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뉴스 10주년] 제정임 초대 주간 회고

▲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지난 2009년 가을학기 어느 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2기생 2명이 당시 문화관 409호였던 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쌤~, 여기가 저널리즘스쿨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자체 제작하는 신문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박소희(현 오마이뉴스기자)와 김동환(현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이 ‘신문을 만들자’고 조르듯 말했을 때 나는 ‘뿅망치’로 이마를 맞은 듯 경쾌한 충격을 느꼈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반짝 들었다. 2008년 대학원 문을 열 때부터, 수준 높은 지역 언론을 운영하는 선진국 저널리즘스쿨처럼 자체 매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갓 출범한 대학원의 자리를 잡는 과정이 고단해 엄두를 못 내고 있던 터였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만들어야지!” 그들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대학원생 제안으로 탄생한 온라인신문

하지만 신문을 만들자는 합의가 학내에서 쉽게 이뤄지진 않았다. 당시 대학원장이었던 이봉수 교수는 학교가 아직 설립초창기라 일이 많은데, 교수진의 업무부담이 너무 과중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주저했다. 타당한 걱정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취업이 급한데 웬 매체 창간?’하는 떨떠름한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언론인 지망생들이 취재보도와 영상제작 등 실무를 제대로 익히려면 실제 매체를 통해 직접 해보는 게 최선이라는 명분은 강력했다. 언론사들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뽑는 추세가 갈수록 뚜렷해지는 현실도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거듭된 토론 끝에 드디어 전체 구성원이 온라인매체 창간에 마음을 모았다. 그 다음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 <단비뉴스> 창간준비 작업 당시 온라인신문의 홈페이지 디자인을 논의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과 교수진. ⓒ 단비뉴스

당시 우리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제호였다. 신문의 이름을 뭐라고 지어야 ‘젊은이들이 만드는 대안언론’에 어울릴까. 참신한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상금을 건 내부 공모를 진행했다. ‘세명트리뷴’ ‘세명타임스’ ‘세명포스트’ 등 외국 신문 이름을 딴 제안도 나왔고, ‘세명플라자’ ‘세명광장’ 등 학교 앞 가게 같은 이름도 나왔다. ‘뉴스 틈’ 같은 신선한 제안도 나왔다. 그런데 가장 큰 지지를 받은 당선작은 학생들이 아닌, 이봉수 교수가 낸 ‘단비뉴스’였다. ‘꼭 필요한 때 알맞게 내리는 비’라는 뜻이 대안언론의 취지에 맞고 어감도 친근했다.

우리는 <단비뉴스>의 성격을 세 가지로 규정했다. 첫째는 ‘실습매체’다. 기자·PD를 꿈꾸는 예비언론인들이 실제 매체를 기반으로 취재, 기사작성, 편집, 영상제작 등의 기량을 쌓게 하는 것이 기본적 목표다. 만일 우리 학생들이 실제 매체 없이 ‘학교 실습인데요...’하고 취재를 했다면 ‘당장 현장에 내보낼 수 있는’ 전문적 역량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둘째는 ‘대안매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안인데도 기성언론이 충실히 다루지 않는 문제들을 찾아 깊이 있게 보도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많은 언론이 광고주의 입맛, 사주의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휘둘리며 소득불평등, 기후위기, 산업재해 등 시대적 현안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단비뉴스>는 심층보도를 통해 사회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될 때까지 추적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창간 때부터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실험매체다. 정보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소비 행태 변화로 급진전되고 있는 뉴미디어시대, 입맛 까다로운 신세대 독자에게 ‘중요한 뉴스를 흡인력 있게 전달하기 위한’ 실험을 거침없이 해보기로 했다.

‘가난한 한국인’을 파고든 창간특집에 열광적 반응

2010년 초부터 본격화한 창간준비 작업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이라는 주제의 창간특집기사였다. 대학원 2기생과 3기생이 여러 차례 세미나를 열고 ‘안전망 없이 가난에 내몰린 약자들의 삶’을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첫 순서로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을 취재하기로 한 김상윤(현 이데일리 기자), 이보라(현 뉴스토마토 기자), 손경호(전 지디넷 기자) 황상호(전 LA중앙일보 기자)는 각각 2주에서 한 달 반의 체험취재를 자원했다.

“선생님, 저희가 기숙사에서 야식을 먹으면서 결심을 했어요. ‘청춘을 불사르자’고요.”

이들은 각각 가락시장 파배달꾼, 야간 청소부, 텔레마케터, 호텔 하우스맨 등 불안정한 처지의 노동자로 취업해 절절하고도 놀라운 현장의 이야기를 건져 올렸다. 그야말로 ‘청춘을 불사른’ 이들의 취재는 2010년 6월 21일 창간호부터 <단비뉴스>를 꽉꽉 채웠고, <오마이뉴스> 등 제휴언론을 통해 온라인에서 각각 수십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창간 첫 기사부터 폭발적 독자 반응이 쏟아진 데 이어, 며칠 만에 책으로 내자는 출판사의 제안이 들어왔다.

근로빈곤에 이어 주거불안, 보육불안, 의료불안과 사금융폐해까지 다룬 이 시리즈는 2012년 <벼랑에 선 사람들>이란 단행본으로 출판됐다. ‘올해의 인권책’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으로 선정됐고, 각급학교의 수업 교재로도 쓰이면서 현재 14쇄를 찍은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팔리고 있다.

<단비뉴스>는 이어 2013년 노인 소외를 집중 취재한 ‘대한민국 노인보고서’ 특집기사를 토대로 <황혼길 서러워라>를 출판했고, 2019년에는 기후위기와 원전재난을 다룬 ‘에너지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을 <마지막 비상구>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에너지 시리즈도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 보도상’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 등 각종 언론상을 받았다.

▲ 노인소외를 다룬 탐사보도 시리즈 ‘대한민국 노인 보고서’를 <황혼길 서러워라>로 출판할 무렵의 <단비뉴스> 간부진. ⓒ 단비뉴스

실습·대안·실험매체로서 의미 있는 결실

1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단비뉴스>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우리가 실습매체, 대안매체, 실험매체로서 추구했던 성과를 꽤 거두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우선 <단비뉴스>를 기반으로 언론실무를 배운 학생들의 성장이 눈부셨다. ‘철저히 현장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다양한 데이터로 뒷받침하고’ ‘취재원 실명 표기 등으로 신뢰도를 높이며’ ‘멀티미디어로 다양하게 표현하는’ 훈련으로 학생들은 기성언론을 능가하는 보도를 많이 했다. 그런 포트폴리오(성과물)를 바탕으로 졸업생들은 속속 바라던 언론사에 입사했다.

언론사들이 신규 대신 경력채용을 늘리거나, 채용 과정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무능력을 중시하면서 <단비뉴스> 경험은 대다수 졸업생이 입을 모아 인정하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학생들은 취재제작 실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대학원 언론윤리 수업에서 배운 저널리즘의 사명과 가치, 표준을 현장에서 고민했기 때문에 언론사 면접 등에서 진솔하고도 깊이 있는 시각을 드러낸다. 또 전략기획팀 활동 등을 통해 ‘어떻게 하면 정성껏 만든 콘텐츠를 더 많은 수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용 실험도 하는데, 이런 경험 역시 입사과정에서 남다른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대안매체로서 <단비>의 역할은 우리가 가장 소중하고 뿌듯하게 간직하고자 하는 역사다. <벼랑에 선 사람들>이 집중한 소득불평등과 사회안전망 부재, <황혼길 서러워라>가 주목한 노인의 빈곤과 소외, <마지막 비상구>가 파고든 기후위기와 원전재난은 아직도 기성언론이 정공법으로 다루지 못하는 주제들이다. 반면 단비 기사와 출판물은 주요 선거 국면에서 복지논쟁 등을 일으키며 사회적 토론을 촉발하는 데 한몫했다고 자부한다.

<단비뉴스>는 또 창간 초기부터 기성언론에서 보기 힘든 지역농촌부, 청년부, 미디어부를 따로 두고 우리 농업농촌의 현실, 청년들의 절실한 고민, 기성 언론 보도의 문제점 등을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목소리가 작은 존재’인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다룬 탐사보도로 뉴스통신진흥회의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 최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단비뉴스>는 가장 메마른 곳을 적시는 빗줄기처럼, 가장 아프고 긴박한 시대적 과제와 항상 함께 했다.

주요 신문·방송과 단체 등의 협업 제안 봇물

실험매체로서 <단비>의 성과는 우리나라 탐사보도 및 데이터저널리즘 권위자인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와 권혜진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대표가 학생 교육에 참여하면서 더 풍성해졌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데이터저널리즘의 기본기를 익히고 다양한 자료활용과 정보청구, 인포그래픽,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을 적극 실험하며 <단비뉴스> 보도에 활용한다. <단비뉴스> 이주노동자특별취재팀은 뉴스통신진흥회 공모전 최우수작 기사를 토대로 본격 인터랙티브 보도물을 제작하고 있다.

이런 단비뉴스의 활약은 기성언론의 눈길을 끌었고, 협업으로 이어졌다. 한국방송(KBS) 디지털미디어국과 협업으로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를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공동 보도해, 포털 등에서 수십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경향신문>은 단비뉴스의 주요 보도물을 온라인에 전재했고, <한겨레>는 ‘나는 농부다’ 시리즈 등에서 <단비뉴스>와 협업했다. <단비뉴스> 환경부는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심층취재를 했고, 환경재단과 협업으로 미세먼지TV를 공동제작하기도 했다. 

▲ 영상제작 실습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상요 교수와 저널리즘스쿨 6, 7기 학생들. ⓒ 단비뉴스

남은 과제는 독자기반 확충과 ‘축적’시스템 갖추기

<단비뉴스>는 지난 2017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해 언론사로서 제도적 기반을 갖췄고, 기자·PD로 활동한 대학원생들이 언론사에서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여건도 마련했다. 이런 <단비>를 힘차게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교수진이다. 창간 당시에는 이봉수 대표(조선·한겨레), 제정임 주간(경향·국민), 권문혁 영상주간(MBC)이 신생매체의 기틀을 잡느라 애를 썼다. 2대 주간을 맡은 김문환 교수(매경·SBS)는 특히 방송리포팅 부분에서 <단비뉴스>를 획기적으로 보강했다.

현재 데스크를 맡고 있는 교수진은 기자 출신으로 이종원(조선), 김지영(경향), 심석태(SBS) 교수가 있고, PD 출신으로 이상요(KBS), 장해랑(KBS) 교수가 있다. 이들은 때로 심야를 지나 새벽까지, 주말과 휴일 방학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단비 제작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열 살이 된 <단비뉴스>는 이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더 먼 길을 나서려 한다. 우선은 실습·대안·실험매체로서 내실을 다지고, 품질을 높이는 노력을 가속할 것이다. 학생들이 단비 활동과 다른 학습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할 예정이다. 대안언론으로서 사회구성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더 깊고 날카롭고 생생하게 드러내고 ‘해결이 될 때까지’ 추적할 것이다. 좀 더 과감한 자세로 미디어의 지평을 확장하는 실험도 이어갈 것이다.

또 하나 노력할 부분은 독자기반 확대와 '축적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단비뉴스>는 포털 다음, 네이버와 검색 제휴를 통해 더 많은 독자를 만나게 됐지만, 창간 당시의 폭발적 반응을 유지·확장하지 못했다. 더 의미 있고 흡인력 있는 보도로 수용자를 끌어당기는 한편, SNS 등 다양한 접점을 통해 수용자 기반을 적극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구독·후원·광고 등 재정적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 ’일할 만하면 떠나는‘ 학생중심 인력구조에서 한발 나아가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상근인력을 보강하는 작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유능한 졸업생이 기성언론사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단비뉴스>의 탐사보도를 이끌고 데스크 역할도 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지난 3월 심석태 전 SBS보도본부장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로 부임, 새롭게 주간을 맡게 된 것은 <단비뉴스>의 미래에 더 큰 희망을 품게 한다. ‘스브스 뉴스’ 등 SBS의 뉴미디어 실험을 성공시킨 심 교수는 앞으로 다양한 도전을 이끌면서 <단비뉴스>의 멀티미디어 시대를 활짝 열 것으로 기대된다. 마침 그가 이끄는 학생들이 한국언론재단의 기획취재공모에서 ‘VR(가상현실)을 이용한 실감형 뉴스콘텐츠 제작’으로 지원 대상에 선정된 것은 엄청난 드라마를 예고하는 ‘티저’처럼 보인다. 가장 메마른 곳으로 달려가는 대안언론, 멀티미디어 시대를 앞서가는 젊은 언론 <단비뉴스>에 독자·시청자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를 기대한다.


① 미켈란젤로가 천장화 그릴 때 마음으로

③ 불평등·기후위기에 정면승부를 걸다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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