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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으로서 기자’가 더욱 절실한 시대

기사승인 2020.05.09  23: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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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주 기자 박서정 PD yourglim23@naver.com

- [리영희 선생 10주기 세미나] ① 기자 리영희

리영희재단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하는 [리영희 선생 10주기 세미나]가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 찾기’를 주제로 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필동 <뉴스타파> 지하 리영희홀에서 열렸다. <단비뉴스>는 세미나의 발제와 토론 내용을 ‘기자 리영희’와 ‘지식인 리영희, 회고와 미래’ 두 편으로 나눠 중계한다. (편집자)

① 기자 리영희
② 지식인 리영희, 회고와 미래


   
▲ 리영희 선생은 정파성에 매몰되지 않고 전문지식을 갖춘 기자의 모범으로 일컬어진다. ⓒ 리영희재단

‘진실 상실 시대’ 어떻게 진실을 찾을까?

리영희재단 백영서 이사장은 ‘코로나 상황’임에도 1백여명 청중이 다 앉지 못할 정도로 꽉 찬 리영희홀을 바라보며 인사말을 했다. 그는 “행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며 “리영희 선생은 언론인과 학자 중에 언론인으로서 정체성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기에 오늘과 같은 언론 상황에서 이런 행사를 여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손병우 언론정보학회장은 “1년간 개최한 세미나 중에 오늘 행사가 가장 섭외하기 수월했는데, 리영희 선생 덕분인 것 같다”며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아직도 깊이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 백영서 리영희재단 이사장(왼쪽)과 손병우 언론정보학회장이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조한주, 리영희재단

전통언론의 실패와 탈언론의 대안 부재

“탈언론의 확대는 전통적 언론의 실패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탈언론이 전통적 언론의 대안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탈언론은 당파성이 지나치게 강하며, 음모론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탈진실의 시대와 저널리즘의 공백, 어느 게 먼저인지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언론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가 사회를 맡은 첫 세션 ‘기자 리영희’ 편에서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는 ‘언론의 위기와 탈진실의 시대에 기자 리영희를 다시 생각한다’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경향신문> 법조기자 출신인 박 교수는 “리영희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와 지금 언론 현실이 많이 다르다”며 현재 언론 현실을 “‘전통적 언론’과 ‘탈언론’ 사이의 대립과 경쟁”이라고 진단했다.

‘전통적 언론’이란 신문과 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와 그에 소속된 주체들의 실천이며, ‘탈언론’은 SNS, 팟캐스트,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한 주체들의 실천을 말한다. ‘전통적 언론’을 향한 불신이 ‘탈언론’을 향한 수요를 높였지만, 아직까지 ‘탈언론’은 ‘전통적 언론’의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 둘은 서로 대항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한다.

   
▲ 왼쪽부터 사회자 이봉수 세명대 교수, 발표자 박영흠 협성대 교수, 토론자 정필모 국회의원 당선인과 최승호 전 MBC 사장. ⓒ 박서정

‘기레기’의 전신 ‘언롱인’ 

리영희 선생은 1988년 <한국기자협회보>에 기고한 ‘후배기자들에게 하는 당부’에서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인들을 가리켜 ‘언롱인(言弄人)’이라 불렀다. 기자가 ‘기레기’로 조롱받는 오늘날에 앞서 언론인의 일탈행위를 꼬집은 것이다. 박 교수는 “언롱인이 아니라 언론인이 되려면 지사(志士)로서 기자, 즉 관료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계적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신봉하고 출입처 관행 같은 ‘내부의 힘’에 종속된 지금 기자들에게 리영희 선생의 말과 행동은 깊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리영희 선생이 2020년에 다시 ‘후배 기자들에게 하는 당부’라는 글을 쓴다면, 아마 세 가지 정도를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조직의 통제와 낡은 관행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 정파주의적 비판에서 탈피하는 것, 마지막으로 기자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될 겁니다. 오늘날 기자들은 취재만 하고 공부하는 기자가 없다고 꾸짖을 것 같습니다.” 

‘기자 리영희’의 특종은 대부분 치열한 자료 수집과 학습의 결과물이지만, 오늘날 대다수 ‘특종’은 문서화한 글보다 취재원의 입에서 나온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문화가 조성되어 ‘술 잘 먹는 기자가 일 잘하는 기자’로 평가받는데, 공부하는 기자가 일 잘하는 기자로 평가받아야 지식인으로서 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노선을 의심 없이 따르라 강요”

박 교수는 또 탈언론의 정파성이 전통적 언론의 정파성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영희 선생은 “언론이란 지배자나 강자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편부당한 자세로 시민을 위해 진실을 공정하게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일부 탈언론이 음모론을 퍼뜨리고 정파성에 기대고 있는 만큼 탈언론도 전통적 언론과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리영희 선생이 하나의 노선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탈언론은 하나의 노선을 의심과 성찰 없이 따를 것을 종용한다”며 탈언론의 맹목성을 지적했다. 

“탈언론이 사회악이고 폐기처분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게 아닙니다. 탈언론 현상에도 풍부한 민주주의 실현의 잠재성이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탈언론을 더 많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영희) 선생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리영희 선생은 지식인으로서 기자가 되려면 비판정신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독재, 냉전, 이데올로기, 숭미주의, 제국주의 전쟁, 천민자본주의 등이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출입기자였던 박 교수는 ‘검찰 출입기자의 뉴스 생산 관행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출입처 제도 문제 심각

그는 출입처 제도의 문제도 언급했다. 수사 과정을 빠르게 보도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되어버린 지금, 검찰 출입기자들에겐 검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측에서 들은 단편적인 한두 마디를 바탕으로 보도하는데, 이 한두 마디를 듣기 위해 기자가 ‘을’이 되어 취재원에게 매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해외 학자들의 연구가 선생의 가르침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포인터연구소는 2014년 디지털 시대의 핵심적 언론 윤리 중 첫 번째 원칙으로 진실을 추구하고 정확하게 보도하라고 제안했다. 또 포퓰리즘 시대에 필요한 저널리즘의 윤리를 정립한 스티븐 워드는 “디지털 시대에 저널리스트는 중립적인 사실의 속기사가 되어서도, 정파주의의 전도사가 되어서도 안 된다”며 ‘민주적으로 관여하는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에 관해 박 교수는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기자의 적극적인 가치 판단을 통해 이슈에 개입하되,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불편부당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그는 “이 이야기가 리영희 선생께서 말씀하시고 실천하신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며 “(이것이) 우리가 언론의 위기 앞에서 리영희를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 1974년에 첫 출판돼 저자인 리영희 선생에게 ‘사상의 은사’라는 경칭과 함께 공안당국으로부터 ‘의식화의 원흉’이란 멸칭을 듣게 한 <전환시대의 논리>. ⓒ 이봉수

자체 정화 못하는 언론계 조직문화

토론에 나선 정필모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언론의 궁극적 목표는 사실을 퍼즐처럼 맞춰 진실을 밝히는 것이어서, 맥락을 중요하게 보고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애초에 조작된 정보도 문제지만, 사실을 교묘하게 비튼 보도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성언론 다수가 사실을 끼워 맞출 때 정파 논리에 따라 진실을 묻어버린다는 것이다. 

사회자인 이봉수 교수가 “리영희 선생님의 저서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는 1993년 새 KBS 노조를 격려하는 글에 ‘오욕의 역사를 청산해야’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오욕의 역사는 왜 반복되느냐”고 질문하자, 정 당선인은 “이런 상황을 변혁하려면 언론사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고 답했다. 

“언론사 내부에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지금 소위 개혁적인 경영진이 들어섰는데도 KBS 보도가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부사장을 했지만 60점 밖에 못 줄 정도입니다. 조직 문화를 개선하려면 언론소비자운동 등 외부 충격도 필요합니다.”

그는 “기자들이 특권의식과 조직이기주의 때문에 쉽게 관행을 탈피하지 못한다”며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조직 바깥에서 충격을 주어야 전통 언론의 프레임을 깰 수 있다”고 말했다.

MBC 사장에서 물러나 뉴스타파로 복귀한 최승호 PD는 정파성과 광고 문제를 꼽았다. 그는 “방송사 경영을 했던 입장에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며 “예를 들면 ‘총선에 맞춰 확진자 수를 줄이고 있다’는 식의 가짜뉴스가 기성언론을 통해 가감없이 소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지식과 직업윤리 시간 들여 교육해야

사회자 이 교수가 “앞으로 기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묻자, 최 PD는 “리영희 선생처럼 사실을 철저히 검증하고 탐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사망했다고 CNN 보도를 그대로 받아서 보도하는 태도는 선생이 저서 <역정>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지적한 행태다. 최 PD는 “리영희 선생은 탐구정신 덕분에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동기들보다 더 뛰어난 기자로 성장했고,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현실을 바꾸려 했다”며 “기자지망생이라면 <역정>과 <대화>를 읽어 보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정 당선인은 같은 질문에 “전문지식과 직업윤리를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술자리나 골프 등에서 취재원과 접촉을 늘리다 보면 특종을 얻는다는 기자들이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리영희 선생처럼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는 단독이나 특종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당선인은 최소 5년 정도는 직업 윤리와 태도를 교육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또 “공영방송의 사장 선출 과정에 시청자와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 각층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생활 방역 지침에 따라 참가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발표와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 박서정

1세션은 이봉수 교수의 마무리 발언으로 끝났다.

“리영희 선생님은 자신의 글이 하루 빨리 읽을 필요가 없는 구문이나 넋두리가 되어버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왜곡 보도가 더 심한 상황으로 후퇴해버렸습니다. 우리가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기고 반성해야 하는 때가 바로 요즘입니다.”

세미나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던 천수빈(24·성신여대 사학과 4학년) 씨는 “기자지망생이어서 리영희 선생님을 사표로 삼고 싶다”며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는 지사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발표∙토론∙사회자 13명 말고도 리영희 선생의 부인인 윤영자 여사와 따님인 이미정 리영희재단 이사, 한겨레신문사의 임재경 전 부사장, 김현대 사장, 곽정수 논설위원, 방송문화진흥회의 김상균 이사장, 김형배 감사, 뉴스통신진흥회 강기석 이사장, 환경운동연합의 지영선 전 대표, 권태선 공동대표, MBC의 박성제 사장, 송일준 광주M 사장, 박건식 정책협력부장, 전국언론노조의 신학림 전 위원장(뉴스타파 전문위원), 오정훈 위원장, 송현준 수석부위원장, 언론학계 이원섭∙정연우∙김창남 등 전현직 교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윤창빈 전문위원, 리영희재단 이병호 사무국장, <주간금요일> 우에무라 다카시 사장 등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 세미나 영상은 아래 리영희재단 페이스북 페이지 링크에서 시청할 수 있다.

리영희 선생 10주기 세미나 영상


한국은 보수·진보의 기울어진 언론 지형과 극성스런 가짜뉴스 등으로 건전한 여론형성이 힘든 사회입니다. 제대로 이슈화가 안 되니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갈등이 잠복하는, 이른바 ‘Non-issue, Non-decision Society’가 바로 한국입니다. 주요 정책이나 법을 결정할 때 공론화 또는 숙의 과정이 한국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 또는 소수자의 건강한 목소리조차 기성 언론은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네이버> <다음> 포털과도 뉴스검색제휴를 한 <단비뉴스>가 여러분의 목소리를 확성하는 [여론광장]을 개설합니다. 자료를 미리 보내주시면 취재에 도움이 됩니다. (편집자)

편집 :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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