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공개념’

▲ 이동민 기자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써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10차 개헌안 중 128조 2항의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토지의 공공성’은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공공성의 정의는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빈부격차가 심화하면서 ‘사회 구성원 일부’가 땅과 집을 많이 소유해 혜택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은 땅에 연결된 재화라는 점에서 심각한 주택 문제도 공개념으로 접근해야 풀린다.

한국에서 토지 공개념이 처음 언급된 시점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6년 신형식 건설부장관이 외국 자본 유입으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자 “토지를 절대로 사유물로 인정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실정에 비추어 볼 때 토지 공개념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후 1989년 12월 노태우 정권 때 주택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토지 공개념 3법이 제정됐다.

토지 공개념 3법은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이다. 택지소유상한법은 특별시와 광역시의 개인 택지가 200평을 초과할 때 부담금을 물리고, 토지초과이득세법은 유휴지나 법인의 비업무용토지 가격이 상승하는 만큼 3년 단위로 최대 50%까지 세금을 물리며, 개발이익환수법은 택지·관광시설 조성 등 개발사업 시행지로부터 개발이익의 50%를 환수하는 조처다. 그러나 택지소유상한법은 1기 헌법재판소에서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1999년 위헌 판결을 받았다. 토지초과이득세법은 헌재가 토지초과이득세를 완납한 자에 대해서 아무런 구제책이 없다는 점을 들어 1994년 헌법불합치로 결정됐다. 개발이익환수법 말고는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1998년에 부동산 시장 안정을 명목으로 폐지됐다.

▲ 2018년 3월 21일 조국 민정수석이 토지공개념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대통령의 개헌안을 발표하고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정권의 방향이 사회주의에 맞춰져 있음을 재확인했다고 비판했다. ⓒ KBS

토지 공개념에 기반을 둔 정책이 지속되지 않은 이유는 토지 소유권에 관한 낡은 인식 때문이었다.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가 항상 사유재산으로 취급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토지 사유제를 계속할 정당성이나 필요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썼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토지에 관해 소유권 절대 사상에 젖어 있다. 

반대 논리 중 하나는 토지 공개념이 자칫 토지 국유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지 국유화와 토지 공개념은 엄연히 다르다. 토지 국유화는 소유권, 처분권, 수익권을 모두 국가에 일임하는 형태지만, 토지 공개념은 개인의 소유를 인정한다. 처분권과 수익권도 국가가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규제를 통해 국민의 주거권을 보호해주는 차원에서 실시된다.

토지 공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주거권 침해와 경제적 불평등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토지 공개념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논의와 실천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토지 공개념의 구체적 실현은 보유세 강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는 현행법상 3주택 이상 및 조정지역 대상 2주택에 한해 차등적으로 부과한다. 정부는 최근 잇달아 부동산대책을 내놓는 등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문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에도 시장이 관망세에 머물고 있는 것은 투기수요자들이 공개념이 부족한 대책의 한계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오르는 ‘풍선 효과’가 그 예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공개념을 되살리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인 지경에 이르렀다.

1988년 1기로 출범한 헌법재판소와 달리 2018년 9월 7기로 출범한 현재, 토지공개념에 관한 바람직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헌재는 시대 정신을 따라 법률을 심판한다. 과거의 위헌이 현재까지 이어질 거라 예단해서는 안 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박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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