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가작 수상작
'비상구’는 화재나 지진 따위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때 급히 대피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한 출입구라는 뜻으로, ‘살아남기 위한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거기에 ‘마지막’이라는 말이 더해져 제목의 묵직함이 배로 와 닿았다. 이 책은 ‘기자·PD 사관학교’로 널리 알려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원장과 대학원생들이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뒤 <단비뉴스>에 보도한 기사들을 엮은 것이다. 당장의 편리함을 앞세워 무심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말해준다. 지역 주민과 각 분야 전문가 등의 인터뷰와 사진, 도표가 다양하게 실려 있어 생생했고 이해하기도 쉬웠다. 두툼한 책의 분량만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에 마음을 다잡고 책장을 넘겼다.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주제에 맞게 이 책은 화력발전 등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위험을 짚어주고, 원자력발전이 일으킬 수 있는 재난을 경고한다. 이어 그런 위험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시해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환경보호, 자연보호, 생태계보전 등 지구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나 나름대로는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탄소발생을 줄이려면 에너지를 덜 써야 한다는 생각에 밥도 이틀에 한 번씩 하고, 에어컨은 8월 1일부터, 난방은 12월 1일부터 등으로 날을 정해놓고 지키기도 했다. 처음에는 식구들이 마땅치 않아 했지만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책 속에는 아찔한 이야기가 많았다. 먼저 울산·경주·부산 일대가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대’라는 사실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반경 30킬로미터 내에 수백만 명이 살고 있는 고리원전단지. 2016년 9월 경주에서 발생한 강진 이후, 대규모 원전재난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탈핵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을 마주하니 왠지 미안했다.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살짝 떨렸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무심하게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원전에 관해 느꼈던 막연한 불안이 후쿠시마 재난을 통해 확신으로 바뀌었으면서도, 정작 국내 원전은 안전하리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원전이 있는 게 아니니 괜찮다는 안이함이었을 수도 있다. 원전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며, 청정에너지로서 안전하다는 말을 의심 없이 믿었던 것도 후회스러웠다.
10만 년, 그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세월동안 밀봉해야 할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그 전에 지진이나 사람의 실수로 재난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 대다수가 사실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지나치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해진다. 역대 정부는 원전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필요하며 이를 포기하면 당장 전기요금이 비싸진다는 것을 내세워 우리들의 입을 막았다. 더 늦기 전에 원전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 가는 정책을 가속화해야 한다.
희망을 주는 사실은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탈핵을 추진하고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면서도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는 휘발유·경유 차량의 퇴출을 추진하고, 자동차 도로를 늘리는 대신 자전거 타기 편리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면서 건강을 챙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으면서.
그래도 반가운 것은 우리 주변에 에너지 전환을 위해 힘을 모으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내가 사는 경기도 안산시에서 14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참여로 ‘안산시민 햇빛조합’이 결성돼 시민 주도의 태양광발전소를 늘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책에 자세히 나온다. 실제로 공공시설에 설치된 태양광패널과 대부도·탄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를 보면서 나는 우리 지역이 재생에너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탄도의 갯벌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들은 인근 300여 가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썰물과 밀물, 일몰 풍경과 함께 관광객들에게 손꼽히는 볼거리가 되고 있기도 하다.
따스한 봄볕을 느끼며 길을 걷다가, 보도블록 사이로 피어난 민들레꽃을 보고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돌봐주는 손길이 없어도 때가 되면 자신의 몫을 해내는 민들레처럼,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내 몫의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 비상구’에서 얻은 것들을 가슴에 품고.
편집 : 방재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