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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검은 옷 입고 마스크 안 쓰지?

기사승인 2020.05.04  22: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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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비현장] ‘코로나19’ 브리핑 수어통역사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1월 20일 이후 매일 진행되는 질병관리본부 브리핑에는 발표자 옆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농아인(聾啞人)들에게 발표 내용을 전해주는 수어(手語)통역사다. 간혹 발표자는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기도 하는데, 수어통역사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발표자는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고 있는데 수어통역사들은 모두 검은 정장이나 검정색 옷차림으로 나온다. 왜 그럴까?

   
▲ 서울시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전찬우 수어통역사(오른쪽)가 발표 내용을 통역하고 있다. 발표자들은 노란 점퍼에 마스크를 걸친 모습인데 전 통역사는 검은 정장에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 서울시

수어통역사들이 코로나19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전 국민이 사용하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통역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어렵고 예민하고 중요한 용어들이 쏟아지는 발표 내용에 맞춰 손짓, 몸짓과 함께 얼굴 근육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눈을 크게 떠서 눈썹을 치켜세웠다가 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입을 크게 벌리거나 볼에 공기를 가득 머금기도 한다. 수어통역사가 마스크를 쓰고 나오면 가려져 볼 수 없는 표정들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은 손짓 몸짓과 함께 얼굴 표정과 입 모양 등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써버리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지난달 29일 만난 서울시 수어통역센터 전찬우 수어통역사는 “표정 없이 손짓만 하면 의미가 절반밖에 전달되지 않는다”며 “수어통역사는 말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당연히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등록된 청각장애인 수는 36만3천명이 넘는다. 이들이 코로나19와 관련된 일일 브리핑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예방수칙이나 확진자 동선 같은 정보들을 잘 모르고 생활하다 감염이라도 되면 당장 그 사람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청각장애인 본인의 건강과 안전은 물론 감염 확산을 막으려면 그들도 감염예방 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관한 구체적 행동지침 등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통역한다는 것이다.

수어통역사들이 하나같이 검은 정장이나 어두운 색 옷을 입고 나오는 데도 이유가 있다. 전 통역사는 “멀리서 봐도 손짓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게 해서 의사전달을 분명히 하려고 검은색 등 어두운 색깔 옷을 입어 배경을 어둡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1만2천개 남짓 ‘시각단어’로 일상생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매일 맞대결을 벌이는 공무원이나 의료진과 함께 수어통역사들도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농아인들과 바깥 세상을 연결해주는 수어통역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텔레비전 등을 통해 수어통역사가 주로 손짓을 하면서 통역하는 모습을 보면 수신호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수어통역이 이뤄지는 과정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상이다.

수어통역사나 농아인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하는 손과 얼굴표정, 몸짓 등으로 표현되는 수어는 시각언어다. 비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청각언어’는 ‘귀로 듣고 뇌로 이해해서 입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시각언어’는 ‘눈으로 보고 뇌로 이해해서 손짓 몸짓 표정 등으로 말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시각언어는 하나의 개념이나 모양 등을 설명하는 수어 단어를 만들 때 시각 이미지가 바탕이 된다. 따라서 사물의 모양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도상성’(圖像性: iconicity)이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화’를 나타내는 수어는 송수화기를 귀에 갖다 대는 형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구체적 모양이 있는 단어는 형상화해서 전달할 수 있어도 ‘사랑’ ‘평화’ 같은 추상적 어휘는 그렇게 본뜰 수가 없다. 이런 단어에서는 수어 형태와 의미를 임의로 연결해 표현하는 ‘자의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복지대 한국수어교원과 원성옥 교수는 “수어 단어는 도상성을 바탕으로 하되, 어떤 사물을 그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환유와 은유 등의 기법도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어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나 관습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나라마다 수어가 다른 것도 그런 까닭”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금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란 단어는 문자와 형상을 섞어 전달한다. 손으로 영어 ‘C’의 모양을 만들어 보여준 다음 한 손을 펴서 다섯 손가락을 펼치고 그 앞에 다른 손을 주먹으로 만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모양을 만들어 표시한다.

   
▲ '코로나19'와 '비말감염'을 뜻하는 수어 동작. 코로나19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앞 글자 'C'와 바이러스의 돌기 모양이 합쳐진 손동작으로 표현한다. ⓒ 문화체육관광부

현재 청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는 한국수어사전에 등재된 표제어 기준으로 모두 2만2884개에 이른다. 이 중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상어가 1만2587개이고 전문어가 1만297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는 우리말 단어가 약 42만개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말 단어의 약 5.4%밖에 안 되는 단어를 시각화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전에 실리지 않은 채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그때 그때 만들어 사용하는 ‘생산적 어휘’도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각언어는 이처럼 형상화한 단어들을 주로 사용해서 손짓 몸짓 표정 등을 섞어 표현하고 의사전달을 하지만 가끔 문자로 표현해야 할 상황에서는 지문자(指文字)와 지수자(指數字)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요즘 젊은이들이 잘 사용하는 ‘헉!’이란 표현은 손가락으로 지문자를 만들어 ‘헉’이란 글자를 보여주고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지문자는 우리말 자음(복자음 포함) 19개와 모음(복모음 포함) 17개를 손가락 모양으로 표시하고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 글자를 만들어 보여준다. 숫자도 손가락 모양으로 만들어 표현한다. 일반 명사는 형상화한 단어를 손짓 몸짓 등으로 표현하면 되는데 사람 이름처럼 고유명사이거나 새로 유행하는 말들은 형상으로 보여줄 수 없어 지문자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수어 지문자와 지숫자. ⓒ 성북구수어통역센터

손 모양 같아도 위치·움직임·표정 따라 의미 달라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수어는 크게 손의 형태나 움직임과 같은 수지 요소(manuals), 손 이외 얼굴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 등 비수지 요소(non-manuals)로 나뉜다. 수지·비수지 요소가 결합해 제대로 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음성 언어가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것처럼 수어 단어는 손의 모양(手形), 위치(手位), 움직임(手動), 방향(手向)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다 편 채 손을 이마 위에 두고 손가락을 흔들면 ‘닭’을 뜻하는데, 여기서 손 모양만 바꿔 검지(1지), 중지(2지), 엄지(5지)를 펴고 흔들면 ‘경찰’을 의미한다. ‘닭’을 뜻하는 손 모양을 턱에 갖다 대면 ‘아차’를 의미한다. 손 모양과 위치, 움직임,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멋’과 ‘배우다’라는 단어는 손 모양과 위치가 같지만 움직임 때문에 뜻이 다른 경우다.

   
▲ 손의 모양, 위치, 움직임, 방향에 따라 나타내는 단어가 달라진다. ⓒ 국립국어원 <한국수어 문법 연구>

얼굴 표정도 수어의 일부

청각장애인과 수어통역사는 사물을 설명하는 단어의 경우 수어사전에 등재돼 있는 형상화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부사로 표현하는 감정의 기복이나 일의 정도와 빈도 같은 것들은 얼굴 표정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은 ‘화났다’는 상태를 손짓 등으로 표현하지만 얼마나 화가 많이 났는지 등은 얼굴 표정이나 몸짓 등으로 표현한다.

청각장애인은 또 소리의 높낮이나 장단을 구분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비장애인이 신경질적인 큰 소리로 “야!”하면 화나서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뜻이 되고, 작고 은근한 목소리로 “야~”하면 부탁하거나 은근함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둘 다 그냥 ‘야’로 밖에 전달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상세한 차이점을 얼굴 표정이나 입 모양 등을 통해 표현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어에서 표현의 ‘디테일’은 표정으로 담아 전달한다. 실제로 수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대화할 때 얼굴에 초점을 맞춘다.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한국수어 문법 연구>는 ‘턱을 끌어당기기, 턱을 들기,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들기, 눈썹 올리기, 눈썹 내리기, 시선, 눈을 치켜뜨거나 감기, 여러 가지 형태의 입 벌리기, 상체의 방향 등 손과 손가락 이외의 동작, 그리고 당연히 동반되는 다양한 얼굴 표정 등의 자질들은 모두 비수지 요소’라고 설명한다. 한국농아인협회 수어통역센터 정희찬 중앙지원본부장은 “수어는 몸 전체가 말이라고 볼 수 있다”며 “표정뿐 아니라 몸을 앞이나 뒤로 기울이는지에 따라서도 느낌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어통역사들은 절대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다.

특히 청각장애인에게는 ‘의사소통’이 생명이나 생존의 문제와 직결될 때가 많아 얼굴 표정으로 전달하는 상세한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위급한 증세로 병원으로 실려온 청각장애인 환자가 아픈 상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시간을 놓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수어통역사들은 급하게 달려가서 수어통역을 해주어야 할 때가 많아 운전도 과속을 할 때가 많고 급하게 갈 수 없는 때는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을 한 뒤 비장애인 상대방과 통화하는 삼각통역을 할 때도 많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상대방 사고 당사자는 경찰에게 자유롭게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은 수어통역사가 와서 자기 의사를 이야기해줄 때까지는 속수무책으로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 발생 경위나 원인과 관련해 비장애인인 사고 당사자는 먼저 자기 주장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은 수어통역사과 와서 설명을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조사 담당자가 먼저 들은 이야기에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아 불리한 처분을 받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에도 본인 주장을 제대로 펼치기 어렵고 그러다 보면 재판부가 청각장애인의 주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판결을 할 위험성도 있다.

   
▲ 수어에서 비수지 요소는 수지 요소와 결합해 정교하고 다중적인 정보를 표현한다. ⓒ 국립국어원 <한국수어 문법 연구>

일상 대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의문사는 눈썹으로 표시한다. 질문할 때 ‘~입니까’처럼 의문형 서술어를 의미하는 손동작은 따로 없다. 대신 눈을 크게 뜨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어 질문임을 표현한다. 오현아 수어통역사는 “수어에서 표정은 음성언어의 높낮이에 비유할 수 있다”며 “감정을 표정과 몸짓으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는 “목소리로 느낌을 전달하듯, 표정과 몸짓으로 동사의 강약이나 거리, 크기, 무게감 등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한글도 외국어나 마찬가지”

필요한 때만 가끔 사용하는 지문자를 빼면, 수어는 우리말인 한국어와 전혀 다른 언어다. 상형문자인 한자어 같은 다른 나라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농아인들이 우리말을 당연히 다 알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도 많은 농아인에게 모어(母語)는 한국어가 아닌 수어다.

정 본부장은 “한국어를 따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자막을 읽을 수 있지만, 문맹들도 있어서 수어 통역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농아인협회에서는 국내 농아인 중 문맹률을 10~20% 정도로 추정한다. 정 본부장은 “나이가 많을수록, 지방으로 갈수록 문맹률은 더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방송화면 등에서 자막으로 내용을 설명할 때가 가끔 있지만 그 경우도 자막 설명은 핵심적인 내용만 압축해서 보여줄 뿐 상세한 내용은 전달되지 않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어는 한국어와 어순도, 문법도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나는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라는 문장을 수어로 표현하면 ‘나’, ‘학교’, ‘끝’을 의미하는 손동작만으로 표현이 끝난다. 수어는 단어 사이를 연결하는 ‘조사’가 없기 때문이다. 서술어 활용형도 따로 없어서, ‘나는 집에 간다’라는 문장이라면 ‘갔다’ ‘가는 중이다’라는 표현으로 변형하지 않은 채 ‘간다’는 손동작으로 끝난다. 수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말의 의미를 세밀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 김형배 연구관은 “예를 들어 ‘나는 밥을 먹는다’는 말을 하려면 수어에서는 ‘나는 먹다 밥’으로 표현한다”며 “어순이 다르다는 거니까 완전히 별개 언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聽人)들이 대화할 때 머릿속에 한글 문장을 떠올리며 말을 주고받는 것과 달리 농인들은 수어만 오갈 뿐”이라며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오 통역사는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고 해서 모두가 영어를 잘 구사하진 못한다”며 “농아인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와 같다”고 말했다.

   
▲ 한국농아인협회 수어통역센터 정희찬 본부장. 수어를 모르는 기자를 위해 오현아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도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김은초

수어는 나라마다 다르고 사투리도 있다

수어는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 한국과 일본도 서로 다르고, 심지어 남한과 북한도 다르다. ‘담배’를 수어로 표현할 때 남한에서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입가에 갖다 대는데, 북한에서는 곰방대를 형상화한 손동작을 사용한다. ‘수화’라는 단어도 북한에서는 ‘손말’이라고 말한다. 정 본부장은 “수어는 만나지 않으면 공유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지역마다 사용하는 수어가 다를 수 있다. 수어에도 사투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 본부장은 “화장실을 서울에서는 ‘W.C(Water Closet)’로 표현하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손 씻는 모양으로 전달한다”며 음성언어처럼 다양한 표현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어처럼 공용어 지정됐지만 갈 길 멀어

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갖는 언어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정부는 수어를 국어와 대등한 청각장애인의 공용어로 인정했다. 이를 통해 수어발전계획을 세우고 이행하는 등의 법적 기틀을 마련했다. 그동안 ‘수화’라고 표현하던 용어도 보다 넓은 의미의 ‘수어’로 바꿨다. 이듬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제1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2018~2022)’을 발표하고 한국수어 표준교육과정과 맞춤형 교재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법이 제정되면서 수어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특수언어진흥과를 신설햇는데,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관련된 새로운 용어들을 수어 표현으로 만들어 권장하기 시작했다. 국립국어원 직원과 수어 전문가들이 모인 ‘새수어모임’에서는 지난 3월을 시작으로 ‘코로나19’ ‘비말감염’ ‘확진자’ ‘자가격리’ 등 새로운 수어 형태를 정하고 이를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농아인과 수어에 관한 제도적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재난방송에서 수어 통역을 의무화한 것도 불과 지난해 시작된 일이다. 지난해 4월 강원도 고성 산불 사건 당시 재난방송에서는 수어통역이나 화면 해설을 하지 않았다. 산불이 난 다음 날에야 수어통역을 시작했다. 주변 지역에 있던 농아인들은 제때 정보를 얻지 못해 불이 났는지도 몰랐거나, 막연한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이 사건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관계부처에서는 재난방송 주관을 행정안전부로 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다. 각 방송사의 수어 방송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각 방송사가 재난방송 시 수화 등을 이용한 방송을 ‘하도록 노력한다’고 규정한 방송법 시행령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같은 문제가 되풀이됐다. 정부의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은 지난 1월부터 시작했지만, 2월 4일에야 정부 브리핑에 수어통역사가 등장했다. 방송이 수어통역사를 카메라로 잡지 않은 일도 있었다. 방송사들이 정부 브리핑 뉴스에서 옆에 선 수어통역사를 배제한 채 발표자만 확대한 화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발표자 발언은 자막으로 내보내며 수어통역사를 대신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코로나19 관련 재난 보도에서 수어통역사를 반드시 화면에 포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농인들에게 한글은 제2외국어나 다름없는 문자”라며 “자막이 농인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는 대체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음성언어 위주 사회, 농아인 배려해야

“시각장애는 사물과의 단절이지만, 청각장애는 사람과의 단절이다.”

청각과 시각을 모두 잃고 장애인 인권운동에 앞장선 헬렌 켈러가 남긴 말이다. 오 통역사는 “농아인은 마주쳐도 드러내지 않으면 장애인이라고 파악하기도 힘들다”며 “그만큼 청각장애인의 불편은 생각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아인이 겪는 일상 속 불편을 비장애인들은 공감할 생각조차 못한다는 것이다.

음성언어 위주로 이뤄진 사회에서 농아인들은 유독 소외된 집단이다. 수화언어법이 제정되고 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정식 언어로 지위를 인정받게 됐지만, 인식과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다. 공공기관에서도 수어가 가능한 사람과 통역 시스템을 찾아보기 어렵다. 농아인들은 일상 곳곳에서 수어 대신 한국어를 사용하도록 강요받는다.

정 본부장은 “농아인을 향한 사회적 인식부터 바꾸는 게 시작”이라고 말했지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겠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농아인을 배려하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부분도 따라서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편집 : 김정민 기자

김은초 기자 quaestio15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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