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국가’ ① 수도권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갈등과 대립 너머(Beyond)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국가’이다. ‘뉴노멀’을 요구하는 '위드코로나' 시대, 국가도 새로운 비전과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수도권, 차별, 국민' 세 키워드로 국가의 정체성과 역할을 돌아본다. (편집자)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모두가 그랬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서울로, 서울로 집중하다 보니 서울은 사람으로 넘쳐나고 이제는 서울 근처까지 비대해졌다. 2020년에는 서울, 인천, 경기도를 포함하는 수도권 인구가 수도권 외 지역을 합친 인구수를 넘어섰다. 지난 6월 통계청은 올해 수도권 인구수를 2596만 명, 비수도권 인구를 2582만 명으로 추산했다. 우리나라 면적의 약 12%밖에 안 되는 수도권이 50.1% 인구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수도권만 있다. 사람이 많으니 자연히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생활 인프라의 중심이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쏠리면 문제가 생긴다. 수도권이 부동산 문제, 교통난, 빈부격차, 환경문제 같은 도시 문제의 진앙지가 된 건 이미 오래다.

▲ 3월 17일 KBS에서 보도한 김포도시철도 출근길 모습.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730만 명이 출근을 위해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쏟아져 나온다. ⓒ KBS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내가 사는 안양이, 서울 밖 수도권이 살기에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서울처럼 땅값이 비싸거나 사람들로 북적거리지 않고, 지방처럼 인프라가 부족하지도 않았다. 영화관, 백화점, 공설운동장 등 웬만한 문화시설은 집 근처에 있었다. 이런 편리함이 당연한 게 아니라 부모님의 피땀과 눈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수능이 가까워지면서였다. 왜 대한민국 부모들이 ‘대학은 꼭 인서울 해야 한다’, ‘적어도 수도권까지는 가야 한다’고 압박했는지 알게 됐다.

막연하게 배운 피라미드식 대학 서열은 사실 삼각형이 아니라 원이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동심원의 세계. 똑같이 집에서 먼 대학을 가더라도 서울이면 축하를 받으며 자취방을 구하지만, 지역 대학이면 부모님의 한숨과 생활비 걱정에 시달리겠지. 대학이 직장을 결정하고, 직장이 주거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입시 걱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내가 사랑한 안양의, 수도권 생활을 계속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공포는 컸다.

이등분 된 대한민국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면서 수도권 중심의 사고방식은 깨졌다. 졸업 후, 서울 취직은 바늘구멍이었다. 수도권은 원래 소비도시들이라 기업 일자리가 적었다. 취업 준비가 길어지면서 지역 출신 동기들이 부러워졌다. 광주 출신이면 광주 방송사에 들어가기 더 쉽지 않을까? 부산 방송사는 서울보다는 경쟁률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지역 출신 동기들과 대화를 나누며 내 생각이 편견이란 걸 깨달았다. 부산 지역방송 프로그램들을 모니터링할 때 한 부산 출신 동기는 ‘희망이 없다’는 신랄한 평가를 서슴지 않았다.

“A 방송사의 B 프로그램은 아이디어는 좋은데 출연자가 못 살렸어.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부산에 인재가 없긴 해. 아니, 키우면 다 서울로 가버리는 거지.”

“교수님, 왜 지역에서 드라마나 예능은 안 만드나요? 예산이 없어서요? 와 희망이 없다.”

그 ‘삐딱’한 평가엔 자신이 나고 자란 부산에 관한 애정과 자신이 사랑하는 부산을 담아내지 못하는 지역 언론사를 향한 애증이 배어 나왔다.

부러움은 동경으로 바뀌었다. 방학이면 본가에 돌아가는 동기들은 자기 동네에 놀러 오라 말했다. 이들에게 지역은 고향이었다. 오기만 하면 여행 코스 안내는 책임진다 했다. 서산에 사는 후배는 바다를 꼭 봐야 한다고 동네 근처 항구에 데려가서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언니가 산을 싫어해도 여기는 가야 한다며 데려간 부석사와 그 근처의 한 상 가득한 산채정식 집까지. 갈 곳이 아직 더 있는데 벌써 가냐고 붙잡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작 그 후배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땐 밥만 사 먹고 집안에 들어와 수다를 떨었다. 그때 마신 술은 남대문시장에서 샀다. 안양이 살기 나쁜 도시였다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베드타운(Bed Town)이긴 했지만, 편의시설은 충분했다. 계획도시라 공원도 잘 꾸몄고 길도 널찍널찍하게 뚫려 있으며, 치안과 교통편도 좋았다. 집 가까이 지하철역도 있고, 버스는 어딜 가든 적어도 10분에 한 대는 왔다. 안양은 정말, 살기에 편리한 도시였다.

수도권에는 서열이 있다

수도권, 아니 안양 생활의 안락함이 가진 한계를 안 건 한참 뒤였다. 안양에서 차로 40분 떨어진 화성시로 이사 오면서 서울에서 멀어지면 편리함도 멀어진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집 근처에 대형마트는 하나, 영화관은 이사 온 지 4년 만에 하나 생겼고, 번화가는 마트 뒤 한 블록의 맛집 거리가 전부다. 나는 모든 약속을 서울에서 잡는다. 약속이 있는 날은 화성행 버스가 일찍 끊겨 안양에 살 때보다 두 시간은 일찍 헤어져야 한다. 서울과 얼마나 가깝냐가 도시의 가치를 정하는 수도권의 위계질서에서, 강남은 성골, 서울 외곽은 진골이다. 서울까지 30분 이내인 안양, 과천, 고양시 등은 6두품 정도일까? 그렇다면 경기도라도 서울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리는 화성에 사는 나는 3두품이다.

▲ 일명 ‘빨간 버스’라 불리는 직행 좌석버스. 수도권 외곽과 서울 사이 장시간‧장거리 노선을 급행으로 이어주는 광역버스다. 수도권의 정체성은 서울까지 거리이고, 수도권 서열은 삼각형이 아니라 원으로 규정된다. ⓒ KBS

지하철이나 광역버스로 연결되는 충북권까지를 넓게 ‘서울제국’이라 보면 연결성이 흐린, 수도권보다 더 먼 지역은 차라리 외국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생활권을 구축하고 있다. 서울과 단절돼서 오는 차별과 불이익도 있지만, 그래서 얻는 독립성과 고유성도 있다. 수도권 사람들은 잠만 집에서 잘 뿐, 밥벌이와 문화와 소비가 서울에서 이뤄진다.

2015년 기준, 서울로 통근하는 경기‧인천 주민은 하루 147만 명. 2008년부터 10년 동안, 돈이 없어서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주한 주민도 130만 명에 이른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편도 한 시간 이상, 사람이 미어터지는 지옥철과 서부간선도로에서 시달리면서 서울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건 자연스럽다. 성공해서, 돈 벌어서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서울에서 가까워야 한다는 게 중요한 가치인 이 동네에서 어떻게 ‘고향’이라는 자긍심을,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대한민국 회색지대, 수도권

나는 여전히 안양을 사랑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즐거운 추억은 모두 안양에서 쌓았다. 안양에 사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갑고, 온갖 아는 곳들을 대며 여전한지 확인한다. 하지만 안양의 장점이 뭐냐는 질문에는 교통이 편하고, 학군이 좋고, 문화 인프라가 잘 돼 있다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을 때면, 내가 사랑하는 게 안양인지, 안양의 편리함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걱정한다. 지하철 노선 연장 차원을 넘어서, 3기 신도시를 짓고 신도시를 잇는 광역전철이 깔리면서 수도권이 확장되는 것을. 더 많은 지역이 ‘서울제국’에 빨려드는 것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누구나 억울함과 서러움이 있다. 서울시민은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서울에 머물기 위해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를 감수한다. 지역 주민들은 ‘좋은’ 학교, 대기업 직장에 각종 문화 인프라까지 기회의 차별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낀 회색지대인 수도권, 경기도의 아픔은 가려져 있다. 수도권의 정체성은 곧 서울까지 거리다. 서울인 듯 아닌 듯한 수도권의 문화는 내 것인 듯 아닌 듯한 ‘나’를 만든다. 두 발은 수도권에 있어도 눈·코·입 모두가 서울을 향하고 있는 동안, 서울로 내딛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고 부끄러워한다. 내 뿌리가 오롯이 서있지 못하다는 것은 그래서 무섭다. 자기 몸을 사랑하지 못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한 페미니스트의 말처럼, 내 지역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도 내가 자신감이 떨어지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리라. 나는 지금 대한민국 수도권에 산다.


편집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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