' 형태로 일반인에게 확산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늘어나는 타투

태어난 지 1년도 안 돼 할머니 집 거실에서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서혜림(29) 씨는 왼쪽 팔에 심한 화상을 입고 성인이 될 때까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화상 흉터를 완전히 없애지 못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당한 적이 많았다. 여름철에 팔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나가면 "어쩌다 이랬니" 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도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무더운 여름에도 긴 소매 옷을 입고 외출하는 등 불편을 겪던 서 씨는 스물세 살 무렵 인터넷을 통해 ‘커버업’(cover-up) 타투를 알게 됐다.

▲ 어릴 때 왼쪽 팔에 화상을 입은 서혜림 씨는 꽃·나비·소녀 등을 그려 넣은 타투로 흉터를 가렸다. ⓒ 서혜림

커버업 타투는 흉터를 가리거나 이미 해놓은 타투를 다른 디자인으로 바꿀 때 한다. 가수 효린이 담도폐쇄증으로 두 번 수술을 받고 배에 생긴 수술자국을 가리기 위해 타투를 이용하면서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서 씨도 커버업 타투를 알게 된 뒤 서울 유명 타투업소에 가서 그동안 힘들게 감추어 오던 흉터를 예쁜 그림으로 가렸다.

서 씨는 “불의의 사고로 생긴 흉터로 불편한 시선을 받으며 살다 보니 누군가 원망할 대상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커버업 타투를 하고 자신있게 민소매 옷도 입을 수 있게 됐고 당당해질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콤플렉스를 감추는 등의 커버업 타투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미용을 위해서 또는 남다른 개성을 드러내거나 기념할 만한 일을 기억하기 위해 타투를 하는 이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의류업체에서 일하는 윤지영(가명•29) 씨는 자기 반려동물 '해피'를 기억하기 위해 몸에 'behappy'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그는 돌고래 꼬리 그림도 함께 새겨 넣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목에 걸고 나가던 '돌고래 목걸이'를 아예 문신으로 새겨 넣은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취업이 안 됐는데 돌고래 목걸이를 하고 난 뒤 원하는 일자리를 얻게 됐다”며 “행운을 가져다 준 돌고래 꼬리로 타투를 했다”고 말했다.

강희영(가명•29) 씨는 평생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일기장 대신 몸에 새겼다. 지난 2017년에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일을 압축한 문구를 처음 새겨 넣은 그는, 지금까지 새긴 문구와 그림이 다섯개로 늘어났다. 구체적인 문구나 그림은 사적인 것이라 밝히기를 꺼렸지만 이를 테면 ‘믿음’ ‘약속’ ‘가치관’ 등과 같은 내용을 문구나 관련 그림 또는 이미지로 그려 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살아가면서 변하지 않을 것만 새겨 넣는다”며 “스스로 지켜 나가고 싶은 가치관이나 생각 다짐 등을 타투로 새겨 넣고 있다”고 말했다.

타투 경험자 300만…아직 남은 부정적 인식

▲ 최근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결점을 감추거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타투 시술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어깨, 팔, 발목 등에 타투 시술을 한 모습. ⓒ 김도윤

일반인들이 처음 타투를 할 때는 이처럼 특별한 의미나 사연을 담아 시술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개성을 강조하거나 예뻐 보이려는 이유 등으로 타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2018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개최한 '문신용 염료 안전관리방안 포럼'에서 문신염료 제조사 더스탠다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문신 이용자는 300만명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미용 목적으로 눈썹과 입술에 하는 반영구 문신 이용자 1000만명을 합치면 우리나라 인구 4명 중 1명이 문신을 했다는 뜻이 된다.

타투를 하는 사람들은 2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타투를 시술하는 타투이스트들에 따르면 타투를 하는 사람은 20대 여성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30대 여성들도 꽤 있고 20대 남성들도 타투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타투이스트들 설명이다.

20대 여성층 이용자들은 주로 개성을 드러내거나 미용상 예뻐 보여서 반영구적 액세서리로 타투를 새겨 넣는다.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타투 시술을 받으면 나중에 싫증이 날 수도 있어서 그냥 좋아하는 캐릭터나 무늬, 문구 또는 자기 이름의 이니셜 등을 새겨 넣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타투를 하는 신체 부위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목덜미나 팔목 발목 팔뚝 등 눈에 보이는 곳에 하고, 직장인이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옷으로 가려지는 등이나 배 옆구리 등에 타투를 한다.

‘외상성 타투’가 연원, 우리는 조폭 문신이 시작

▲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문신을 하게 된 것은 야쿠자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롯됐다. 사진은 영화 <거룩한 계보>의 한 장면. ⓒ <다음> 영화

타투(tattoo)는 “바늘로 피부에 작은 구멍을 내고 그것을 색깔 있는 잉크로 채워서 사람의 피부에 영구적으로 표시한 그림 또는 디자인”으로 “18세기 폴리네시아어의 ‘tatau’에서 유래한 ‘tattaow’ ’tattow’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고 옥스포드 영어 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폴리네시아어 ‘tattaow’의 어근인 ‘ta’는 ‘두드린다’는 뜻이다. 18세기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1768년 태평양에 있는 타히티를 탐험한 뒤 남긴 타히티인 관습에 관한 기록에 이런 내용이 남아 있다.

‘그들은 몸을 동물의 뼈로 만든 작은 도구들로 눌러 찍거나 뚫어 흠집을 내고, 그 흠집에 기름기가 있는 땅콩 따위를 태운 뒤 연기를 이용해 만든 진청색 또는 검은색 염료로 채운다. 그들이 ‘tattaw’라고 부르는 이 방법은 피부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타투가 인류 역사에서 언제 시작됐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는데, <동물농장>을 쓴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외상성 타투설’을 제시했다. 1900년대 초 영국 광부들이 채탄작업을 하다 난 상처에 석탄가루가 묻고 그걸 문지르면 석탄 색소가 영구히 피부에 남는데, 이런 외상성 타투가 시초가 됐을 거라는 가설이다.

고대 원시인들도 사냥이나 채집 등을 하다 상처가 나면 우연히 색소가 스며들어 영구적인 문신을 갖게 되고 나중에는 인공적으로 타투를 하는 것으로 발전해 왔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입증할 기록 등은 없다. 고대인들은 대체로 종교적 목적이나 치유의 수단으로 타투를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측되는데, 현대에 와서는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방식이나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문신을 하게 된 것은 대체로 조직폭력배들이 일본 야쿠자의 영향을 받아 상반신 전체나 등에 일본식 문신인 ‘이레즈미’를 새겨 넣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레즈미 타투’는 일본어의 ‘이레루’(넣다)와 ‘즈미’(먹)가 결합된 말로 ‘먹물을 넣은 것’이란 뜻인데, 타투의 일본어 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이레즈미 타투’는 일본 스타일의 타투를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다. 조직폭력배들이 주로 하는 ‘이레즈미 타투’에는 호랑이 용 잉어 등을 많이 그려 넣는데, 재물 권세 사업번창 명예 장수 등을 상징한다.

‘상처 가리기’에서 ‘자기표현 문화’로

타투 문신은 조폭을 떠올리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대중화하면서 부정적 인식이 많이 완화했다. 타투 중심지로 불리는 서울 홍익대 입구나 건국대 주변에 가보면 타투를 한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사람들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홍대 입구에서 만난 이다은(가명•22)씨는 “타투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내 주변에서는 회사 동료나 상사들도 대부분 이해해 주는 편”이라며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고 나만의 특별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어 타투 시술을 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가 지난 2018년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타투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0.9%가 ‘타투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많이 관대해졌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도 20대 73.2%, 30대 73.6%, 40대 70.4%, 50대 66.4%로 전세대에 걸쳐 긍정적 반응이 더 많았다.

‘타투는 의료행위’ 판결로 ‘불법시술자’ 신세

▲ 한국의 타투이스트는 전세계에서 주목받는다. 세계적인 유명세에도 이들은 모두 불법시술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이 타투 시술을 하고 있다. ⓒ 김도윤

지금 전세계 유명 도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타투 작업실의 타투이스트는 대부분 한국인이다. 여행웹진 <더 트래블>(THE TRAVEL)에 ‘당신이 서울에 가면 찾아야 할 10명의 한국인 타투이스트들’ 등의 기사가 실리는가 하면 SNS에서 가장 많은 팔로우를 가진 타투이스트가 있는 곳도 서울이다.

한국 타투이스트의 시술은 '코리안스타일 타투'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좋고 유명하다. 하지만 ‘세계적인’ 한국 타투이스트들은 모두 ‘불법시술자’란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의료법 제27조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타투 시술이 의료행위냐 아니냐는 건데 대법원이 지난 1992년 타투시술을 ‘의료행위’라고 판결하면서 모든 타투이스트들은 불법시술자가 돼 버렸다. ‘바늘로 피부를 뚫는 것은 의료행위이며, 의사면허 없는 사람이 바늘로 피부를 뚫는 시술을 하는 것은 불법의료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타투이스트들은 ‘타투 시술을 직업으로 택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법률로 정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 받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모두 기각 또는 각하됐다. 문신 시술 행위가 피시술자의 생명, 신체 또는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기각된 것이다.

타투유니온 “합법화하면 안전성 높아져”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타투유니온 김도윤 지회장은 "타투를 받으러 들어오는 외국인이 늘고 국내 시술희망자들이 많은데도 국내 타투이스트들은 전원 불법시술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관련 법령을 제정해서 타투 시술자의 자격요건을 갖추게 해서 합법적 시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일본도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가 지난 2018년 오사카 고등법원이 의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문신사의 시술을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면서 합법화해 우리나라만 타투 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한 나라로 남아 있다.

타투 시술을 의료행위로 규정해 불법화함으로써 타투 시술자의 자격과 업소의 위생 관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타투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어 오히려 시술을 받는 사람들의 안전이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17대 국회부터 정부가 ‘비의료인의 타투 작업 합법화’를 위한 타투양성화 입법을 추진했지만 대한의사협회의 반대로 좌절됐다. 타투유니온은 노동, 법률,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지난 6월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입법화 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 지회장은 “수십 년 동안 불법 상태로 지속돼 온 타투시술을 합법화해서 타투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 타투를 받는 소비자들의 안전과 서비스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 : 김성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