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뉴스 10주년] 단비가 만든, 단비를 만든 세 권의 책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학생과 교수진이 만드는 <단비뉴스>는 2010년 6월 21일 창간 때부터 ‘기성언론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중대 사회문제’를 제대로 보도하고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빈곤과 소외, 환경재난 등의 현장에서 생생하고도 깊이 있는 탐사보도를 이어갔다. 이 기사들은 2012년 <벼랑에 선 사람들>, 2013년 <황혼길 서러워라>, 2019년 <마지막 비상구> 등 3권의 책으로 태어났다. 

소외계층의 아픔 다룬 <벼랑에 선 사람들>

▲ 2012년 <벼랑에 선 사람들>이 출간된 직후 공동저자로 참여한 <단비뉴스> 기자들이 환한 표정으로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양호근(현 KBS제주 PD), 김승태(현 SBS 영상취재기자), 이지현(현 웹브라이트 PD), 정혜정(현 중앙일보 EYE24팀 기자). ⓒ 단비뉴스

<벼랑에 선 사람들>은 창간호부터 약 1년 반에 걸쳐 연재한 특집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을 묶은 책이다. 당시 주간교수였던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과 대학원 2~4기생 20여 명이 공동저자다. 이들은 우리 사회 서민과 빈곤층이 맞닥뜨리는 원초적 불안, 즉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근로빈곤층의 생계 불안’ ‘내 몸 하나 뉠 곳을 마련하기 힘든 주거 불안’ ‘아이 낳고 기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보육 불안’ ‘중병 들면 가정 파탄을 각오해야 하는 의료 불안’ ‘고금리부채에 시달리는 이들의 금융 불안’을 파고들었다. 

1부 ‘근로빈곤의 현장’ 취재를 맡은 손경호(전 지디넷 기자)는 서울 가락시장의 일용직 파배달꾼으로, 이보라(현 뉴스토마토 기자)는 온갖 푸대접과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전화판촉원(텔레마케터)으로 임시 취업했다. 황상호(전 LA 중앙일보 기자)는 전국을 돌며 ‘도시의 찌꺼기’를 쓸어내는 야간청소부로, 김상윤(현 이데일리 기자)은 호텔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발이 부르트도록 뛰는 ‘하우스 맨’으로 일했다. 이들은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반까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면서 목격한 것들을 휴대전화 메모장 등에 꼼꼼히 기록했다가 ‘펄떡펄떡 뛰는’ 날것으로 <단비뉴스>에 쏟아냈다. 온라인에서는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 등 폭발적 반응이 이어졌다.

▲ <벼랑에 선 사람들>의 밑바탕이 된 기획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중 1부 ‘근로빈곤의 현장’ 기사 제목과 취재진. ⓒ 단비뉴스

이들은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런 현실을 낳은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광범위한 자료조사와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지금까지 제시된 대책들을 종합하고,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제안했다. ‘그늘진 곳의 고통과 절규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해법을 제시한다’는 보도원칙은 이후 <단비뉴스>의 모든 탐사보도에서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1부 ‘근로빈곤의 현장’을 취재한 <단비뉴스> 기자 4명이 보도를 마무리하는 좌담을 하고 있다. ⓒ 이태희

2부 ‘빈곤층의 주거 현실’은 쪽방과 만화방, 다방 등에서 벌레와 악취를 견디며 잠을 청하는 사람들과 비닐하우스, 고시원, 반지하방에서 수치심과 좌절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3부 ‘애 키우기 전쟁’에서는 부실한 보육시설, 허울뿐인 육아휴직 제도 등 맞벌이 부모로 살아가기 어려운 현실과 재개발 등으로 버려진 동네에서 범죄에 방치되는 아이들 문제 등을 집중 조명했다. 4부 ‘아프면 망한다’에서는 중병, 난치병에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고통 받는 서민들의 사례를 보여주고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5부 ‘저당 잡힌 인생’에서는 등록금 빚에 허덕이는 대학생부터 대부업체의 횡포까지, 고금리 사금융을 둘러싼 난맥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했다.

이 시리즈는 기사 연재 중 <시사인>의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했고, 출판 후에는 한국인권재단의 ‘올해의 인권책’, 문화관광부의 ‘올해의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됐다. 각급 학교의 수업 교재로도 활용되면서 2020년 현재 14쇄를 찍은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팔리고 있다.

청년이 가슴으로 쓴 ‘노인 보고서’ <황혼길 서러워라>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 1위인 우리나라에서 ‘대책 없이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생생하게 보여준 <황혼길 서러워라>의 표지. ⓒ 오월의 봄

“차라리 노인들이 ‘외롭다’ ‘힘들다’고 말했으면 나았을 것 같다. 너무 오래 가난에 지친, 그래서 상처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감각해진 노인들에게 이것저것 물어야 하는 일이 너무 괴로웠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었더니 ‘평생’이라 말하는 그분들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p.43)

<단비뉴스>는 노인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이렇다 할 ‘노후대책’ 없이 노년을 맞은 이들이 어떤 삶에 놓여 있는지 주목했다. 탐사보도 ‘대한민국 노인 보고서’ 시리즈는 책 <황혼길 서러워라>가 됐다. 대학원 5~6기 10여명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1장 ‘농촌 노인,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에서는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에서 아픈 몸으로 빈 집을 지키는 노인들이 ‘내일 아침엔 제발 잠에서 깨지 않기를’ 기도하는 현실이 조명됐다. 2장 ‘치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에서는 치매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지만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3장 ‘일터, 고령 노동의 서글픈 현실’에서는 연금 등 복지제도에 기댈 수 없는 노인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저임금에 푸대접을 받으며 일하는 현실을 전달한다. 4장 ‘황혼 육아, 빼앗긴 자유’에서는 맞벌이하는 자식을 생각해 어쩔 수 없이 손주를 키우지만 심신의 건강을 잃고 우울증을 겪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5장 ‘고독, 죽음보다 두려운’에서는 주체 못할 외로움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독거노인들의 일상과 마음을 들여다본다. 마지막 6장 ‘여가와 성, 눈치 보는 노인들’에서는 집에서는 가족 눈치, 음식점이나 술집, 카페에서는 젊은이들의 눈총을 받는 노인들의 답답하고 서운한 심경에 귀를 기울였다. 

<황혼길 서러워라>는 20대 청년들이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취재했다는 점에서 특히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박정헌(현 연합뉴스 기자) 등 공동저자들이 한국방송(KBS) 뉴스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취재 후일담과 노인대책 등을 논하기도 했다.

▲ <황혼길 서러워라>에서 소개한 쪽방촌의 독거노인. 취재진이 KBS <뉴스토크>에 출연해 시급한 노인대책 등을 이야기했다. ⓒ KBS 뉴스토크

코로나 시대 ‘그린 뉴딜’ 이야기 <마지막 비상구>

아직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가 감염병 확산의 원인 중 하나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국제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는 기후변화로 산불·가뭄·홍수 등 극단적 기상현상이 발생하고, 생태계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사람 거주지나 목축지로 이동하면서 바이러스 감염 문제가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단비뉴스>의 세 번째 책 <마지막 비상구>는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어떻게 지구온난화 등을 일으키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2012, 2013년 출판된 두 책이 당시 사회적으로 뜨거운 쟁점이었던 ‘소득불평등과 복지안전망의 부재’를 정면으로 다뤘다면 <마지막 비상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에너지전환(그린뉴딜)’을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다.

▲ 지난해 12월 출판된 <마지막 비상구>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미세먼지, 원전 재난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한다. 최근 국내외에서 논의되고 있는 ‘그린뉴딜’의 주요 내용이 들어있다. Ⓒ 오월의 봄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1년 4개월간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은 것이다. 1부에서는 원자력발전소와 석탄발전소 등으로 인해 주민들의 일상이 무너진 현장을 찾아간다. 2부에서는 우리나라 에너지구조가 원전·석탄 등 ‘위험한 에너지’에 치우치게 된 배경과 구조를 고발한다. 3부에서는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까지 왔는지 국내외 상황을 살펴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대안을 해외사례와 함께 제시한다. 

‘에너지 대전환’ 시리즈는 주제와 내용 뿐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데이터저널리즘과 멀티미디어 요소를 적극 활용, 기사의 흡인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재진은 전국의 발전소 지역 등 현장에서 복잡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 것과 함께 방대한 자료 조사와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고 투명하게 공개했다. 또 움직이는 구글지도와 동영상, 음성파일, 슬라이드 등 인터랙티브(반응형 콘텐츠) 요소를 도입해 시청각적으로 기사의 전달력을 크게 높였다. 이 시리즈는 2018년 민주언론실천연합의 ‘올해의 좋은 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등 권위 있는 언론상을 받았다. 

지난 2월 KBS 라디오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에 출연한 제정임 원장은 “우리 시대가 부닥친 가장 중대한 도전 두 가지가 불평등과 기후위기”라며 “단비뉴스는 <벼랑에 선 사람들>과 <황혼길 서러워라>를 통해 불평등의 그늘을 살폈고, <마지막 비상구>를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 제 1회 한국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에서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은 단비뉴스 환경부원들. 시상자인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권혜진 대표(중앙)를 빼고 왼쪽부터 박지영, 나혜인, 윤연정, 이자영, 박희영, 조은비, 강민혜, 윤종훈. ⓒ 임지윤

‘불평등’과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단비뉴스>의 의지는 후속 탐사보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 공동기획으로 시작된 ‘지방대 위기와 혁신’은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교육의 공정성’을 높일 대안을 모색하는 연재물이다. <단비뉴스> 환경부는 본격화하는 기후변화의 실태를 정밀 조명하고 ‘그린뉴딜’ 등의 대안을 점검하는 ‘기후위기시대(가제)’를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비상구>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재물들도 책으로 출판돼 ‘단비의 새로운 10년’을 만들 것이다.


① 미켈란젤로가 천장화 그릴 때 마음으로

② 가장 메마른 곳으로, 온 힘 다해 달렸다

편집 : 이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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