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탄소제로시대를 위한 그린뉴딜 국회 토론회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등으로) 경제가 나빠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더 심각한 위기는 기후변화입니다.”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후위기 극복-탄소제로시대를 위한 그린뉴딜 토론회’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화상연결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그린피스, 서울연구원, 에너지전환포럼 등이 공동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 그는 “지난 2세기 동안 산업화를 위해 화석연료 에너지를 사용한 결과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지구역사상) ‘6번째 대멸종’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며 “그런데 이러한 경고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 않으며 대다수 한국인과 미국인은 이런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감염병 대유행은 앞으로 더 잦아질 것 

▲ 미국에서 화상으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제러미 리프킨 이사장. © 방재혁

독일 메르켈 총리 등의 정책자문을 맡은 세계적 석학이자 <노동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 <글로벌 그린뉴딜>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한 리프킨 이사장은 “기후변화가 감염병의 대유행을 불러오기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는 일회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세계는 여섯 번의 주요한 감염병 대유행을 경험했는데, 기후가 변함에 따라 야생동물이 폭염, 가뭄, 산불, 홍수, 허리케인 등을 피해 이주하면서 바이러스도 함께 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인간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생하면 실내 생활을 했다가, 백신이 생기면 다시 밖으로 나오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한국과 관련, “세계에서 (기후변화 원흉인) 화석연료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국가 중 하나”라며 “화석연료 의존성에서는 세계 3, 4, 5위안에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이 에스케이(SK) 같은 세계적 통신회사와 삼성과 같은 세계적 전자회사, 현대·기아와 같은 세계 정상급 자동차회사를 가졌지만 탈화석연료 전환에는 매우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특히 화석연료 문명이 붕괴하면서 수조 달러 규모의 좌초자산(가치를 잃어가는 천연가스·석유·원자력·석탄 관련 자산)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구식 에너지 체제에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리프킨 이사장은 “커뮤니케이션(통신) 인터넷과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인터넷, 디지털화한 전기차와 연료전지차의 운송 인터넷이 새로운 건물 환경과 결합하면 (기후위기를 막을) 극적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관련 기술과 자원을 가진 한국이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 그린뉴딜을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국민, 특히 젊은이들이 문재인 정부가 더욱 야심차게 변화를 추진하도록 밀어붙이고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재앙 막기 위해 ‘깊고 빠른’ 변화 필요 

이어 ‘해외 주요국 부문별 그린뉴딜 프로그램’ 발제에 나선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이제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면 점진적 변화보다 대전환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기요금 인상반대’ ‘재생에너지 반대’ ‘속도 조절론’ 등의 담론이 기후위기를 부르고 있다”며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기후리스크를 외면한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이제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면 해외에서 투자를 하지 않는 시대”라고 말했다. 

‘한국사회 그린뉴딜과 정부, 국회의 역할’ 발제에 나선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4개 부처(환경,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 국토교통)에 그린뉴딜 정책 보고를 지시했지만, 4개 부처에 그칠 것이 아니라 모든 부처가 그린뉴딜을 주류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국토교통부는 공항 등 좌초 인프라(가치가 크게 떨어질 위험이 있는 인프라) 분석을, 산업통상자원부는 재생가능에너지 관련 제도 설계를, 기획재정부는 탈탄소 산업 경제제도 혁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은 그린뉴딜에 연간 6조 원가량 투입을 계획하고 있는데 유럽연합(EU) 그린딜의 경우 연간 135조와 국가 개별예산이 투입된다”며 우리 예산이 경제사회 대전환을 위해 매우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 '한국사회 그린뉴딜과 정부, 국회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하는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 방재혁

유정민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역정부의 그린뉴딜 프로그램 제언’ 발제를 통해 “기존 그린뉴딜은 중앙정부-지방정부간 탑다운(하향)방식으로 이뤄져 부작용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지역정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정부가 에너지효율개선, 시민참여·실천 등 지역차원에서 효율적인 정책실행이 가능한 단위”라며 “도시에서 그린뉴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국가단위 그린뉴딜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유 위원은 서울시를 예로 들면서 “서울시는 노후 건축물 비중이 전체 건물면적의 23.2%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공공건물은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화, 복지 및 일자리창출을 위해 우선 실행이 필요해 공공건물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에너지부문에서 태양광 인프라 확대, 교통부문에서 승용차 중심 교통체계 개선과 녹색교통 인프라 확대, 자원순환부문에서 폐기물 감축, 순환기반 구축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중앙정부의 제도 개선 사항이 지방정부의 프로그램과 연계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제도개선 추진력과 지방정부 정책 실행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지역정부의 그린뉴딜 프로그램 제언’을 주제로 발제하는 유정민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 © 방재혁

재생에너지 지역주민 참여 높일 제도 개선 필요 

발제 후 각 분야별 전문가 토론에서 김종규 해움 이사는 “한국전력의 에너지판매망 독점으로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를 쓰고 싶은 사람이 있음에도 쓸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라며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진 GS풍력 상무는 “‘전국민 바람발전소 주주되기’ 운동을 추진해 뉴딜의 기본철학을 구현하고 에너지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 정책 부분에서 추소연 RE도시건축연구소장은 “기존 건물의 성능 개선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며 “자가 건물에 대해 서울의 가꿈주택(노후주택 집수리)이나 융자지원 등을 통해 전면적인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뉴딜 토론에서 발언 중인 각 분야별 전문가들. © 방재혁

박성규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실장은 수송부문에서 “클린자동차(친환경 자동차) 구매 기금,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한 R&D(연구개발)구축, 충전인프라가 조성되어야 한다”며 정부에 지원을 건의했다. 김종안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먹거리를 생산·유통·가공·소비하는 전반적인 과정에 저탄소 푸드시스템을 구축하고, 농식품 부문의 기후변화 대응과 그린뉴딜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담부서나 조직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웅 에코앤파트너스 대표는 유럽투자은행(EIB)의 1300조 원 규모 기후위기 대응 투자를 거론하며 “우리나라도 ‘한국녹색투자금융공사’ 설립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언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장은 “이번 기회에 국가 온실가스감축 목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제로화를 실천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들 간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 시민 ‘그린뉴딜, 강하게 밀어붙여야’ 

이날 토론회는 당초 450석 대회의장에 한 칸씩 띄어 앉기로 청중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제대로 띄어 앉기가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이렇게까지 환경, 기후, 에너지전환 분야에 대중, 전문가의 관심이 뜨거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그만큼 그린뉴딜 정책에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 논의를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 부담이 크기도 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대학생 신은섬(25·서울 종로구)씨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오셨고 그린뉴딜에 대해 각자 하고자 하는 방향들이 보였지만, 단순한 조정을 넘어 제시된 정책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낙연 전 총리 등 정치인과 환경단체 관계자, 일반 시민 등이 발표와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 방재혁

편집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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