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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

기사승인 2020.05.28  19: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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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사전] ‘극우 개신교’

   
▲ 김계범 기자

“교회는 로마로 가서 제도가 되었고,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으며, 마침내 미국으로 가서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쿼바디스>에 나오는 대사이다. 우리나라에서 교회 성장 과정을 보면 경제 발전 과정과 너무나 비슷하다. 위 구절은 많은 개신교 성도들에게 더 아프게 다가갔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다. 일요일마다 교회 가는 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습관이었다. 불과 일 년여 전까지도 교회에 다니며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왔다. 어쩌다 보니 졸업한 고등학교와 대학교도 모두 개신교 미션스쿨이었다. 지금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시간 내어 성경을 읽고 예수를 닮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교회 예배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많다. 여기서 다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교회에 염증을 느낀 몇 가지 사례만 소개하려 한다. 내가 자라고 이사도 하면서 몇 교회를 옮겨 다니게 됐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교회가 성도 간 싸움으로 분열했다. 대개 ‘돈’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나마 정 붙이고 오래 다니던 교회에서는 성도들을 상대로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을 벌이고, 목사가 설교시간에 ‘성도 여러분, 남자 며느리 보고 싶으세요’라는 혐오발언을 농담이랍시고 내뱉기도 했다. 강단 위 목사님의 ‘하나님 말씀’에 강단 아래 모여 앉은 나 같은 성도들은 아무도 대놓고 예배 시간에 반기를 들 수 없었다. 

평화와 치유를 도와야 할 교회가 우리나라에서 분열의 도구로 변질된 지 오래다. ‘집회에 나오면 코로나 안 걸린다’는 말은 단순히 한 목사의 일탈이라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일부 보수 개신교회 목사들이 극우 정치인들과 함께 집회를 함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물론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자유는 이미 초법적인 자유로서 우리 사회의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 안병용 경기 의정부시장이 27일 주사랑교회 문에 집합금지 명령 통지서를 붙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의정부, 구미 등 전국의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나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교회가 전염병을 전파하는 공간이 아닌 진정 예수의 사랑을 전파하고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곳이 되려면 지금은 현장예배보다는 정부 방역지침을 따르는 게 먼저다.

우리 헌법은 종교의 자유도 보장하지만, 헌법 37조 2항에 따라 예배와 집회 역시 제한할 수 있다. 신천지든 개신교든 마찬가지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정부가 개신교 교회 현장예배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는데도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현장예배를 강행하고 있다. 국가와 법 위에 교회가 있는 셈이다. 예배 강행의 밑바탕에는 재정적인 이유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무리한 성전 건축을 하면서 ‘빚으로 지은 예배당’을 유지하기 위한 것도 원인 중 하나다. 

‘못 말리는’ 개신교의 현장예배 강행에도 정부가 더욱 강력한 제재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극우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정치권이 교회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나 총선 때면 지역 대형교회 예배 시간에 선거 출마자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다. 종교인 과세 문제 등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개신교계는 자신과 이웃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고 스스로 현장예배를 중단해야 마땅하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정신을 짓밟고 언어폭력을 자행하는 정치 집회에 앞장선 극우 개신교 세력들은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뒤에 그들을 비호하거나 침묵하는 이른바 ‘자유 우파’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제1야당 대표라는 사람은 “교회 내에서 감염이 발생된 사실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극우 개신교 목사들이 광장에서 쏟아내는 막말들은 민심을 왜곡하고 광장의 촛불정신을 오염시켰다. 

현 상황은 정치와 종교가 유착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코로나 사태에도 여전히 예배를 강행하는 목사님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알다시피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목사님들에게 과연 무엇이 ‘아버지의 뜻’인지 묻고 싶다. 한국 개신교의 큰 어른이던 옥한흠 목사의 말은 오늘날 더욱 울림이 크다. 

“한국 교회 모든 책임은 교역자가 져야 돼요. 교역자가 돈 사랑하지 않는데 교인들이 돈 사랑하려고 하겠어요? 교역자가 음란하지 않은데 교인들이 간음죄를 범하겠어요? 교역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벌벌 떠는데 교인들이 거짓말을 함부로 하겠어요? 오늘날 한국교회 총체적인 위기는 교역자가 책임져야 돼요. 입만 살았죠. 실상은 주님 눈앞에 죽은 자와 같아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이제 광장의 목사들이 답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우리 사회와 함께 엄청난 성장을 했다. 그러나 교회가 외연 확장에 집중할수록 속은 병들어 이제는 곪을 대로 곪았다. 종교는 우리 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격동의 시기를 건너오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이제 우리 개신교가 종교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루고 예수가 말하는 사랑을 실천하길 바란다. 예수가 말하는 사랑의 실천을 이 땅 위에서 이뤄 나갈 때 비로소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천국과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강찬구 기자

김계범 기자 aiolos1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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