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

중앙일보에 입사해 신문기자로 20년, 제이티비씨(JTBC) 개국하고 방송인으로 10년을 살았어요. 한 가지만 경험하는 것도 참 어려운 건데, 운 좋게 기자와 PD, 앵커 세 가지 직업을 모두 거쳤어요. 평소 ‘참 운이 좋다’ ‘행복하다’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JTBC ‘밤샘토론’을 진행하는 신예리 보도제작국장이 19일 오후 충북 제천 세명대 학술관에서 열린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언론인 초청 특강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기자, PD, 앵커로 살아보니’를 주제로 한 이날 특강에서 청중 30여 명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넓게 띄어 앉은 채 눈빛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중앙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거쳐 JTBC국제부장과 ‘신예리 강찬호의 직격토크’ 등 진행자를 역임한 그는 2015년부터 교양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보도제작국장을 맡고 있다.

수습기자 시절 시위현장서 최루탄에 쓰러지기도 

▲ JTBC의 신예리 보도제작국장이 19일 오후 충북 제천 세명대 학술관에서 '기자, PD, 앵커로 살아보니'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이나경

“처음 제 이름을 달고 나왔던 기사를 용케 찾았어요. 아직 수습기자였던 시절인데, 사회면 한 귀퉁이에 실린 ‘시위현장의 토론’이라는 취재일기였죠.”

<중앙일보>에 처음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기사는 1991년 5월 10일자에 실린 시위현장 스케치였다. 1987년 민주화 항쟁 후에도 전국 곳곳에서 노태우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대다수 언론은 ‘일부 대학생’에 국한된 일인 것처럼 전했다. 그러나 그는 서울 종로3가 단성사 앞 네거리에서 벌어진 시국토론에서 대학생은 물론 주부, 교사, 회사원 등이 격정적으로 토론한 모습을 생생하게 썼다. 나중에 한 선배가 “시위대에 대학생이 아닌 시민들도 참여했음을 전해 준 첫 기사”라고 의미부여를 해 주었다. 

그는 “이때 기자의 본분은 ‘본 대로, 들은 대로 전하는 것’임을 깨달았는데, 기자의 기본과 본질에 대한 논란이 많은 요즘에도 유효한 키워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서를 돌며 사건취재를 하던 수습기자 시절 고려대 등 주요 대학 시위현장에 자주 나갔던 신 국장은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서 있다가 당시 ‘지랄탄’이라고 불렸던 특수 최루탄을 눈앞에서 맞고 기절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다른 관점’으로 지면의 다양성을 높이다 

신 국장은 신문사에서 기자, 논설위원으로 일하는 동안 ‘다른 관점’을 지면에 관철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신 국장이 <중앙일보>에서 아주 오랜만에 공채로 뽑은 여기자로 입사했던 30년 전, 동기 중에 유일한 여성이었고, 전 언론계에도 여성 취재기자가 흔치 않았다.

“제가 특종을 많이 한 기자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려고 많이 노력한 기자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신문사 분위기에서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여성이 소신대로 기사를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는 ‘동성동본 결혼 금지’ 등 낡은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용감하게 썼다고 한다. 논설위원 시절 10여 명의 남성 위원들과 혼자 논쟁을 벌여 ‘미혼모 지원 확대’를 사설로 쓴 일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 신예리 국장은 특강에서 ‘있는 그대로’ 전하는 기자의 소신,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강조했다. © 이나경

기자·PD 공통점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 

<중앙일보> 계열의 종합편성방송으로 JTBC가 개국하기 1년 전인 2010년, 신 국장은 설립준비팀(TF)에 합류했다. 방송기자로 도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미국 씨엔엔(CNN) 방송사로 3주 간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각국 방송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 국장이 “20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하다 내년부터 방송기자를 해야 한다”고 하니 다들 걱정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여러 프로그램의 앵커까지 해낼 만큼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글로 쓰느냐, 말로 하느냐 차이가 있는 거지 ‘기자’의 본질, 좋은 기자가 되는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PD들과 함께 일하는 보도제작국장으로도 그는 순항 중이다. PD와 기자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꼽았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 또 세세한 부분들은 분명 다르지만,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 세상살이나 트렌드(시류)에 대한 촉, 이런 건 기자나 PD 모두 공통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차이나는 클라스-질문있습니다’도 신 국장이 기획과 섭외를 맡고 있다. 그는 “(방송을 타기 위해) 나오려는 사람은 못 나오게 하고, 안 나오려는 사람을 나오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좋은 콘텐트가 있는데 방송을 꺼리는 분들을 섭외하기 위해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철저히 파악한다”고 말했다.

신 국장은 또 주제와 강연자를 정할 때 시청자가 ‘원하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페미니즘을 다뤘을 때는 시청률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게시판에 악성 댓글이 줄을 이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이 기획·제작하는 ‘차이나는 클라스 – 질문있습니다’는 지난 2017년 12월 페미니즘을 주제로 다뤘다. 신 국장은 시청자가 ‘원하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강조했다. © JTBC 유튜브 채널

젊은 후배들과 어울리며 열린 마음으로 기획 

약 1시간의 강연 후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장 진행으로 이어진 일문일답 시간에 ‘어떻게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신 국장은 “젊은 사람들과 많이 어울린다”고 답했다.

"젊은 사람들과 노는 걸 좋아해요. (방송을 만드는) 동료들 가운데는 2000년대 생도 많아요. 그런 젊은 친구들한테 정말 많이 배워요. 다 같이 모여 프로그램 시사회도 하는데, 난 재미없지만 그들이 재미있다고 하면 최대한 들으려고 하죠. 내 딸이 93년생인데, 90년대 생이랑 한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나름 잘 파악하고 있어요."

▲ 강연이 끝난 후 약 1시간 동안 제정임 소장 진행으로 질의답변이 이어졌다. 신예리 국장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직장과 일상에서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 이나경

기자와 PD, 그리고 밤을 새며 토론하는 프로그램의 앵커로 일해 온 신 국장은 강연 내내 ‘체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언론인의 업무는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다른 일보다 체력과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체력과 멘탈(정신력)이 강해야 많은 업무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다”며 “언론인이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쑥과 마늘의 시간’을 버텨야 진짜 PD가 된다

그는 기자와 PD를 지망하는 예비언론인에게 각각 ‘멀티미디어 역량’과 ‘엉덩력’을 강조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신문과 방송 등 플랫폼의 의미는 이제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이며, <중앙>을 비롯한 많은 신문사가 이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기자들의 활동 영역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팟캐스트로 확장되는 중이다. 신 국장은 “글 잘 쓰니 신문기자, 말을 잘해 방송기자라는 구분은 이미 없어졌다”며 “신문기자가 동영상을 기획하고, 방송기자는 온라인에 칼럼과 기사를 쓰기 때문에 미래의 언론인에게는 멀티 플레이어의 자질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임PD에게는 긴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일할 수 있는 의지, 즉 ‘엉덩력’이 필요하다는 게 신 국장의 주장이다. 그는 PD 지망생에게 “쑥과 마늘만 먹고 버틴 곰의 인내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화 속의 곰처럼, 신입 PD도 편집실에서 짧게는 5년, 길게는 7년을 살다시피 하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감각과 기획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JTBC에) PD로 어렵게 입사한 후 일찍 그만 두는 사람이 있다”며 “입사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연예인도 만나는 생활을 기대했다가 편집실에서 기계와 싸우고 외로움에 떠는 생활이 이어지니 그만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날 특강에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과 세명대 학부생, 일반 청중 등이 참석해 강연을 경청하고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신 국장의 저서를 갖고 나와 질문한 참석자도 있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청중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좌석 거리두기를 했다. © 이나경

신 국장은 또 예비언론인들에게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사회현안을 파악할 것’과 ‘메모하는 습관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종이신문 한 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메모와 스크랩을 한다”며 “그래야 세상에 대한 ‘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운전하다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메모하고,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이 칼럼 등 글의 소재가 되고 시의성 있는 프로그램 기획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참석자가 “만일 지금 에세이를 쓴다면 어떤 제목을 붙일 것인가”라고 묻자 신 국장은 “(제목은 모르겠지만) 행복에 관해 쓸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국장은 “나이 어린 조연출 등이 새로 들어오면, 힘들게 하는 PD나 작가가 있다면 내게 말하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그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면 힘들어진다”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 모두 불행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이 기자와 PD, 앵커의 영역에서 모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과 기자·PD 지망생이 갖춰야 할 역량, 자질이 무엇인지 조언했다. (촬영·편집) 윤상은 이정헌


편집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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