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가작 수상작

▲ 김지효

너무 정치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탈정치화하는 영역이 있다. 젠더(성)와 환경이 대표적이다. 이 문제들은 제도·구조적 변화를 요하는 것은 물론, ‘지금 여기의 삶’을 새롭게 감각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관성을 벗어나 일상을 정치적으로 사고하는 일은 매우 번거롭기에, 오히려 탈정치화해 도덕의 차원으로 격하되는 경향이 있다. “차별하지 맙시다”나 “환경보호”와 같은 구호가 그렇다. 이런 말은 도처에 넘쳐나지만 ‘당연한’ 혹은 ‘지루한’ 규범으로 치부될 때가 많다.

문제는 또 있다. 기후문제는 전문지식과 여러 담론이 겹겹이 싸여 있어 이해하기 쉽지 않고, 설령 이해해보고자 마음을 먹어도 서로 반대되는 내용의 ‘지식’들이 넘쳐나 무엇을 신뢰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들로 인해 ‘지금이 지구를 살릴 마지막 기회’라는 학자들의 말은 한국에서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인과 언론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 한국은 석탄 등 화석연료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국제환경연구기관과 언론에 의해 ‘세계 4대 기후악당’으로 지목됐다.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려진 2017년 12월 30일 뿌연 대기에 휩싸인 서울 마포구 일대 모습. © 남지현

상반된 주장 속에서 혼란스러울 때

여기에 그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쓴 <마지막 비상구>다. 이 책은 사회유지에 필수적인 에너지가 어떻게 오히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게 되었는지 파헤치고 위기에서 벗어날 대안을 모색한다. 1부에서는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의 실상을 고발하고 이로 인해 일상이 무너진 현장을 그린다. 2부에서는 우리나라가 원전과 화석연료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 배경을 분석한다. 3부에서는 기후위기와 한국의 에너지구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조명하고 다양한 해외 사례를 통해 대안을 모색한다. 현실을 보여주고 문제의 배경을 파헤치며 대안을 제시하는 목차 순서는 이들이 가진 고민의 두께를 드러낸다.

특히 내가 <마지막 비상구>가 훌륭하다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 책이 그 자체로 지식이 생성되는 과정을 탐구하고 상식의 전제를 드러내는 지식정치학이라는 것이다. 국내 최고 학부라고 일컬어지는 곳에 원자핵공학부가 있다. 이곳은 원자력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체계적으로 교육해 매년 관련 전문가를 수십 명씩 배출해낸다. 이렇게 길러진 ‘지식인’들은 준엄한 목소리로 ‘무지한 대중’을 꾸짖으며 원전의 위험성은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복잡한 수치와 전문용어를 사용해 원자력의 장점을 설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자력의 위험성은 이미 우리가 체르노빌, 후쿠시마를 통해 두 차례나 ‘경험한 진실’이며,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정반대의 분석을 제공해왔다. 그야말로 지식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학생 기자들이 택한 방법은 바로 지식의 전제를 파헤쳐 담론이 어떤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언론사는 물론 학보사에까지 돈을 보내 원전 친화적 기사를 쓰게 했다. 교과서에 원전 홍보 내용을 넣도록 압박했다. 원가 이하 전기료의 최고 수혜자는 굴지의 대기업들이었다. 학연으로 연결된 원전 전문가들은 업계를 독점하고 주식을 나눠 가졌다. <마지막 비상구>는 정·관·학·언론과 원자력계가 유착되어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신뢰받는 상당수 ‘지식’이 자본을 매개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드러낸다.

▲ 2012~2014년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제철 등 20개 대기업은 한전으로부터 원가에 미달하는 요금으로 할인을 받았다. 그 총액이 3조7191억여원에 달한다. 특히 2014년의 한전 원가손실액 98.9%가 20대 기업의 원가할인액으로부터 발생했다. ⓒ 박주민 의원실(더불어민주당), 박희영

‘자본을 매개로 만들어진 진실’을 파헤치다 

원자력 ‘전문가’들의 허상을 밝히는 일은 매우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겹겹이 싸여 있는 거짓의 꺼풀을 벗기기 위해 문헌조사와 인터뷰, 현장탐방 등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정보의 신뢰성이 관건이었기에 공신력 있는 자료를 사용하고 교차검증 했으며, 인터뷰이(취재원)는 되도록 실명으로 표기했다. 책을 읽으며 이들의 노고가 느껴져 몇 번이나 감동했다.

이 책이 훌륭한 두 번째 이유는 손쉬운 이분법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전은 ‘악’이고 신재생에너지는 ‘선’이라는 식의 구도를 택하지 않고,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보았다. 원자력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풍력발전에 대해서도 지역주민의 갈등을 드러내고, 이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 구체적 해법을 논의했다.

거짓이 힘을 얻고 있는 착잡한 현실에도 희망은 있다. 2016년 이래로 줄곧 유지되었던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2017년에 약 4주간의 숙의과정을 거친 후 다시 질문했을 때 바뀐 것이다(256p).

어떤 문제는 너무 정치적이라 탈정치화한다. 이 말은 곧 정확한 인식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탐구의 대리인으로서 우리가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질문에 밑줄을 그어준다. ‘마지막 비상구’가 남았으니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논의의 장에 우리를 초대한다. 좋은 글은 좋은 질문을 담고 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와 연결된 생명들을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동료 시민과 함께 읽고 싶다.

(*원 제목: 진실을 둘러싼 지식의 정치학, <마지막 비상구>)


편집 :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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