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아프리카 난민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난민 신청자 야오(Yao∙35) 씨는 자기 이름으로 불리어 본 지가 까마득하다. 작년 여름 한국에 들어와 공장들을 떠돌며 그가 들었던 이름은 ‘X 같은 XX’, ‘시커먼 XX’ 등 욕설로 된 것들이었다. 본명인 ‘야오’ 대신 우리말 반말인 ‘야’로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인천의 조그마한 화학공장에서 일하던 야오 씨는 “처음 와서 보니 내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걸 알고 계속 욕설과 피부색과 관련된 표현을 썼다”며 “한 번은 너무 화가 나 따졌더니 그마저 어눌하다며 비웃었다”고 말했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난민 신청자 신분으로 몇 달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아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아프리카 난민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인권유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리비아로 건너갔다 돌아온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자기가 겪은 인권유린 실태를 폭로하고 있다. © KBS

이름만이 아니었다. 난민 신분이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용직 노동자처럼 일했다. 오전 여덟 시쯤 출근하면 밤 아홉 시 넘어 일이 끝났다. 플라스틱 재료를 특수물질에 담갔다 꺼내면 금속제품처럼 표면이 변하는 공정에서 일했는데, 냄새가 지독한 화학약품을 다루는데도 마스크나 안전장비 없이 종일 일했다. 

그 자신은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근로기준법이나 주52시간제, 최저임금제 같은 것은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일이었다. 그가 그렇게 일하고 받은 돈은 한 달에 100만 원이 채 안됐다. 같은 일을 하는 한국인 직원이 받는 월급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받았다. 거기서도 석 달 만에 쫓겨나 지금은 인력시장에 나가 하루 일을 찾는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생존을 유지한다. 불안정한 수입으로 인천 서구 한 서민주택가 연립주택 반지하 방 두 칸짜리에 월세 30만 원을 내고 친구 3명이 함께 지낸다.

외국인 중에서도 차별받는 아프리카 노동자들

▲ 국내 등록외국인 주요 국적별 현황. © 조한주

현재 우리나라에 장기체류하면서 주거지와 연락처를 등록한 ‘등록외국인’은 지난 4월 말 기준 124만9026명으로 우리 전체 인구의 2.4%에 이른다.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에 따르면 국내 등록외국인의 국적 분포는 한국계 중국인을 포함한 중국인이 52만 1086명(41.7%)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인 18만7400명(15.0%), 우즈베키스탄인 5만6137명(4.5%), 필리핀인 4만4577명(3.6%), 캄보디아인 4만3174명(3.5%), 네팔인 4만1055명(3.3%) 순이다.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 등록자 수는 따로 통계를 내놓지 않아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 체류자 2만347명 중 장기체류자가 1만8322명인 것을 감안하면 아프리카 출신 등록외국인 숫자는 이보다 약간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야오 씨처럼 난민 신청을 해놓고 단기 일자리를 찾고 있거나 장기체류 비자를 받고 일하는 아프리카 노동자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임시비자인 G-1 비자를 발급받은 사람이 7,222명에 이르고 비전문취업비자를 발급받은 사람이 73명인 점에 비추어 6천~7천 명쯤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인천의 한 인력사무소에 내걸린 공장 노동자 구인공고. 아프리카 출신을 제외한 모든 나라 출신 노동자를 구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 조한주

국내 아프리카 노동자 6천~7천

이처럼 아프리카 노동자는 숫자로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그들이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들의 바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갈수록 계층분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국내 외국인 노동자 세계에서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맨 밑바닥을 형성하면서 차별과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요? 말이 잘 통하는 것도 아니고. 외모도 좀 그렇고. 너무 다르잖아요. 주로 농장같이 몸을 많이 쓰는 쪽에서 일해요. 단순히 힘만 써도 괜찮은 일들이요.”

서울 구로구 대림동 ㅎ 직업소개소 관계자는 “요즘 외국인 노동자들 일자리를 보면 차츰 계층이 생기는 것 같다”며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가장 조건이 나쁘고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하는 곳으로 간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일자리의 최상층을 형성하는 것은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들로, 이들은 주로 서울 명동 등의 중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식당 종업원과 면세점이나 화장품∙옷가게 점원 등으로 일하면서 수입도 가장 많다고 한다. 이들은 외모가 한국인과 거의 차이가 없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함께 구사할 수 있어 중국 관광객을 상대하는 업종에서 많이 찾고 산후조리원이나 가사도우미 등 조건 좋은 일자리를 찾아간다. 

▲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찾는 서울 구로구의 한 인력사무소에 농작물 수확이나 태양광 설치 작업에 필요한 인력을 구한다는 공고가 붙어 있다. ‘말 못 해도 됨’이란 내용이 눈에 띄는데,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 등을 위험하고 힘든 곳으로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 조한주

다음으로는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멀어 보이지 않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주로 공장이나 식당 등에서 일하고,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꺼리는 그들만의 3D업종 일자리를 채운다. 

난민 신분 악용한 차별과 인권유린

광주광역시에 있는 아프리카인권센터 관계자는 "피부색도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다 보니 고용주들이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을 꺼리는 것 같다”며 "그래서 인력 사무소 같은 곳에서 눈에 안 띄고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손이 부족하고 힘들고 위험한 건설 현장의 막노동이나 영세한 공장의 단순노동과 농작물 수확기에 단기적으로 인력이 필요한 곳 등으로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꺼리는 3D(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업종 일자리가 이젠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도 바닥층을 형성하고 있는 아프리카 노동자들에게 떠맡기는 것은 난민이란 신분상 취약점을 악용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계 중국인이나 중국∙말레이시아 등 외국인고용허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나라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신들 권익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대부분 난민 신청자 비자를 지니고 있는 신분상 취약점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기 어렵고 일자리를 얻어도 차별과 무시를 당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일하려는 외국인 노동자는 E-9이나 H-2 비자를 받아야 한다. E-9 비자는 비전문취업비자로, 한국어 시험과 건강검진 등 절차를 거쳐 구직등록한 일반 외국인 노동자가 받는 비자다. 모든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중국,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등 16개 나라 출신들만 E-9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 비자를 받으면 건설공사장이나 농작물 재배장, 축산업, 연안어업과 양식업 및 염전, 건설폐기물처리장과 냉장∙냉동창고 현장 등에서 일할 수 있다.

H-2 비자는 한국계 동포를 대상으로 발급해주는 것으로, 한국어 시험이 필요 없고 입국 후 취업 교육을 수료하면 받을 수 있는 비자다. 두 가지 비자 모두 입국한 날부터 3년 동안 취업 활동을 할 수 있고, 취업 기간 3년이 만료돼 출국하기 전에 사용자가 노동부에 재고용 허가를 요청하면, 해당 외국인 노동자는 1회에 한해 2년 미만 범위에서 취업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온 노동자들은 비전문 취업비자를 받을 수 없고, 대부분 난민신청자에게 주는 G-1-5 비자 등 G-1 임시비자를 받고 체류 중이다. 난민신청자 비자를 받고 1차 난민심사기간인 6개월이 지나면 구직활동이 가능하며 사행업소와 풍속업소를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구직이 가능하다. 

난민신청자들은 이런 절차에 따라 일자리를 구해도 제대로 된 처우나 권익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합법적으로 비자를 발급받고 취업하는데도 고용주들이 이들을 ‘불법체류자’ 취급을 하면서, 신분상 취약점 때문에 법적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고용계약서 작성을 꺼리고 임금 지급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난민 신청을 하려는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KBS

계약도 구두계약이 대부분이고 계약서를 써도 법무부에 제출할 정식 고용계약서가 아닌 약식으로 쓰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인천의 한 직업소개소 직원은 "많은 곳에서 아프리카 노동자들을 일용직으로 고용할 때는 물론이고, 몇 달을 일하기로 해도 계약서 같은 건 잘 안 쓴다"며 "월급도 계좌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금을 주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자업자득이란 지적도 일리는 있다.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나도 이에 불복해 2차, 3차 소송을 제기하면 최대 3년까지 합법적인 체류가 가능하다. 처음 신청하고 6개월의 1차 난민심사기간이 지나면 '체류자격 외 활동 허가'를 해주기 때문에 그 기간만 넘기면 오히려 H-2 비자 같은 취업용 비자보다 더 쉽게 취업할 수 있다.

▲ 광주광역시의 한 외국인 노동자 쉼터에서 나이지리아 출신 노동자들이 회식을 하고 있다. © 광주 아프리카인권센터

하지만 한국인이 기피해 외국인 노동자가 대신해온 3D 직종 일을 이제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이 떠맡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처우와 인권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편집 : 박서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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