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사실의 실종, 붕괴하는 저널리즘

기사승인 2020.07.08  17:45:36

공유
default_news_ad1

- [김지영 칼럼]

   
▲ 김지영 교수

저널리즘은 위기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지금 기존 저널리즘은 붕괴하고 있다고 해야 옳다. 저널리즘을 유지해온 규율 중 그 중심축은 ‘사실(fact)의 확인’이지만 요즘의 보도기사들 중에는 사실인지 아닌지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기자들은 취재를 통해 정확한 사실을 발굴하고 이를 보도문장에 담는다. 이때 기자는 그 내용이 사실임을 담보할 수 있는 형식으로 보도물을 작성 또는 제작해야 한다.

첫째, 어떤 사실에 자신의 의견을 개입시켜서는 안된다. 이는 ‘사실기사’ 뿐 아니라, 사실에 의견을 붙이는 ‘의견기사’(사설·칼럼 등)도 마찬가지다. 의견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지만 객관적인 사실 자체는 의견을 섞어 왜곡해선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객관보도의 근거다. 둘째, 사실을 취재한 출처 즉 취재원을 (가능한 실명으로) 밝혀야 한다. 

이런 점들에 대해 저널리즘 지침의 원전인 신문윤리강령에서는 “기자는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여 보도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또한 기자는 편견이나 이기적 동기로 보도기사를 고르거나 작성해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보도준칙 ①보도기사의 사실과 의견 구분) 또 “기자는 취재원이나 출처를 가능한 밝혀야 한다. 다만 공익을 위해 (취재원 보호 등) 부득이 한 경우나 보도가치가 우선하는 경우 취재원이 요청하는 익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신문윤리실천요강 제5조 취재원의 명시와 보호 ①취재원의 명시와 익명조건)

그러나 현실은, 사실이 부정확하거나,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거나, 취재원을 명시하지 않는 보도기사가 매일같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매일같이 목도하고 있는 ‘사실’의 실종, 그리고 저널리즘의 붕괴현상은 갈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 지난 6월 23일 보안검색요원이 ‘알바’로 들어와 2년 경력 인정 받고 직고용돼 연봉 5000만원을 받게 됐다는 오픈채팅방 익명 허위주장을 받아쓴 보도가 포털사이트에 쏟아졌다. ⓒ 네이버

다음과 같은 보도문장을 보자.

『주중 북한대사관이 풍계리 핵시설 파괴를 취재하러 오는 외부 기자들에게 방북취재 비자 발급비용으로 개인당 1만불씩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사를 보면 취재원이 없다. 그러므로 기자가 이같은 기사를 누구에게 취재했는지, 소식을‘전했다’는 취재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고 믿을 수도 없다. 막연히 ‘~~전해졌다’고 했기 때문에 ‘카더라’식의 떠도는 소문이나 다름없다. 

남북 관계의 활성화와 함께 관련 보도도 넘치던 2018년 5월, 지상파 A방송과 종편 B방송, C방송이 보도한 내용이다. 풍계리 시설파괴는 북한측으로서는 비핵화 협상 길목에서 내놓은 상징적 행사여서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그런 만큼 위 보도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조사결과 이들 방송은 그 이틀전 종편 D방송사가 보도한 내용을 확인취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처음 보도를 했던 D방송 역시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추측에 따라 보도한 것이라고 방통심의위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위 기자들은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자기 의견(추측이나 편견·선입견)으로 기사를 작성했고 그러다보니 문장에는 취재원이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 쓰이는 표현 방식이 ‘피동형’ 종결어미다(우리말글에서 피동형은 취재원과 같은 행동주체가 없다).

‘전해졌다’ 뿐 아니라 ‘알려졌다’ ‘파악되고 있다’ ‘점쳐지고 있다’ 등 다양한 피동형 표현이 남용되고 있다. 누가 전하고, 알리고, 파악하며, 점을 친다는 건지 알 수 없고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믿을 수 없다.

필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기자들이 피동형 종결어미를 쓰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대개 △정확한 사실을 취재하지 않고 추측으로 기사를 쓸 때 △선입견이나 편견, 특정한 이념에 치우쳐 있을 때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이다.

다음은 전두환 주도의 신군부 세력이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이후 나온 한 일간지의 5월 20일자 사설 중 한 대목.

『이상을 요약컨대 정부의 5·17 조처는 심상찮은 북괴의 동태와 전국적으로 확대된 소요사태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되며, 나아가서 이를 계기로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부정부패와 사회불안을 다스리려고 결심하려고 관측된다.』

당시 모든 신문들은 이와 비슷한 논조와 피동형 표현의 사설을 내보냈다. 기자들은 폭압적인 군부세력의 정치적 목적과 주문에 따라 사실과 다른 기사를 작성할 때면 주로 (행동주체가 없는) 피동형 종결어미를 사용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글을 쓴 행동주체인 자신을 숨기고 ‘남들이 그러더라’는 식으로 불특정인에게 글의 책임을 떠넘기려 했던 것이다.

이같은 피동형 문체는 그 뒤 기자들이 사실 확인 없이 추측으로, 또는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나 특정 프레임에 치우쳐 기사를 쓸 때 이용되는 보도문장의 한가지 문체로 정착했다.

   
▲ 지난해 12월 31일 자 <한겨레> 6면 ‘고민정 대변인 불출마 ·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출마’ 기사. 전체 문장 13개 중 8개를 피동문으로 서술했다. 정보 출처는 ‘여러 명의 청와대 관계자들’이라는 익명 취재원이다. ⓒ 김은초

이처럼 기자가 추측으로 작성하거나, 자기 의견을 개입시켜 사실을 조작·왜곡하는 기사문체로는 피동형 외에 ‘익명 취재원 표기’가 있다. 기사문장에 취재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익명 취재원은 애당초 가공 인물일 수도 있고, 기자가 자기 입맛에 맞춰 취재원의 진술내용을 변형하기 쉽기 때문에 사실을 전달하는 데에 맞지 않다. 이 때문에 보도윤리 강령은 (성폭력 피해자나 공익신고자 등 취재원을 보호하거나,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보도해야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익명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보도 기사에서 관계자, 핵심 관계자, 또다른 관계자, 측근, A씨, B씨 등 익명은 넘쳐난다. 취재원을 익명으로 표현하는게 아예 관행으로 정착한 듯 하다.

다음은 어느 지역신문의 기사다. 다른 지역 출신 인사가 부시장으로 오는 것에 대해 거부하며 독자들을 상대로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의견기사도 아닌 사실기사를 통해) 사실과 달리 기자의 편견을 전하려다 보니 피동형과 익명 표현 남용으로 기사문장이 누더기처럼 돼버렸다. 

『행정안전부 ㅇㅇㅇ 윤리복무관의 청주부시장 임명이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지역 사회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다. (중략) 하지만, 경기도 이천 출신인 ㅇ윤리복무관이 충북 12개 기초자치단체의 맏형격인 청주시의 부시장으로 임명되는 게 부적합한 요인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중략) 이 때문에 비수도권 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향후 자연보전권역 내 규제완화를 철회시키기 위한 대규모 반대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상황에 따라서는 ‘머리띠’를 매고 정부와 수도권 자치단체를 압박해야 하는 청주부시장에 경기도 이천 출신 고위 공무원이 임명될 경우 미온적으로 대처할 우려가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략) 이 때문에 비수도권 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향후 자연보전권역 내 규제완화를 철회시키기 위한 대규모 반대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시의 한 고위 공무원은 (중략) “종합 행정기관인 충북도와 달리 청주시 등 기초단체 행정은 지역 실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지역 출신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도의 한 공무원도 (중략) “이런 상황에서 곽 윤리복무관의 청주부시장 임명 여부를 놓고 지역 경제계 등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피동형과 익명 남용’으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은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 징계를 내린 사례이지만 오늘날 이같은 정도의 기사는 매체 이용자들이 늘상 접하고 있다. 

피동형과 익명 표현 외에도 추측, 편견, 이해관계 등에 따른 의견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문장에는 명사형 종결어미 사용이 있다. 취재원도 나타내지 않고 ‘이는 잘못이라는 평가다’ ‘이는 바로 잡아야한다는 지적입니다’와 같은 표현을 쓰는 문장이다. 누가 평가하고 누가 지적한다는 것인지, 사실상 기자의 평가요 기자의 지적인 것이다. 

요즘 매체들이 즐겨 쓰고있는 ‘~~했다고 한다’와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다. 이 간접인용문 형태는 역시 취재원이 없는 ‘카더라’식 소문이나 다름없어 사실보도에서 절대로 금지해야할 표현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취재실화를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 표현과 관련한 장면이 나온다. 이 사건을 담당한 취재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특종 속보라며 들떠서 원고를 제출하고, 편집인인 벤저민 브래들리가 이를 읽어보는데 갑자기 표정이 싸늘해진다. 그리고는 ‘헌트가 빌려갔다고 한다’는 문장을 지적하며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물어본다. 취재원이 누구냐는 것이다. 두 기자가 말을 얼버무리자 벤은 크게 화를 내며 “지면 구석에 작게 실으라”고 지시한다. 사실 벤의 지적은 너무나 당연한 저널리즘의 상식이지만 오늘날 그처럼 엄하게 게이트 키핑을 하는 데스크들이 있는지 의문이다.

다음은 필자가 조사한 바, ‘~했다고 한다’는 종결어미를 유독 많이 사용하는 조선일보의 7월 4일자 1면 기사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수사 지휘 (중략) 검사장들이 3일 추 장관에게 해당 지휘를 재고(再考)해달라고 요청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략) 19명이 참석한 두 차례 검사장 회의에서는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위법·부당하다"는 의견이 쏟아졌다고 한다. 수도권 검사장 회의에서는 (중략) 만장일치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 검사장 회의에서는 (중략)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사장들은 (중략)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취재원도 나타내지 않고 사실과 기자의 의견을 구분하지 않는 뉴스들은 ‘가짜뉴스’로 봐야할까? 지난 2017년 2월 14일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세미나를 열고 가짜뉴스 개념에 대해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 개념을 적용하자면 피동형과 익명, 명사형 종결어미 등을 남용하는 기사 중 왜곡을 넘어 조작의 수준에 해당하는 가짜 뉴스들이 있다. 하지만 피동형과 익명 등의 남용 기사들은 대부분 사실에 기자의 의견을 개입한 ‘왜곡’의 수준에 해당한다. 문제는 가짜뉴스가 아닌 ‘비진짜뉴스’라 할지라도 가짜뉴스의 악성인자들을 고스란히 배태하고 있고, 이같은 비진짜뉴스들이 매일 쏟아져나오는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이처럼 상한 음식과 같은 비진짜뉴스를 일상적으로 섭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졸저 ‘피동형 기자들’(효형출판사, 2011년)을 펴낸 이후 8년쯤 되는 기간을 거치면서 보도문장에서 피동형과 익명 남용은 급증하고 ‘사실’은 갈수록 왜곡되고 실종돼왔다. 그 배경에는 시대상황과 매체환경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 <피동형 기자들> 겉그림. ⓒ 효형출판

멀리 거슬러 올라가보자. 우리 언론매체들은 1979년 12·12 사태 이후 계엄사령부 언론검열 기간과 5공화국의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의 보도지침 시행 기간을 거치면서 정치권력이라는 외부의 탄압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기 쉬운 피동형과 익명 표현을 남발했다. 

그러다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 이후 2019년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언론매체에 대한 외부 권력의 중심이 정치에서 경제로 전환한다. 군부 정치권력의 새장에서 자유롭게 날아간 전통 매체들은 그러나 곧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매체들과의 무한경쟁, 그리고 뒤를 이은 디지털매체의 출현 속에서 고난의 행군을 이어왔다. 

기존의 뉴스제작 진입장벽 자체가 무너지고 뉴스의 전파와 유통구조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인터넷 매체가 8천개쯤 되고 1인 미디어들은 수없이 많다. 유튜브, 페이스 북 등 디지털 플랫폼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정착했다. 유튜브 등 디지털 매체는 사용자들의 취향 맞춤형이다. 객관적 사실이 중요치 않다. 사용자들은 자기 신념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심해지고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여기에 부응하면서 정보의 편식현상이 고착화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도 더 늘어간다. 이 때문에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라고도 한다. (옥스포드 사전)

게다가 클릭수가 곧 돈인 세상이 됐다. 신생 미디어 뿐 아니라 신문과 방송같은 전통매체들도 클릭 수를 높이려고 앞다투어 선정적인 내용과 제목을 올리기에 급급한다. 가짜뉴스도 여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과거에는 매체들이 정치권력이 쳐놓은 새장 속에 강제로 갇혀 지냈지만 새장을 벗어난 이후에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 경제권력의 품 안으로 들어와 종속되고 있다. 디지털 자본주의의 표본이 미디어 생태계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급격하게 변하고 확장한 미디어 생태계에서 종전의 패러다임과 윤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속성이 약하고 훈련도 돼있지 않은 뉴미디어들은 물론, 전통적인 매체들도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면서 ‘사실 확인’이라는 저널리즘 원칙을 등한시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가짜뉴스는 어느덧 증오뉴스나 혐오뉴스라는 변종을 낳아 지금 세계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미디어 업계 자체의 팩트 체킹 시스템의 강화는 갈수록 중요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또 ‘표현의 자유’라는 성역 보전 때문에, 법과 제도로 디지털 정보를 규제하는 데에 동조하지 않던 국제사회는 점차 ‘증오뉴스와 혐오뉴스는 표현의 자유 영역 밖’이라는 점에 공감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기본적이고도 장기적인 대책으로 미디어리터러시를 과거의 문맹교육처럼 보편적인 사회적 공교육으로 시행하자는 움직임이 국제사회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 가령 프랑스는 올해부터 관련 정부 예산을 두배로 늘리고 초등학생부터 미디어 리터러시 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같은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전통적 저널리즘 윤리에 대한 교육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실 확인과 이를 위한 취재원 명기, 즉 피동형과 익명 표현의 추방이 다시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문장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과 진실에 관한 문제이며 저널리즘의 본령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관훈클럽 기획단행본 ‘위기의 언론, 새길을 찾는다’(2019)에 실었던 내용을 보완한 것입니다.

편집 : 김계범 기자

김지영 교수 haewoodang@naver.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