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⑯ 제천시 교동 민화마을

우리나라 동(洞) 이름에는 교동(校洞)이 유독 많다. 강릉 경주 공주 김제 김천 나주 대구 밀양 삼척 속초 양산 여주 제천 춘천 등 유서 깊은 동네에는 대개 교동이 있다. 교동은 향교(鄕校)가 있는 동네라는 뜻인데, ‘향교마을’ ‘교촌’(校村) ‘교리’(校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향교가 있던 마을에 붙여진 또 하나 이름은 ‘명륜동(明倫洞)’이다. 교동만큼 많지 않지만 명륜동이 있는 곳도 서울 부산 안성 안동 원주 목포 등 6곳이나 된다. 명륜동은 ‘명륜당(明倫堂)’에서 따온 이름이다. 국가가 유교 교육을 위해 서울에 성균관, 지방에 향교를 세웠는데, 명륜당은 강당 이름이다. ‘명륜(明倫)’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의 한 구절, 곧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교동과 명륜동은 양반 자제들 교육기관이 들어서 있던 대학촌 같은 곳으로 양반 동네였다.

▲ 충북 제천시 교동 제천향교 입구. 6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제천향교는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됐다. © 윤상은

민화마을이 된 향교마을의 사연

충북 제천시 교동 ‘향교마을’은 이제 ‘양반들의 대학촌’이 아니라 민초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민화(民畵)마을’로 변신해 사람들 사랑을 받고 있다. 제천향교는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1년(1389),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에 세워졌다가 조선 선조 23년(1590)에 지금 자리로 옮겨왔다. 1907년 순종 1년에 경북 문경 출신 의병장 이강년(李康秊) 장군이 이곳에서 항일투쟁을 할 때 왜병들이 불을 질러 대성전과 재실이 불타 위패를 두학리 박약재로 옮겼다가 1922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재건해 이곳으로 다시 옮겨왔다.

제천향교는 일제 강점기부터 신식교육제도가 도입되면서 역사적 유물로 남는 바람에 향교마을도 침체되고 노인이 많이 사는 동네가 되고 말았다. 이런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고 외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 2014년 제천지역 예술가와 주민들이 제천시 지원을 받아 ‘지붕없는 민화박물관’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예술가들이 동네 담벼락과 길바닥에 민화를 그려 넣기 시작하면서 향교마을은 민화마을로 변신했다. 

 
제천 향교 앞에 있는 마을의 담장과 바닥에 그려진 민화들. ⓒ 윤상은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깃든 민화 전시장

제천역에서 350번 버스를 타고 7개 정류장을 지나 교동 새마을금고 앞에서 내린 뒤 제천고등학교 방향 골목길로 들어서 200m쯤 가면 낮은 처마와 담장이 이웃끼리 잇닿아 있고 골목이 삐뚤삐뚤한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담벼락을 따라 큼직한 민화가 그려져 있고, 간혹 길바닥에도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과 잉어 그림 등이 보인다.

전국에 벽화마을이 많이 생겼지만 민화를 그려 넣어 옛 정취를 살려낸 곳은 이 마을이 유일하다. 한국민화협회 충북지부가 주제별로 나눈 골목길을 따라 담벼락과 길바닥 등에 주제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그렸다. 벽화를 오래 보전하기 위해 부착력이 강한 아크릴 물감을 많이 섞어 넣어 칠을 했다.

▲ 박기정 한국민화협회 충북지부장이 지난 18일 제천향교 앞 '학업성취길' 바닥에 향교로 오르는 잉어를 그리고 있다. © 윤상은

이들 민화는 원래 조선 후기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한 것으로 당시 생활상을 많이 담고 있다. 잉어 닭 나비 꽃 해 달 등을 소재로 출세, 장수, 다산 등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많아 ‘바라고 기리면 이루어진다’는 민간신앙이 깃들어 있다. 민화를 그린 사람들도 제대로 그림 공부를 한 화공이 아닌 무명의 아마추어나 떠돌이 화공들이었다.

잉어가 학문을 익혀 등용문을 오른다

교동 민화마을은 동네 한가운데 육거리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난 골목이 학업성취길, 장생길, 평생길, 장원급제길, 소망길, 출세길, 추억의골목길, 골목미술관 등으로 나뉘어 방문객을 맞이한다. 향교 바로 앞 골목은 ‘학업성취길’이다. 향교 입구에서 길을 건너 ‘학업성취길’에 들어서면 ‘충'(忠)’ ‘제(悌)’ ‘효(孝)’ 자를 쓰고 있는 붓 그림이 보인다. 한자에 그림을 더해 그 의미를 형상화한 ‘문자도()’다. 주로 삼강오륜과 관련된 글자를 같은 의미를 상징하는 동·식물과 함께 그린다. 주로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자가 등장한다.

학업성취길을 찾는 이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문자도의 세 글자 중 ‘효(孝)’는 잉어와 함께 그려졌다. 잉어는 하늘의 도움으로 한겨울에 병든 노모에게 드릴 잉어를 구한 효자 설화와 관련이 있다. 형제간 우애를 뜻하는 ‘제(悌)’ 자는 산앵두 나무 꽃과 할미새로 표현했다. 앵두나무 꽃과 잎은 길게 늘어지면서도 잘 어울려서 형제들이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시끄럽게 나는 할미새는 형제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빨리 알려주어 서로를 걱정하고 보살피는 형제애를 상징한다. ‘충(忠)’ 자는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오르는 걸 뜻하는 용과 함께 그려졌다.

 
문자도(文子圖)(첫 번째) 벽화는 유교 도덕사사상인 삼강오륜 중 ‘충'(忠)’ ‘제(悌)’ ‘효(孝)’ 자를 쓰고 있는 붓으로 표현됐다. 각각 같은 의미를 상징하는 용, 할미새, 잉어와 함께 그려 미적 요소를 더했다. 회초리를 맞는 아이(두 번째) 그림을 보면 서당에서 천자문을 외우지 못해 훈장에게 혼나는 상황이 연상된다. 길바닥을 보면 잉어 네 마리(세 번째)가 학문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향교로 가고 있다. 이 그림은 한국민화협회 충북지부가 18일에 새로 그렸다. ⓒ 윤상은

학업성취길을 끝까지 따라가면 서당에서 훈장에게 회초리로 맞으면서 우는 아이 그림이 나온다. 서당은 조선시대 마을에 있는 사설 초등 교육기관으로 주로 유학에 기초한 한문을 가르쳤다. 조선 후기에는 서민 가정에서도 여유가 있으면 곡식으로 수업료를 내며 아이를 서당에 보냈다고 한다. 힘들게 벌어 자식을 가르치려는 부모 마음이 민화에 담겨 지금까지 내려온다.

향교에서 학업성취길로 들어가 내리막길을 지나면 마을 중심인 육거리와 이어진다. 돌아서서 올려다보면 향교를 바라보는 위치가 된다. 학업성취길 바닥에는 향교를 향해 올라가는 잉어 4마리가 그려져 있다. 민화에서 잉어는 여러 뜻을 상징한다. 알을 많이 낳는다는 점에서는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며 귀신을 쫓는다는 뜻도 있다. 길바닥에 그려진 잉어는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출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옛 선비들은 시험 합격을 기원하며 잉어 민화를 방에 많이 걸어 두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절실한 ‘오래 사는 꿈’

향교를 바라보고 서서 ‘학업성취길’ 왼쪽으로 이어진 골목이 ‘장생길’이다. 장생길에는 열두 가지 운 중 최고로 여겨지는 ‘장생(長生)’을 기리는 민화가 그려져 있다. 장생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십장생’이다. 십장생은 민간신앙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거나 장수하는 10가지 물상인데, 해, 산, 물, 돌, 소나무, 달 또는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을 꼽는다. 장생길 담벼락에는 해, 산, 소나무, 돌, 불로초, 학, 사슴을 그려 넣었다. 조선시대에는 궁궐 안부터 궐문 바깥 여염집에 이르기까지 십장생 그림을 창문, 병풍, 주머니, 노리개 등에 그려 넣었다.

 
십장생(첫 번째) 벽화에 해, 산, 소나무, 돌, 불로초, 학, 사슴이 들어가 오래 사는 복을 상징하고 있다. 화접도(花蝶圖)(두 번째) 속 꽃과 나비는 부부애와 행운을 뜻한다. 닭(세 번째) 그림 중 수탉은 출세를, 암탉과 병아리는 다산을 나타낸다. ⓒ 윤상은

십장생 옆으로는 꽃밭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묘사한 ‘화접도(花蝶圖)’가 보인다. 나비는 부부애, 행운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혼수, 여성 생활용품에 많이 사용됐다. 화접도를 지나면 맨드라미를 배경으로 마주보고 있는 암탉과 수탉이 나온다. 수탉은 닭벼슬이 관직에 오를 때 쓰는 관과 비슷해서 출세를 상징한다. 수탉과 함께 그려진 맨드라미 역시 닭벼슬과 비슷하게 생겨서 입신양명을 뜻한다. 또 수탉은 아침이 밝아오는 걸 알려준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기도 한다. 암탉은 주로 병아리와 함께 그려지며 다산을 염원한다. 장생길은 영원한 삶을 기원하는 십장생과 함께 출세와 행복을 뜻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장생을 단순히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 사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을 바라던 선조들의 염원을 보여준다.

동네 가운데 육거리에서 세시 방향으로 접어 들면 ‘평생길’이 시작된다. 이 길 담벼락에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리는 경사(慶事)를 그린 ‘평생도’가 이어진다. 평생도는 주로 8~10가지 그림으로 이루어져 8, 10, 12폭 병풍을 수놓는 데 사용했 다. 태어나서 돌잔치를 하고, 혼례를 치르고, 과거에 급제해 부임지로 행차하고, 혼인과 회혼례를 축하하는 것 등 인생을 살면서 기분 좋은 일이라 여길 만한 것들을 그려 넣었다.

▲ 장원급제길에 있는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 동상. 바다에 사는 잉어가 용이 되기 위해 파도를 헤치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잉어가 용이 되는 것처럼 장원에 급제해 출세하는 것을 상징한다. © 윤상은

‘평생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맞은편 골목에 ‘장원급제길’이 있다. 길 입구에는 장원 급제해 풍악을 울리며 부임지로 행차하는 그림이 있고, 그 앞으로 구슬을 입에 문 잉어 동상이 있다. 동상은 ‘물고기가 용으로 변한다’는 뜻의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를 표현했다. 이때 잉어는 민물이 아니라 바다에 살며 거친 파도를 헤치고 해를 향해 솟아올라 용이 된다. 이는 <후한서 이응전>에 나오는 ‘등용문’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트릭아트로 표현한 용(첫 번째)과 활 쏘는 사람(두 번째) 그림. 트릭아트 그림 옆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사람이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 윤상은

장원급제길을 따라가면 빛의 굴절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표현한 트릭아트 그림도 나온다. 땅에 그려진 용은 그림 속에서 현실로 나와 있는 듯하고, 장원급제라고 쓴 벽종이를 향해 화살을 쏘는 사람도 있어 다른 그림보다 실감이 난다.

한 걸음에 그림 보고, 두 걸음에 소원 빌고

 
‘출세길’은 민화마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제천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첫번째) 마을 골목은 민화로 가득하지만 가장 좁고 짧은 길인 ‘추억의 골목길’에는 만화 캐릭터와 옛 골목 풍경 등 다양한 벽화가 있다.(두번째) 추억의 골목길 위쪽에 있는 ‘소망길’ 부엉이 가족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여겨진다.(세번째) ⓒ 윤상은

‘장원급제길’ 옆으로는 오가는 이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출세길’이 이어진다. 출세길은 마을 골목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제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출세길을 지나오면 커다란 용 한 마리가 담벼락을 지나가는 ‘골목미술관’이 나온다.

육거리에서 골목미술관으로 가는 길에는 ‘추억의 골목길’과 ‘소망길’이 있다. 추억의 골목길에는 5060 세대가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놀던 모습과,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만화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다. ‘소망길’은 인도 전설에서 원하는 소원을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전해지는 오냐나무와 물질적·정신적 풍요를 이루어주는 부엉이 가족 그림이 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소원을 생각하며 오냐나무를 지나고, 부엉이 가족을 지나며 희망을 꿈꾼다.

민화는 사실을 묘사하기보다 사람들의 바람을 상징적으로 그렸다. 수백 년 전 우리와 같은 땅을 밟고 지나간 선조들은 즐겁게 살며 나이가 드는 ‘장생’을, 학문을 닦아 출세하는 ‘입신양명’을 꿈꿨다. 이 소망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 마음과 비슷하다. 민화마을은 수능, 취업, 은퇴, 결혼을 앞둔 사람 모두에게 산책하고 소원을 빌며 자기암시를 하기 좋은 곳이다. 무엇이든 바라는 것이 없는 나이는 없을 테니까.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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