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김해 방화셔터 끼임 사고’ 후 9개월

지난 5월 28일 오전 ‘학교 방화셔터 끼임 사고’ 피해자인 홍서홍(10) 군의 어머니를 만나러 양산부산대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코로나 탓에 재활병원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 연락을 하니 어머니 이길예(38) 씨가 보호자만 드나들 수 있는 재활병원 쪽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 나왔다. 이 씨는 사고 이후 9개월째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는 서홍이 간병과 코로나 사태로 개학이 연기돼 집에 있는 12살, 6살 두 아이 양육까지 감당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해 9월 30일 이 씨는 서홍과 형을 학교를 보낸 지 30분도 안 돼 서홍이 방화셔터에 끼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사고를 당한 서홍은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한 채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 재활병원 입구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환자의 안전과 감염예방을 위하여 건물별 출입구를 폐쇄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김태형

이 씨는 의식불명인 자식 간병에 전념하기 위해 사고 직후 직장을 그만뒀다. 초기에는 병원 근처 원룸에서 생활했지만, 부담스러운 월세와 남은 아이 둘 양육을 위해 김해 집에서 양산 병원까지 20~30km 거리를 매일 오간다. 남편도 석 달 넘게 휴직했지만, 생계를 위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사고 충격으로 모두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특히 동생 목이 수백Kg 방화셔터에 짓눌리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큰아이는 자신이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 서홍이 입원한 병실 한쪽 벽에 ‘사랑하는 친구야! 꼭 깨어나서 함께하자!’는 글귀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 이길예

코로나 탓만 하는 경남교육청

“후원금으로 간병비용을 충당하고 있지만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간병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시기인데, ‘지금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 근본 대책은 마련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학교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 치료비를 지급하기 위한 학교안전공제회는 보호자가 부담한 금액을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지급한다. 여기에는 진찰・검사, 약제・치료재료 지급, 처치・수술 그 밖의 치료, 재활 치료, 입원, 간호, 호송 등의 비용이 포함된다.

그러나 서홍이처럼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경우라도 한 달 400여만 원 간병비는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라서 지급 근거가 없다. 보호자의 식비, 교통비 등 부대비용도 지급받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지역사회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서홍이 언제 의식을 되찾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책이 없어 막막할 뿐이다.

▲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안전법) 제36조에 따라 요양급여는 학교안전사고로 인하여 피공제자가 입은 부상 또는 질병의 치료에 소요된 비용 중 국민건강보험법 제44조에 따라 피공제자 또는 그 보호자 등이 부담한 금액으로 한다. © 김태형

경남교육청 장경미 안전총괄담당관은 5월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필요한 경우 간병비용까지도 같이 지급할 수 있도록 지난해 12월 TF팀을 구성했으며, 학교안전법 개정요구안을 준비한 상태”라면서도 “코로나 관련 상황에 대처하다 보니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 씨는 “교육청에서 학교안전법 개정을 위한 TF팀을 구성했다는 것도 지난해 12월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고, 이후 코로나 때문에 논의가 잠정 연기됐다는 소식도 4월 말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적어도 진행상황은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 서홍이 어머니 이길예 씨가 재활병원 밖 쉼터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태형

의식불명인데, 퇴원하면 돈 준다는 학교안전공제회

이 씨는 사고 이후 몇 달 동안 간병비를 제외한 매달 700여만 원의 진료비를 경남 학교안전공제회에서 지급받았다. 이 씨가 매달 병원 원무과에 먼저 결제하고 영수증을 공제회에 제출하면 공제회가 이를 검토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씨는 “매달 700여만 원을 먼저 결제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지만, 공제회 문의 결과 부모가 부담한 금액에 관해서만 지급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매달 진료비를 결제하고 영수증을 청구한 뒤 지급받는 방식조차 불가능하게 됐다. 학교안전공제회가 보호자에게 앞으로는 최종 수납된 퇴원진료비 계산서를 제출해야 지급할 수 있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서홍이 퇴원할 때 보호자가 진료비를 모두 결제하고 계산서를 제출하면 이를 검토한 뒤 비용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씨는 “서홍이 언제 의식을 찾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퇴원할 때까지 진료비를 보호자가 먼저 계산해야 지급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한달 400여만원 드는 간병비만 해도 큰 부담인데 이제 진료비까지 퇴원할 때까지 보호자가 먼저 다 결제해야 지급한다니 더 힘들다”고 말했다.

경남학교안전공제회 장영준 담당자는 6월 3일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 3월에 홍서홍 군이 양산부산대병원에서 퇴원했다가 다른 병원에서 며칠 간 치료를 받고 양산부산대병원에 다시 입원했다”며 “병원이 보호자에게 준 퇴원 진료비계산서를 확인해보니 영수증들이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않은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건강보험법 44조에 따라 의료보험이 적용된 금액만 보호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데, 원무과에 확인해보니 퇴원해야 의료보험이 적용된 영수증을 발행해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공제회의 이 조처를 서홍이 보호자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서홍 군 아버지 홍기국(46) 씨는 6월 8일 통화에서 “매달 중간 진료비계산서를 결제하라고 간호사가 갖다준다”며 “간병하느라 정신 없는데 매번 금액 확인하고 카드로 결제해 카드결제 영수증이랑 진료비 영수증을 공제회에 청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수개월간 공제회에서 서류를 검토해 매달 지급하다가 이제 와서 최종 수납된 퇴원 진료비계산서를 제출해야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남 학교안전공제회 업무편람을 보면 퇴원 및 외래진료비만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며 “평소엔 법만 내세워서 다 안 된다 하더니 수개월 동안 구비서류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지급했던 거냐”고 반문했다.

▲ 경남학교안전공제회 업무편람에는 ‘병원영수증은 퇴원 및 외래 진료비 영수증 원본만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 경남학교안전공제회 홈페이지

더는 피해자가 이중고 겪는 일 없어야

▲ 사고 당시 9살이던 서홍의 또래 친구들이 보내준 응원 글. © 이길예

“지금 우리 가족도 힘들지만 법이 개정돼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길예 씨가 원하는 것은 더는 자기 가족과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지난해 12월 서홍이 입원중인 병원을 방문해 학부모에게 간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실은 도저히 간병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씨는 “힘든 거 있는지 물어서 얘기하면 매번 법적 근거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고 초기부터 서홍이 가족에 관심을 가져온 김경수 경남도의원은 4월 24일 도의회에서 경남교육청의 적극적인 태도를 촉구했다. 김 의원은 “이 사건 원인은 단순한 기계 오류가 아닌, 학교 직원의 과실에 따른 것임이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며 “교육청은 말로는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하고 실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학부모가 나서서 해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 4월 24일 김경수 경남도의원이 도의회에서 ‘김해 방화셔터 끼임 사고’에 관한 경남도교육청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 경남도의회 홈페이지

20대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김정호 국회의원(민주당·김해을)은 지난해 12월 23일 학교안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상 치료중 간병비는 급여대상이 아니고 치료와 간병에 따라 발생하는 부대비용 등이 급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 피해자 가족의 고통과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5월 29일 자동폐기됐다.

▲ 서홍이 입원해 있는 양산부산대병원 재활병원. © 김태형

학교안전공제제도와 관련한 여러 사건을 맡아온 이효정 변호사는 “현재 학교안전법은 학교안전에 관한 법적 안전망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좋은 취지를 갖고 있지만, 법률체계 자체가 학교안전공제제도의 성격과 부합하지 않는 면이 많아서 전체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회보장 제도로 마련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보상적 취지에 맞추어 해당 법령에서 보상의 범위를 체계적으로 정하고, 재원이 되는 보험료 등 징수금 마련에 관해서도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학교안전법령을 전체적으로 재정비해 사회보장제도로서 확실한 체계와 구조를 갖추고, 공제 지급 범위 역시 제도연구 등을 통해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만일 이렇게 법령을 다듬을 경우, 학교안전사고로 피해를 입은 피공제자들로서는 자신들이 입은 피해 전부를 공제급여 지급만으로 보호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이 경우 학교나 국가 또는 학부모가 보험료를 1/2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공제급여 보상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을 보호해주는 별도 장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서울시학교안전공제회가 시행하려는 ‘교원안심공제서비스’처럼 교원들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힘으로써 발생하는 법률적 손해배상책임 비용을 보상해주고, 피해자들이 공제제도를 벗어난 손해도 배상받을 수 있게 된다면 피해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보호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지역 주민들이 보내준 기저귀, 물티슈 박스가 방에 쌓여 있다. © 이길예

“이름만 알 뿐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많은 분들이 서홍이에게 꼭 필요한 기저귀나 물티슈, 후원금도 보내주십니다. 지역심리기관에서도 가족이 버텨야 서홍이도 지킬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등 심리상담도 해주세요. 이런 분들 아니었으면 진작 무너졌을 겁니다. 진짜 감사해요.”

이길예 씨는 인터뷰 내내 지역사회의 도움과 지역심리기관의 심리치료에 감사를 표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어린이가 사고를 당해 의식도 찾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있지만 미비한 법제도와 정부·국회·지자체·교육청의 무관심 속에 지역사회 이웃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는 게 학교안전 문제의 현실이다.


편집 : 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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