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차별금지법’

▲ 양동훈 기자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사자성어는 여성혐오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뿌리 깊은 현상이었는지 보여준다. 나라를 망하게 했다며 손가락질 받아온 중국의 미녀 말희, 달기, 포사, 서시 등은 원래 권력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나라를 망친 책임은 권력을 갖고도 망국을 막지 못한 왕과 신하들이 져야 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잘못이 없거나 가벼운 사람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버린 것이다.

서양이라고 나은 것도 없다. 프랑스 혁명기에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퍼부어진 혐오서사는 마타도어가 많았다.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말 따위는 하지도 않았고, 그를 처형하는 데 동원된 것은 ‘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저열한 루머였다. 앙투아네트는 당시 기준에서 딱히 사치스러운 왕비도 아니었다. 오히려 품위 있고 예의 바른 왕족이었다.

이들에 대한 비난은 명백한 여성혐오다. 다만 당시에 여성혐오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시절 여성은 그저 하등한 존재로 취급받았을 뿐이다. 여성혐오라는 말이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여성의 인권이 증진되고 남성과 동등한 존재임이 당연시된 현대에 들어서다.

코로나19는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고, 한국에서는 신천지교회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재생해냈다. 신천지와 클럽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은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비난받을 부분이 있다. 그러나 수많은 교회들이 예배를 강행하고 클럽들이 영업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들에게만 비난을 퍼붓는 것은 지나치다. 

<국민일보>는 ‘단독’까지 붙여 ‘게이 클럽’이라는 표현을 기사 제목에 달았다. 자신들이 언론이라기보다 ‘성소수자 혐오 집단’에 가깝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신천지는 특유의 예배방식이나 폐쇄성이 확산에 기여했다고 볼 여지라도 있지만, 클럽 집단감염은 그들이 성소수자인 것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일이다. 해당 언론사는 이후 지속적으로 자신들이 보인 성소수자 혐오가 정당한 것이며, 다른 언론들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국민일보>는 5월 7일, '단독' 타이틀을 내걸고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이태원 클럽이 '게이 클럽'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불필요하게 성적 지향과 관련한 정보를 언급해 저널리즘 원칙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일보>는 반성은커녕, 4일 뒤 한국교회언론회(유만석 대표)가 낸 '팬데믹 상황에서 동성애 보호가 더 중요한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전면 광고로 게재했다. 사진은 4일 <국민일보>에 실린 광고. © <국민일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진보 언론뿐 아니라 일부 보수 언론까지도 이 자극적인 제목을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해당 언론사 노조 역시 비판에 동참했다. 수많은 시민과 언론이 이 행위가 혐오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이 한층 성숙해가고 있음을 뜻한다.

혐오를 혐오라 인식하는 사회는, 평등에 가까워지고 있는 사회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 혐오를 당연시하던 시기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여성이 남성의 재산으로 취급받고 부인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기에 ‘여성혐오를 멈추라’는 말이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성소수자를 하등한 존재로 취급하던 과거에는 ‘성소수자 혐오를 멈추라’는 말이 나올 수조차 없었으니까.

혐오를 인식했으면, 이제는 혐오를 뛰어넘어야 한다. 우리 국회는 UN에서 지겹도록 날아오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십 수년째 묵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지만 지난 대선 때는 슬쩍 태도를 바꿨다. 문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2019년 KBS 신년여론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국민은 64%에 이르렀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177석을 갖고 출발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강하게 주장해온 정의당만 합쳐도 선진화법을 건너뛰고 바로 입법할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재난에서 배우는 것이 ‘디지털 뉴딜’ 뿐이라면, 여당이자 압도적 제1당이 당명으로 명시한 ‘더불어’라는 이름이 아깝다.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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