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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권하는 사회’의 ‘육식 욕망’

기사승인 2020.07.11  20: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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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비평] 유튜브 ‘육식맨’

채식 권유가 일종의 도덕론처럼 확산하고 있다. 영국은 2019년을 ‘채식의 해’로 선언했고, 한국에서는 채식 인구가 10년 동안 10배로 늘어 150만에 이르렀다. 빅데이터 전문 매체 인사이트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채식주의자의 52.9%는 윤리적 이유로, 36.2%는 환경보호를 위해 채식을 선택한다. 채식은 ‘옳은’ 것, 육식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었다. 코로나 범유행으로 환경 의식이 높아지면서 채식에 관한 관심은 더 늘었다.

   
▲ 채식주의가 확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육식을 좋아하는 수용자를 겨냥한 콘텐츠 <육식맨>이 유튜브에 등장했다. © <육식맨>

<육식맨>은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등장해 1년 만에 구독자 39만, 누적 조회수 약 4,000만을 기록한 유튜브 콘텐츠다. <육식맨>이 소구점으로 잡은 것은 일차원적 욕망인 ‘맛’이다. 그중에서도 ‘고기 맛’이다. “오늘 준비한 고기부터 보시죠”라는 들어가는 말은 뜯고 자르고 씹는 환상적인 과정을 위한 첫 선언이다. 일차적 욕망을 자극하는 첫 마디에 콘텐츠 소비자들은 훅 빨려 들어간다. 여기에는 도덕심도 없고 환경 의식도 없다. 오로지 ‘맛’만 있다. 그것은 강력하게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채식주의가 도덕론으로 퍼질 때, <육식맨>은 가장 빨리 우리의 욕망을 파고들었다.

왜 <육식맨>이 떴나? 

프랑스 왕 앙리4세는 “백성들이 일요일이면 닭고기 요리를 먹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먹을 것이 풍족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육식을 즐길 수 있는 현대인에게는 그렇게 끌리지 않는 말이지만, 당대 백성들에게 왕의 말은 세계 최고의 삶을 약속하는 선언이었다. ‘선량 왕’이라고 칭송받은 앙리 4세는 그런 호응을 바탕으로 프랑스 절대왕정 체제의 초석을 놓았다.

   
▲ 미국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모든 냄비에 닭고기를’이라는 선거 구호를 내걸었다. © 구글

육식이 일반 대중에게 어떤 의미였기에 그렇게 큰 호응을 얻었을까? 육식이 대중에게 일상적으로 충족된 것은 최근이다. 왕과 귀족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을 제외한 대중이 육식을 늘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서양에서도 100년 남짓하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브리야 사바랭이 <미식 예찬>에서 한 말이다. 어떤 계층은 육류와 어류로 요리한 정찬을 즐길 수 있고, 나머지 대중은 그렇지 못한 19세기 초 사회상을 표현한 것이다. 미국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모든 냄비에 닭고기, 모든 차고에는 차 한 대(A chicken in every pot, A car in every garage)’를 대선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대중이 치킨을 자주 먹을 만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육식은 서민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국에서는 서양보다 이런 결핍이 오래 지속됐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에게 육류 섭취가 일상으로 다가간 때는 1980년대 이후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1970년대 5kg대를 유지하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는 십년 주기로 10kg씩 급격하게 늘었다. 오랫동안 우리에게 육류 결핍이 지속되다가 충족될 만한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자 육류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서양에서 100년 세월을 들여서 육식 결핍을 충족했다면, 우리는 그 절반도 안 되는 40년 만에 그것을 이뤘다. 한국인에게는 아직도 육류 섭취의 욕망이 강하게 남아있다.

   
▲ “오늘 준비한 고기부터 보시죠”라는 말과 함께 제시하는 고기는 육식 욕망을 시각적으로 자극한다. © <육식맨>

<육식맨>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는 육식에 관한 한국인의 욕망을 포착했다. “오늘 준비한 고기부터 보시죠”라는 들어가는 말은 그런 욕망을 한껏 부추긴다. 소비자들은 어설픈 지식과 배경 나열이 아니라 실제 고기에서 강한 식욕을 느낀다. 프리젠터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적확한 오프닝을 통해, 또 ‘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는 포맷으로 이런 욕망을 충족시켜 주겠다고 유혹한다. 이 콘텐츠는 고기가 아니면 전부 빠르게 넘어가거나 생략하는 구성 방식을 취한다. 채소는 고기 맛을 끌어내는 부재료에 불과하다. ‘가장 맛있는 것은 고기뿐’이라는 생각은 한국인 다수에게 퍼져있다.

이런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콘텐츠는 <육식맨>만이 아니다. 이미 많은 유튜버는 육식이라는 욕망을 목표로 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직접 바비큐를 하면서 서양의 육류 문화를 소개하는 <문츠>,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산적처럼 먹는 <산적TV 밥굽남>, 전국 모든 고깃집을 소개하는 <정육왕>, 육식 생활 가이드를 한다면서 국내 최초 미트테이너(meat+entertainer)를 표방하는 <고기리 돈스파이크> 등 많은 콘텐츠가 다양한 컨셉으로 한국인의 육류 섭취 욕망에 편승한다. 그리고 성공하고 있다. 구독자 수보다 떨어지는 조회 수를 가진 여타 콘텐츠와 달리, 육식 콘텐츠의 영상 조회 수는 40만에서 100만에 이르는 구독자 수를 오르내린다.

도덕론으로서 채식주의

채식주의는 주로 도덕 관념에 기반해 성장했다. 채식주의를 떠받치는 도덕 관념에는 크게 두 가지 맥락이 있다. 첫 번째는 환경 보전이다. 패트릭 웨스트호프에 따르면 2007년  전 세계에서 생산된 옥수수 7억9200만 톤 중 2억7400만 톤은 인간이 소비했고, 나머지 4억9600만 톤은 동물사료로 쓰였다. 다국적 기업들이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을 헐고 그곳에 대규모 농장을 만들거나 소를 방목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환경론자가 보기에 육식은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블랙홀이다.

   
▲ 렘브란트는 인간을 위해 가죽이 발가벗겨지고 내장을 들어낸 도축된 소의 모습을 그려 인간의 잔혹함과 부도덕성을 고발했다. 나무에 유채, 1655년. © 구글

두 번째는 동물 축산 문제다. 어떤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대량으로 키워 제멋대로 도축하는 외계의 어떤 공간이 있다고 하자. 그곳을 마주한 우리의 첫 인상은 어떨까?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섭취하는 가축동물들도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돼지는 3살 아기와 정신연령이 같고, 소는 다른 소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닭은 다른 닭에게 위험을 알리는 울음소리만 30가지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을 거세하고 코와 귀에 인식표를 달아 대량사육한 뒤 도축한다. 동물권을 지지하는 운동가들은 이런 대규모 축산을 지속하는 육식이 부당한 행동이라고 본다.

육식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도덕론이 틀렸다거나 일방적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다.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는 육식을 하는 문화를 육식주의라고 명명했다. 육식주의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마다 먹을 수 있는 육류와 먹을 수 없는 육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힌두 문화권에서는 소를 먹을 수 없지만 돼지를 먹고, 이슬람권에서는 소를 먹지만 돼지를 먹지 않는다. 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개와 원숭이까지 먹지만, 유럽에서는 개를 먹지 않는다. 이처럼 문화권마다 선호하고 혐오하는 종류가 다르다.

조이는 이를 바탕으로 육식주의가 ‘보이지 않는 신념체계’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특정 육류를 먹는 것은 인간이 그 고기를 ‘음식’이라고 인식할 뿐 ‘동물’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식주의는 육류와 동물을 연결하는 감성적 인식이 단절돼 발생한 결과다. 서양에서 개를 먹지 않고, 한국과 일본에서는 원숭이를 먹지 않으며, 힌두교 문화권에서 소를 먹지 않는 것은 그 고기를 보고 동물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이는 고기를 ‘동물’로 인식하게 되면 육식주의는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고 말한다. 단백질 대체 용품이 전 세계에 출시되는 이때, 채식주의 움직임은 아무런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채식주의를 떠받치는 도덕론의 두 맥락은 내용이 다르지만,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같다.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억제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채식주의를 당위로 여길 만큼 도덕적 욕구가 강하지 않다. 도덕적 욕구가 있어도 육식이 주는 만족감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인간의 경제적 선택이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고, 즉흥적인 야성적 충동에 기반한다고 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채식주의는 일차원적이고 즉흥적이며 야성적 충동에 기반한 육식주의를 넘어설 수 없는 게 아닐까?

채식주의의 욕망

채식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욕망은 있다. 지구와 동물을 살린다는 거창한 도덕 관념만이 채식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욕망에 충실해 채식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하나는 이미 있던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만들어질 욕망이다. 기존 욕망은 건강이다. 인사이트코리아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은 채식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로 건강(63.1%)을 꼽았다. 다이어트(26.3%)와 체질(9.7%) 개선이라는 이유가 뒤따른다. 과도한 육류 섭취로 건강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맛’을 찾아 육류를 섭취하는 것도 욕망이지만, 건강한 신체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도 있다.

새롭게 추가될 욕망은 ‘인정욕’이다. <인정투쟁>을 쓴 악셀 호네트는 가치 부여라는 인정 형태가 공동의 궁핍과 결핍을 통해 일거에 산출된다고 말한다. 공동의 궁핍을 극복하기 위한 연대와 실천은 타인의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공동의 결핍이 이전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 구조를 갑작스럽게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런 가치 부여 과정에서 이전에 인정받지 못한 특성이나 행동이 가치로 인정된다.

   
▲ 악셀 호네트는 이론적 차원에서 공동의 궁핍이 가치 구조를 변화시킨다고 지적했고, 레베카 솔닛은 재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와 실천이 만든 실제적 가치 변화를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 오동욱

전쟁이나 재난의 현장은 대표적 사례다. 재난 현장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는 재난과 같은 공동의 궁핍이 가치구조를 변화시켰다는 증언이 생생하다. 가령,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 피해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결성한 봉제공 여성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가치가 발생했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아직 조직되기 전과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무렵, 멕시코가 아무 문제도 없고 모두가 평등한, 달콤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조직된 뒤에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죠. 특히 공장주들이 값싼 육체노동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일이 많다는 것을요.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고, 다시는 예전의 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코로나19 사태는 채식주의에 가치 부여를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의 근본 원인은 현재의 가치구조에서 인간이 행하는 전 방위적 환경파괴 때문이고, 대중도 그 전모에 관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에 환경재단이 발표한 ‘코로나19 사태 관련 긴급 국민의식조사 결과’에서는 과도한 생태계 파괴가 코로나 사태의 원인이라는 점에 절대다수(84%)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가 야기한 공동의 궁핍은 채식에 관한 가치 부여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채식주의가 인간의 육식 욕망을 압도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기존 채식주의 도덕론만으로는 힘들 것이다. 사람들의 실천적 참여가 필요하고, 실천은 인간의 일차원적 욕망을 건드려야 한다. 인간은 도덕보다 욕망에 약하다. 채식 도덕론에 더해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 건강에 관한 욕망 등을 함께 추동하는 채식주의 운동이 필요하다.


편집 : 민지희 기자

오동욱 PD odw020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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