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서울중심주의 '부동산 대책'

▲ 김계범 기자

지난해 여름, 엄마가 아팠다. 내가 엄마를 아프게 한 거 같아 죄책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 엄마 곁에서 간호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내 일상은 무너져갔지만 내 삶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고 엄마의 병환이 회복되면서 차츰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온전히 일상을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아프기 전후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명예와 돈 등 사회적 성공보다 행복과 건강, 일상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정의, 자유 등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을 자주 입에 담던 예전과 다르게 구체적인 언어로 내 생각과 삶을 표현하려 애쓰게 됐다. 각박하고 치열하게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삶보다는 내 속도에 맞춰 열심히 내 삶을 가꾸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일상이 찾아오면서 내 삶의 미래를 진지하게 다시 고민했다. 평소 책을 읽어도 지식이 내면화하지 못하고 머릿속을 떠돌기만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복잡한 도시의 삶보다는 땀 흘리며 일하고 책을 읽으면서 살기로 했다. 언론인의 꿈을 뒤로하고 농사를 짓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내 계획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언제는 시를 쓰겠다더니 이제는 농사냐”며 “언제 철들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뿐 ‘시골’이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왜 ‘시골’로 가냐”며 걱정했다.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실패나 현실 도피가 아니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왜 ‘서울’애가 ‘시골’ 가서 농사를 짓느냐는 식의 말이 많았다. 한 사람도 나의 ‘시골’행을 찬성하는 이는 없었다. ‘현실을 너무 모른다, 시골 가서 밥은 제대로 먹고 살겠냐’는 게 대부분 사람들 ‘충고’였다.

▲ 2019년 우리나라 농가의 20-39세 청년은 전체 농가 인구의 10%도 되지 않는 20만에 불과하다. 지방에 더 많은 청년을 불러들이려면 서울과는 다른 매력이 필요하다. ⓒ Pixabay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를 쓴 전우익 선생이 이야기한 경독(耕讀)의 삶을 실천하고 싶었다. 일단 주변에서 반대가 너무 심해 조용히 나 혼자 모든 것을 알아봐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농사를 지으려고 알아보는 과정에서 본 ‘귀농•귀촌’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는데 ‘귀촌’(歸村)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농사는 수도권에서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꼭 시골로 가야 하는 것인가? 서울이 아니면 다 시골이란 말인가? 서울 사는 많은 이들의 생각에는 ‘서울 빼고는 다 시골’이다.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는 서울 중심주의라도 있는 걸까? 우리 속담에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는 말도 있다. 2004년에는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서울은 관습상 수도’라고 말했다. 서울이 아니면 수도가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인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자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지금은 내 이름이 죄인 명부에 적혀 있으므로 너희에게 시골집에 숨어 지내라고 하였다. 그러나 미래에는 서울에서 가까운 십 리 이내에 살라. 가세가 쇠락하여 도성 안에 들어갈 형편이 못 되면 근교에 터를 잡고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를 가꾸며 생계를 유지해라. 그리하여 재산이 좀 모이면 서울 한복판으로 옮겨라.’ 

다산이 유배지에서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도 자식들에게는 ‘서울 십 리 이내’를 강조한 것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산 신도시’가 생긴 것은 다산의 출생지가 남양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식들에게 당부한 속마음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을 떠나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게 많은 이들의 생각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양주에는 미처 수도권 생활을 포기하지 못해 사는 사람도 있지만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남양주라는 공간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새 지방은 소멸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고, 고령화를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지방을 더 많은 청년이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인식의 변화는 언어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에서 ‘촌’이라는 말은 서울과 대척점에 있는 공간으로 부정적 뉘앙스를 많이 담고 있는 듯하다. 시골(촌)이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나도 지방의 할머니 집에 갈 때는 ‘시골 간다’고 이야기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안 쓴다.

2019년 우리나라 농가 인구는 전체의 4.3%인 224만. 그 중 20-39세 청년은 20만에 불과하다.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은 청년들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더 많은 청년을 농촌으로 오게 하고 싶다면 농촌을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에게 지역에 사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방을 서울처럼 만들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서울과 다른 특색 있는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서울처럼 지방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개발해서는 청년들이 지방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무일푼의 청년들을 위해서는 더 현실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계절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여름이 왔다. 현실적인 여건과 언론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단 농사 짓는 일은 후일로 미뤄두었다. 지역 소멸을 막고 청년을 농촌으로 불러들이려면 먼저 지방을 시골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멈춰야 한다. ‘시골’에 들씌워진 이미지를 걷어내고 많은 청년을 불러들여 동지가 생기면 그들은 쉽게 지방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청년이 지방에 살게 되면 지방은 지방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특색을 갖추게 될 것이고, 국토의 균형 발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이랍시고 잇달아 내놓은 것들이 온통 서울에 집중돼 있다. ‘시골’을 비하하는 마음부터 없애고 시골을 살 만하게 만드는 대책이 수반되지 않으면, ‘서울중심주의’에서 비롯되는 부동산 문제는 영원히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지역∙농업이슈]와 [농촌불패]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의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편집 : 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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