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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가 살아가는 법

기사승인 2020.04.29  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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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사전] ‘위험사회’

   
▲ 오동욱 PD

일요일, 쌀쌀하지만 조금씩 강해지는 햇빛에 눈이 감기는 아침. 성북구에 있는 ‘북서울 꿈의 숲’을 내려오는 길 공터 한 공간에 우리가 산다. 이름은 비둘기. 근래 들어 가장 억울한 동물이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억울한 동물이 박쥐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욕의 양이나 강도, 지속성을 따져보면 우리를 따라갈 순 없다. 사람들은 군집을 이룬 우리를 만나면 눈살을 찌푸리거나, ‘으악’ 소리와 함께 오두방정을 떨며 도망치기도 한다. 

이런 혐오감이 심리적 근거가 됐을까? 2009년에 우리는 유해조수로 지정돼 수렵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때 평화와 사랑의 전령이었는데 이젠 가장 큰 혐오 대상이 됐다. 가장 억울한 동물은 단연코 우리다. 찬송가 소리가 요란했나 보다. 대장이 깼다. 아무래도 이동할 모양이다. 따라가며 이야기하자.

   
▲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는 혐오의 대상이 됐다. ⓒ Pixabay

한 가지 다행한 것은 혐오를 받는 집단이 으레 그렇듯, 우리 사회에도 내부에서 연대의 기류가 흘렀다는 점이다. 우리들 수가 크게 늘어난 1980년대에 시작된 이 연대는 모든 비둘기가 한마음으로 집단행동을 하는 연대는 아니었다. 다만, 어디에 먹이가 있거나 혹은 위험을 감지하면 알려주고, 구조가 필요한 동료에게 도움을 주는 식이었다.

우리는 당시 그렇게 조직적이지 않았기에 ‘느슨한 연대’에 머물렀다. 이 연대의 핵심은 개별 비둘기의 재빠른 눈치였다. 개별 비둘기의 경계능력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부족함이 있는지 알아채기 위해서였다. 독성이 있는 먹이, 위험한 휴식처, 길고양이 서식지, 무엇보다 인간의 가해를 피하려면 재빠른 눈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비둘기마다 계속 눈치를 보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우리에게 도시의 삶은 늘 위기상황이었다. 우리에겐 더 나은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도심 속 비둘기들은, 짝으로만 다녀 금슬의 상징이기도 했던, 우리 선조들의 특성을 뛰어넘었다. 1990년대부터 ‘대형화’라고 부르는 단체생활을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개인이 눈치 보지 않아도 될 순간이라며 기뻐했다. 

대형화를 이끈 대장 비둘기는 칭송받았다. 그는 권력을 쥐었고, 그의 결단에 따라 모두 행동했다. 선조의 유전과 가장 가까운 멧비둘기 어르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르신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함께했다. 이는 생존을 위한 문제였다. 우리는 대형화를 통해 대장 비둘기의 현명한 판단에 따라 안정을 얻고, 때로는 동료를 희생해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때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 다시 생각해보면, 도심지에 사는 모든 비둘기에게 재빠른 눈치가 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대장 비둘기가 숫자를 믿고 자꾸 위험한 행동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제도 길고양이 서식지에 잘못 들어가 집단으로 상처를 입었다. 나는 똑똑한 비둘기라 대장을 무조건 따르지 않았지만, 맹신하는 비둘기들은 대장의 행동을 무작정 따라 하려 했다. 

뭉쳐야 할 때 뭉치고, 흩어져야 할 때 빠르게 흩어져야 생존 확률이 높은 법이다. 하지만 어제는 길고양이가 달려오는데도 모든 비둘기가 산개하지 않고 대장을 따라 한 방향으로만 도망쳤다. 눈치 없는 멍청한 행위였다. 하지만 맹신하는 비둘기들은 대장을 따라 또 뭉쳤다. 길고양이가 또 공격할 태세여서 나는 집단을 벗어나 원래 휴식처로 왔다. 그날 많은 형제가 다쳤다.

비행속도가 줄어든다. 얼마 비행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심지인가 보다. 근래 길거리에 사람이 안 보이던데, 우글우글한 것이 의아하다. 군집이 시작된 공간이 어딘지 보니 교회다. 앗싸! 오늘은 먹을 게 많다. 코로나인지 뭔지 유행한다는 데 많이도 차렸다. 대장 비둘기도 날개를 아래로 내린다. 방심은 금물. 이런 때일수록 눈치를 잘 차려 몸조심해야 한다. 한 번만 더 주위를 살펴보자. 아차, 풀숲에 고양이들이 있다. 위험하다. 아, 이건 비둘기 이야기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동민 기자 

오동욱 PD odw020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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