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 10주기 세미나] ② 지식인 리영희, 회고와 미래

리영희재단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하는 [리영희 선생 10주기 세미나]가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 찾기’를 주제로 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필동 <뉴스타파> 지하 리영희홀에서 열렸다. <단비뉴스>는 세미나의 발제와 토론 내용을 ‘기자 리영희’와 ‘지식인 리영희, 회고와 미래’ 두 편으로 나눠 중계한다. (편집자)

① 기자 리영희
② 지식인 리영희, 회고와 미래

▲ 왼쪽부터 2세션 사회자 김동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소장, 발표자 정용준 전북대 교수, 토론자 최민희 전 국회의원과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김성진

‘탈진실 시대’ 실천적 지식인의 역할

‘기성세대가 되면서 마음 속으로 리영희 선생님을 외면하고 있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져서 독재시절에 형성됐던 선생님의 ‘실천적 지식인’ 개념도 끝났다는 합리화를 해본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촛불이 대변하는 개혁은 절실하다. 개혁대상은 검찰과 언론으로 범위를 넓혀간다. 선생님은 10년 전 작고하셨지만, ‘실천적 지식인’은 시대의 화두로서 유효하다.’

김동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소장이 사회를 맡은 제2세션 ‘지식인 리영희’에서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386 세대의 리영희 감상문’을 발표했다. 정 교수는 “강자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약자 위에 군림하는 기회주의 언론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며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촛불 시대에 실천적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리영희 선생의 언론사상이 가지는 함의를 강조했다.

정 교수는 탈진실과 가짜뉴스의 문제는 디지털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며 저널리즘 본질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진실과 가짜뉴스의 문제는 리영희 선생 시대에도 있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단독 지식인으로서 기자상은 지금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정 교수는 리영희 선생이 강조한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와 전문성은 시대가 가도 언론인이 추구해야 할 절대적 진리라고 말했다.

요즘 지식인은 투옥이나 해직 위험도 없는데 왜?  

토론자인 최민희 전 국회의원은 “월간 <말> 기자로 일하며 리영희 선생의 팩트 체커 정신을 배웠다”며 검찰발(發) 받아쓰기와 ‘복붙’(복사해서 붙여넣은) 기사가 익숙한 기자들의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그는 “지식인이란 말을 지금 기자들에겐 붙일 수 없을 것 같다”면서 “검찰이 불러준 말을 단독 기사로 받아 적거나 ‘복붙’ 기사가 줄지어 올라오는 걸 보고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 혁명을 통해 언론개혁을 향한 순백의 목소리가 드러났다며 언론개혁을 주도할 세력은 널리 형성돼 있기 때문에 결국 핵심은 개혁의 방향과 국회의 유능함이라고 강조했다.

최 전 의원은 지금 언론 지형이 리영희 선생이 살던 이념, 독재, 레거시 미디어의 시대와 다르다고 보고 지금은 새 의미를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1인미디어 열풍이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을 상쇄할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리영희 선생님이 이전 시대에 큰 틀을 구성했던 언론에 관한 외적 문제 제기가 아직 타당한가 생각해야 한다”면서 “1인미디어의 순기능을 연구하고 역기능은 어떻게 해소할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386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386 세대가 젊은이들에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는 제도권 안에서 안위를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지금 리영희 선생처럼 글 쓴다고 감옥 가거나 직장에서 쫓겨날 걱정도 없다”면서 “전과 다르게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등 우리 목소리를 낼 매체도 있는데 아닌 건 지적하고 감춘 사실은 밝혀내야 지식인의 권위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진실이 힘을 잃은 시대에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리영희 선생의 독보적인 역할은 당시 한국 언론이 외면한 68혁명과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알린 거라고 봤다. 한 교수는 “지금 시대에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진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라면서 “리영희 선생이 활동한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변한 환경 속에는 리영희 선생을 어떻게 모실 것인가 고민을 같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을 절대 포기하지 않은 리영희의 추억 

▲ 리영희 선생 책 <역설의 변증>을 소개하면서 3세션을 시작한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 조한주

“그 옛날의 언론인 리영희 기자와 오늘의 기자들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리영희 기자는 인간을 억압하며 고통을 주는 세계의 모든 주요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고민하고 괴로워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진실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에 도전했습니다. 신문사에서 쫓겨나거나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 기자들은 너무나 왜소하고 저열하고 비겁합니다. 직장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그들에겐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위험입니다. 언론사의 사주나 간부들이 내려 보내는 ‘사내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를 뿐 저항정신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사 쓸 때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 체질화해 있습니다. 기자가 아니라 그저 월급이나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언론사의 종업원이나 다름없습니다.”

제3세션 사회를 맡은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역설의 변증>이라는 책과 함께 발표자인 신홍범 선생을 소개했다. 최 교수는 “리영희 선생이 두레출판사 대표인 신홍범 선생께서 보도지침 사건으로 감옥에 계실 때 ‘옥바라지용’으로 이 책을 두레에서 내게 했다’며 “이 책의 서문에서 신 선생님의 건강을 빌었다”고 이야기했다.

▲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천형을 받은 것”이며 리영희 선생은 천형을 짊어지고 살았다고 말하는 신홍범 두레 대표. ⓒ 조한주

<조선일보> 외신부와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리영희 선생과 함께 일한 신홍범 도서출판 두레 대표는 ‘추억 속의 언론인 리영희 선생: 베트남전쟁 보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그를 회고하고 언론 현실을 개탄했다.

“상식을 믿지 말라”는 가르침

“저는 <조선일보>에서 리영희 외신부장이 베트남전쟁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을 보면서 기자가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기자가 진실을 밝혀 세상에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죠. 그분은 거듭 우리에게 강조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사건의 앞면만 보고 진실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반드시 뒷면을 보아야 하고 옆도 보고 깊이까지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 신홍범 대표의 두레출판사가 94년 출판한 리영희 선생 책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보수 쪽에서도 요즘 정치적으로 밀리니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을 할 정도로 리영희 선생의 영향력은 컸다. ⓒ 이봉수

신홍범 대표는 “리영희 부장이 도그마와 고정관념을 믿지 말고 상식을 믿지 말라 했다”며 “한마디로 항상 깨어 있으면서 모든 것을 의심하라 했다”고 전했다. 리영희 선생이 믿지 말라고 한 우상은 냉전 이데올로기였다. 당시의 우상은 ‘베트남전쟁은 성전’이며 베트남이 공산화하면 동남아 전체가 공산화한다는 ‘도미노 이론’과 미국의 절대적인 힘 앞에 불가능은 없다는 ‘미국 신화’였다.

그가 리영희 선생에게 받은 가장 큰 감동은 ‘진실을 밝혀 세상에 알리려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용기’였다. 당시 베트남전쟁은 우리나라가 총 30만 병력을 파병한 전쟁이었는데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 리영희 선생은 ‘박정희 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거나 다름없었다. 신 대표는 “리영희 선생이 진실을 강조한 이유는 진실에는 가야 할 미래를 가리키는 가치가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영희 선생은 그런 소신을 지키느라 투옥과 해직 등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현실을 떠나지 않고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

▲ 왼쪽부터 발표자 신홍범 두레 대표, 토론자인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오정훈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오한흥 <옥천신문> 대표. ⓒ 김계범

‘진실을 말하기 어렵다’는 핑계  

토론에 나선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미국의 지배체제가 만들어낸 우상을 비판하고 미국이 세계 각국에서 벌인 제국주의 전쟁에서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간하는 여러 자료들을 비교 검증하면서 허점을 발견해 정부를 비판한 I.F.스톤의 삶을 평전으로 읽으며 리영희 선생님과 너무나 유사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방송 제작 이후에 겪은 자신의 비화를 들려주며 주류 언론의 거짓 선전과 선동보도가 끼치는 해악을 여실히 느꼈다고 한다. 또 리영희 선생이 1988년 발표한 <남북한 전쟁 수행능력 비교연구> 논문을 여전히 탐사보도의 본보기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기레기’ ‘기더기’를 넘어 언론개혁 

오정훈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자신이 리영희 선생의 ‘제자’ 세대라며 그가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자기 뜻과 비판적인 사고와 글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했다는 그런 전범이 있었기에 우리 후배들도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부끄러움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기레기’에 이어 ‘기더기’로 불리는 언론 현실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언론개혁은 “어떤 특정 언론을 쓸어버리는 형태로 이루어져서 안 되고 오히려 올바르고 제대로 된 보도를 하는 언론을 육성하는 방식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있는 언론이 살아남아야 하며 내부에서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사는 퇴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짜뉴스와 오보, 그리고 범죄행위에 가까운 취재를 하는 언론사에 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보도 관행을 고치려면 저널리즘 원칙을 지킨 기사들이 포털이나 검색엔진에서 제대로 검색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 참여는 물론이고 보수적이거나 수구적인 언론 세력도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미디어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언론에 관심 갖는 것도 언론개혁”

오한흥 <옥천신문> 대표는 리영희 선생의 위대성은 <조선일보>에 들어가서 저널리즘을 구현한 것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언론을 가리켜 ‘기레기’ ‘기더기’라고만 할 게 아니라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론개혁도, 비록 작지만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지역언론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 세미나 영상은 아래 리영희재단 페이스북 페이지 링크에서 시청할 수 있다.

리영희 선생 10주기 세미나 영상


한국은 보수·진보의 기울어진 언론 지형과 극성스런 가짜뉴스 등으로 건전한 여론형성이 힘든 사회입니다. 제대로 이슈화가 안 되니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갈등이 잠복하는, 이른바 ‘Non-issue, Non-decision Society’가 바로 한국입니다. 주요 정책이나 법을 결정할 때 공론화 또는 숙의 과정이 한국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 또는 소수자의 건강한 목소리조차 기성 언론은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네이버> <다음> 포털과도 뉴스검색제휴를 한 <단비뉴스>가 여러분의 목소리를 확성하는 [여론광장]을 개설합니다. 자료를 미리 보내주시면 취재에 도움이 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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